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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로도 주의를. 위험이 닥쳤을 때는 바로 저를 불러주세요. 그 신부는 어딘가 불길해요.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당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동감이야. 괜찮아,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도망칠 거고, 세이버를 부를 거야」
계단에 발을 걸친다.
추운 겨울하늘 아래, 세이버를 혼자 남겨두고 교회로 발을 들여놓았다.
예배당에 신부의 모습은 없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의자에는 딱 한 사람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뒤에서 엿보이는 머리카락은 금색.
아마도 예배를 하러 온 외국인이겠지.
「실례합니다. 코토미네 신부는 계신가요」
우선 밑져야 본전으로 말을 걸었다.
「——————」
흔들, 하고 일어선다.
순간.
그 동작 하나 때문에, 근육이라는 근육은 다 경직됐다.
걸어온다.
아무 색다를 것도 없는 그 동작은, 너무나도 불가해했다.
남자는 극히 평범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가온다.
그것뿐인데도, 어째서——————나는 이 남자에게, 여기서 죽임을 당한다고 각오한 건가.
「아——————」
남자의 팔이 올라간다.
그건, 멍하니 서 있는 내 목으로 뻗어——————
딱, 공중에서 멎어 있었다.
「——————호오. 좋지 않은 거에 씌어 있구나, 너」
남자는 멀어져 간다.
그렇다, 그게 당연하다.
이상하다고 하면, 그저 다가왔을 뿐인데 죽임을 당한다, 라고 생각한 이쪽이 정상이 아니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코토미네한테 볼일이 있는 거지」
남자는 제단 안쪽으로 사라져갔다.
「………………」
그리고 몇 분 정도 기다린 뒤.
「놀랐군. 설마 한나절도 안 돼서 리타이어인가, 에미야 시로」
변함없이 신경을 건드리는 말투로, 코토미네 신부는 나타났다.
「——————그럴 리 없잖아. 단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을 뿐이야.
그렇지도 않으면, 부탁 받아도 네가 있는 데 따위 올까 보냐」
「그건 다행이군. 나도 한가하지는 않아서 말이지, 간단히 나를 따르게 돼도 곤란하지」
단단한 발소리를 내며, 코토미네는 걸어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압, 이라고 하는 건가.
이 남자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자신의 약함을 의식시키는 듯한, 엄격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신부로서는 충분한 자질이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신부로서 치명적인 결함인 거 아닌가.
「왜 그러나? 질문이 있다면 말로 해라. 인사 따위 할 사이도 아니지」
「——————」
……그 말이 맞다.
이 남자와 교우를 깊이 할 필요 따위 없다.
나는 다만, 세이버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왔다.
그렇다면 그것만 묻고, 이런 데는 신속히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을 건 하나뿐이야. 어째서 아무 말 안 한 거냐, 당신은」
「글쎄. 아무 말 안 했다, 라는 건 무슨 말인가」
「——————키리츠구 말이야. 에미야 키리츠구가 마스터고, 저번 성배전쟁에서 싸웠다는 걸, 어째서 말 안 했지」
녀석은 유쾌한 듯이 눈썹을 움직인다.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은 없다. ……이 남자는 순수하게, 내 입에서 키리츠구의 이름이 나온 것을 즐기고 있다.
「대답해. 당신이 성배전쟁의 감독이라면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그럼, 어째서 그걸 말 안 했지」
「어째서고 자시고 할 거 있나. 네 아버지가 저번에 마스터였던 것이, 너에게 무슨 이익이 되나.
에미야 키리츠구의 공적은 에미야 시로에게는 관계가 없다」
담담한 말투는, 반론을 넣을 여지가 없다.
코토미네의 대답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키리츠구가 뛰어난 마스터였다고 해도, 그게 나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 관계는 있어. 내가 마스터가 된 건, 키리츠구의 아들이기 때문이냐」
키리츠구의 아들로서 자라고, 제자로서 마술을 단련해 왔다.
그리고 키리츠구처럼 마스터가 되어, 완전히 같은 영령인 세이버와 계약한 것에는
무언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당신은 나에게, 우연히 마스터가 됐다고 했잖아. 그런 설명보다 키리츠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나는 당신 생각대로 싸우겠다고 결정했을 거야. 그걸, 어째서 말하지 않았지」
「그거야말로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유전에 의한 마스터의 계승 따위 알지 못하고, 애초에 너는 키리츠구의 아들이 아니지 않나.
아무런 준비도 없고, 아무런 각오도 없었던 인간이 마스터로 선택되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다」
「본래, 아무리 마술사라고 해도 성배를 모르는 자에게 령주는 깃들지 않지.
그 예외인 네가 선택된 이유 따위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럼, 정말로 키리츠구는 관계 없는 거군?
내가 마스터가 된 건 그저 우연이고, 그 때 키리츠구가 나를 구한 것도, 그저——————」
그저, 순수한 선의로, 죽으려고 하던 아이를 구했을 뿐이었다, 라고.
「내가 아는 한은 말이지. 허나 성배의 의도가 되면, 나는 헤아릴 수 없지.
에미야 시로가 마스터로 선택된 건 우연이라고 잘라 말하고 싶지만, 적잖이 인과를 느낀다.
성배는, 성배를 부정한 에미야 키리츠구의 아들에게 속죄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뭐……키리츠구가, 성배를 부정했어——————」
「그렇다. 네 아버지는, 처음부터 성배의 입수 그 하나만을 위해 이 도시에 찾아온 남자다.
그 남자의 목적은 성배뿐이었지. 그 순수한 소원에 성배는 응해,
그 남자에게라면 자신을 넘겨줘도 상관없다,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미야 키리츠구는 성배를 배신했다.
녀석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성배를 파괴했지.
성배전쟁 자체를 끝내기 위해서, 녀석에게 기대를 건 성배와, 그 숙원을 배신한 거다」
「성배를——————파괴, 했어……?」
그게 사실이라면, 확실히 성배는 키리츠구를 인정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건 잘못 따위가 아니다.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성배.
그걸 원해서 죽고 죽이는 마술사들.
……말하자면, 성배는 싸움의 원인이다.
그걸 파괴한 키리츠구는, 배신한 것이 아니다.
키리츠구는 키리츠구 그대로, 내가 계속해서 동경했던 정의의 사자로서 성배전쟁을 끝낸 것이다.
「……배신 따위가 아냐. 키리츠구는 성배를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파괴한 거겠지.
키리츠구는 아무것도 배신하지는 않았어」
「흠. 그렇군, 너는 그 이전의 키리츠구는 몰랐었지.
——————좋다.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에미야 키리츠구의 정체를 가르쳐주지」
신부의 입가가 치켜 올라간다.
은밀한 즐거움에 취한 듯한, 그것은, 불길한 웃음이었다.
「에미야 키리츠구.
그 남자는 성배전쟁과는 관계 없는 위치에 선 마술사였다.
녀석은 자신의 욕망,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고, 그 결론으로서 성배를 구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기적.
인간의 힘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이상.
본래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어린애 같은 꿈을 잘라내서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남자는 “소원을 들어주는 장치”인 성배에 소망을 건 거겠지」
「——————녀석이 어디서 이 땅의 성배전쟁을 들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녀석이 아닌 외부자가 녀석의 적합성에 주목했는지도 모르지. 그 근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에미야 키리츠구는 마스터로서 고용됐다.
아인츠베른————성배전쟁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술사 혈족에, 최고의 마스터로서 맞아들여진 거지」
「과거 세 번에 걸친 싸움 끝에, 아인츠베른은 전투능력에 특화된 마스터를 구했다.
실제로, 아인츠베른의 마술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지. 그들은 싸움에는 맞지 않는 일족이다.
그 때문에, 죽고 죽이는 싸움에 뛰어나고, 마술협회에 속하지 않았던 키리츠구에게 소망을 맡겼다」
「이단인 키리츠구에게 성배의 지식을 주고, 마스터로서의 힘을 주고, 아인츠베른의 피와 섞는 것을 통해, 보다 전투에 적합한 후계자를 낳기도 했다.
성배를 손에 넣은 그 때에는, 에미야 키리츠구는 정식으로 아인츠베른의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졌을 테지.
어디 출신인지도 알 수 없는 잡종을 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 거지.
아인츠베른의 키리츠구에 대한 취급은 파격이며,
그 때문에, 얼마나 키리츠구를 신뢰하고 있었는지는 용이하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에미야 키리츠구는 기대에 응했다.
저번 성배전쟁에서, 키리츠구는 많은 마스터를 쓰러뜨렸다. 녀석과 싸워, 목숨을 건진 자는 나 혼자다.
나머지는 확실하게 죽임을 당했지.
녀석은 정확하며, 주도하고, 대담하며, 무정했지. 적에게 주는 자비 따위 없었다.
죽이겠다고 결정하면 그저 죽였다. 서번트를 도륙하고, 살려달라고 비는 마스터를 기게 하고,
도망치려고 하는 두개골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지. 죽인 뒤의 감개도 없다.
강함을 자랑하는 우월도, 사라진 약자에의 죄악감도 없었지」
「한 마디로 하자면, 그건 기계였다.
원래부터 감정이 없는 거지. 그렇다면, 희로애락이 끼어들 여지 따위 없지」
「뭐——————키리츠구가, 기계……?」
「그렇다, 녀석은 죽였다고?
너처럼 관계 없는 인간을 말려들게 하지 않는다, 같은 생각도 없었다.
상대의 약점을 철저히 치고, 반격의 여지 따위 주지 않았지.
적의 육친을 방패로 삼고, 적의 친구를 족쇄로 삼아 신속히 이겨나갔다」
「그렇군. 혹시 이번 싸움에 키리츠구가 있었다면, 네가 가장 혐오하는 마스터가 돼 있었겠지. 비정하다는 것이 악이 된다면, 저번 싸움에서 가장 알기 쉬운 악은, 그 남자를 두고 그 외에 없었으니까」
「——————」
「왜 그러나, 납득이 가지 않나?
안다. 물론, 에미야 키리츠구는 기계 따위가 아니지.
녀석은 목적을 위해서 사사로운 정을 잘라버렸을 뿐이지.
그게 마술에 의한 자기암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
녀석의 강한 부분이기도 하며 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냉철하다”라는 다른 인격만 준비하면 손쉬운 것을,
그런 인간은 성배에 도달하지 못한다, 도달할 가치가 없다고 믿은 거겠지」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서 결국——————그 약한 부분이, 녀석에게 모든 것을 배신하게 했다.
키리츠구에게 일족의 숙원을 건 아인츠베른.
다섯 명이나 되는 마스터가 쓰러져, 소유자 앞에 나타난 성배.
에미야 키리츠구 자신이 바라고 있었던,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뤄지지 않는 소원」
「그 모든 것을, 녀석은 마지막 순간에 잘라내 버렸지.
그것이 저번 싸움의 결말——————네가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는, 한 마술사의 정체다」
「그리고 성배는 사라지고, 성배전쟁은 막을 내렸다.
키리츠구에게 배신 당한 아인츠베른은 후퇴하고, 다음 성배 준비에 10년을 소비했지」
「……흠.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인츠베른은 이번 성배전쟁을 예기하고 있었던 거겠지.
저번 싸움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끝난” 싸움이다. 다 사용되지 않은 마력이 다음 싸움으로 넘겨지지.
재정비는 놀랄 정도로 빠르다, 라고 알고 있었던 거겠지」
「………………」
코토미네의 이야기는,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냉철한 마스터였다고 하는 키리츠구.
아인츠베른이라고 하는, 키리츠구와 관계가 있었던 마도의 명문.
그런 소리를 들어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야기에 무엇 하나 거짓이 없었다는 것과——————
「——————코토미네. 당신, 키리츠구를 싫어하고 있었던 건가」
이, 모든 사건에 무관심한 남자가, 키리츠구에게만, 분노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녀석과 나는 양극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와 그 남자는 타고난 숙적이지.
마키리나 아인츠베른에게는 동류로서 비춰졌던 듯 하지만, 우리들은 둘 다, 서로를 천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천적? 키리츠구가 당신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키리츠구를 경계하고 있었던 건가」
「경계가 아니다. 서로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을 뿐이지」
「그건 말이지, 구제불능인 성인이었다.
사람이 죽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주제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지. 10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1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면, 신속히 자신의 손으로 일을 해냈다」
「모두가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라는 마음 속의 이상향을 체현하기 위해서, 최저한의 제물을 항상 준비했다.
——————그 모순.
파탄된 이상은 나와 마찬가지이며, 그러나, 치명적으로 동포가 아니었던 거지」
「녀석은 자신의 이상에 살았다. 그 이상은 내가 알 수 있는 한, 성배를 파괴할 때까지 지켜졌을 테지.
그렇기에 자신에게 긍지를 가지고, 의심할 여지 없이 냉철한 기계로 계속 존재할 수 있었겠지」
「그것이 나와 녀석의 유사한 점이며 서로 다른 점이다.
어떠한 갈등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철의 의지.
그 때문에 녀석은 하나도 상처를 입지 않고, 그리고——————그것에게는, 처음부터 상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은 작위적인 비인간이며, 나는 작위적인 성직자였지」
「………………」
처음부터 상처밖에 없었다.
그건 즉, 믿은 전제 자체가, 이미 잘못되어 있었다고 하는 건가.
「……그럼, 당신은 아닌 건가. 상처를 입지 않는 것도 아니고, 상처밖에 없는 것도 아닌.
베이면 상처를 입는, 멀쩡한 인간이라고. 당신은 신부니까, 그 부분이 키리츠구와는 다르다고……?」
「글쎄. 그렇다면 에미야 키리츠구와는 동류라고는 생각되지 않겠지.
녀석들이 나와 에미야 키리츠구를 마찬가지로 본 건 다른 부분이다.
……그렇군, 인간적으로 닮았다고 하면, 너야말로 키리츠구와 닮은 부분이 있지」
「여전히 어린 모습 그대로인 소망을 가진 자.
겉보기만 좋은 것을 믿고, 그걸 위해 더러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자.
스스로를 강대한 악으로 삼아, 유상무상의 작은 악을 지워버리는 것.
너나 키리츠구는, 반영웅이라고 불리는 “구원자”의 모습이다」
「……? 반영웅이라니, 뭐야 그거」
「말 그대로인데? 영웅의 반대, 구제불능의 살인자라는 의미다」
「이봐, 그건 그저 악당이잖아. 너, 나를 깔보고 있지 않냐?」
「천만에. 오해가 있는 듯 하지만, 나는 너를 환영하고 있다고?
여하튼 키리츠구의 아들이지. 숙적의 아들이 의지해 와 봐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너무 복잡해서 마음이 정해지질 않는다」
신부는 소리도 없이 웃는다.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지겹지는 않은 듯 하다.
「자, 반영웅 이야기였지.
말하자면, 존재 자체가 악이라고 여겨지는 자.
그러면서도, 그 악행이 인간에게 있어 선행이 되는 자.
본인의 의사와는 반대로, 주위의 인간이 구원자로서 떠받드는 자」
「그런 자가 반영웅이라고 불리는 영령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인주(人柱)나 제물이 여기에 해당하지」
「비록 극악인이라고 해도, 그 인간을 제물로 삼는 걸 통해서 마을 사람 전원이 살아난다면, 그건 틀림없이 영웅이잖나?
영웅으로 칭해지는 제물이 먹혀 죽든 땅 속에 묻히든 알 바가 아니다.
제비에서 꽝을 뽑게 만들어진 자, 일방적으로 강요 받은 더러운 역할이 사람들을 구하는 위업을 해냈다면,
그건 죄인이 아니라, 영웅으로 승화되는 거다」
「……. 그거, 전사하면 은사(恩赦)로 계급이 올라간다든가, 그런 이야기냐?」
「——————크게 다르다.
중요한 건 떠받드는 쪽의 의식이지.
경의나 감사, 죄악감에서 태어나는 건 정상적인 영웅이잖나.
그런 감사의 마음, 죄악감 따위로 떠받들어져서야 절대 반영웅이 될 수 없다.
……뭐어, 자신의 추악함마저 잊고 희극을 비극으로 어느새 바꿔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악으로서 매장된 영웅도,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로서 다뤄져 순수 악이 아니게 되어 버리지」
「……순수 악이 아니게 돼……?」
「그렇다. 반영웅은 피해자이면서 궁극적인 가해자이지 않으면 안 되지.
……사람이 낳은 것이면서, 결코 사람의 손이 섞이지 않고 성장하는 것.
그 모순이야말로 모든 억지의 압력을 면제 받는 “세계의 적”이다」
「……물론, 순수한 반영웅 따위 그리 없다.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그런 것이 있어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인간의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원죄를 부정하기 위한 산 제물, 인간이 낳은 한 종말.
평온과 같은 의미로 여겨지는, 이뤄지지 않는 소원 중 하나가, 반영웅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기억해두면 된다」
「……?」
「……흥. 요컨대 이뤄지지 않는 겉보기만 좋은 것이다.
너도 키리츠구도 정의의 사자를 목표하고 있는 거잖나?
그렇다면 훌륭한 반영웅이라는 거다. 어떠냐? 성배를 손에 넣었을 때의 소망은, 아예 영웅이 되는 거라는 건」
「……이봐. 뭐가 어떠냐, 야.
영웅과 정의의 사자는 다르잖아.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요만큼도 모르겠지만, 그런 간계에 걸릴 것 같냐」
「호오. 다르다니 어느 부분이 다른 건가」
「그, 그런 거 알 것 같냐! 어쨌든 다른 건 다른 거야. 거기다 말이지.
영웅이라는 건 되는 게 아니라, 끝난 뒤에 되어 있는 거잖아.
성배가 준비할 수 있는 것 따위, 결국 분에 넘치는 힘뿐이잖아」
「——————과연.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부모자식은 부모자식인가.
키리츠구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확고한 신념이 있군」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인지, 신부는 은근히 웃었다.
「음…………」
……이 녀석은 키리츠구를 싫어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까부터 열 받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이 녀석은, 에.
이런저런 소리 하고 있지만, 키리츠구를 한 번도 깎아 내리지 않았다.
「당신 말야. 혹시, 사실은 키리츠구랑 마음이 맞았던 거 아니냐」
문득 주의가 돌아오자 떠오른 의문을 입 밖에 내고 있었다.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별로. 왠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그럼 잘못이군. 나는 에미야 키리츠구를 싫어하고 있고, 애초에 이야기한 적도 없다. 녀석과는 한 번 목숨을 걸고 싸웠을 뿐이지.
말했잖나, 우리들은 양극이라고.
소원 소원
녀석의 의문과 내 의문은, 정말로 종류가 다르다. 가지지 못한 자의 의문 따위, 처음부터 가진 자의 안에는 있지 않지」
그렇기에 절대로 서로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신부의 눈이 고한다.
「……? 가지지 못한 자라니, 키리츠구에게 있고 당신에겐 없는 것이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나는 에미야 키리츠구처럼, 믿는 것을 위해 의사를 바꾼다, 라고 하는 건 할 수 없었지.
뭐어 목적이 다르니까 비교할 수도 없지만 말이지」
「?」
믿는 것을 위해 의사를 바꾼다.
그건 아까 말했던, 10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내버린다, 라는 류의 것인가.
「몰라도 된다. 그저 에미야 키리츠구의 소원은 “평화”였다. 실로 심플하지.
너무 심플하기 때문에, 복잡한 세상 속에서는 파츠가 남아버린다.
희생 무시
그 완벽한 형태에 다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는 처분할 수 밖에 없지」
「——————녀석은, 그걸 허용할 수 없었다.
완벽한 형태를 바라면서, 흘러 넘치는 나머지를 구하고 싶어했던 거지.
……그러나, 그건 사람에겐 힘에 겨운 기적이다.
“다툼이 없는 세계”는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지. 녀석은 그걸 부정하기 위해 성배를 구했다」
「이상을 찾아,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결론이 들이대진 녀석에게는, 이제 성배 이외에 길은 없었지.
자신의 이상에 궁지에 몰린 자의 말로다.
에미야 키리츠구라고 하는 남자의 꿈은,
성배라고 하는 “있을 수 없는 것”을 통해서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이루어질 리 없는 마법이었지」
「——————」
다툼이 없는 세계.
그런 걸 진심으로 믿고 있었던 건가, 키리츠구는.
그걸 위해서 강해지려고 노력해서, 성장하면 할수록 현실과의 어긋남에 궁지에 몰려서, 그래도 계속 믿고,
그리고————— 기적을 이룬다고 하는 성배에 도달했다.
그 때에는 이미, 에미야 키리츠구라고 하는 인간은 많은 좌절을 알았을 것이다.
애초에 성배를 구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는 것이기도 하다.
완전히 마모되어, 자신이 자신의 이상과 동떨어진 인간이 됐다.
그래도——————키리츠구는 성배를 구한 건가.
자신은 이룰 수 없었던 이상, 그, 많은 것을 희생으로 삼아, 계속 꿈꿔온 것을 위해서.
「……하지만 결국, 키리츠구는 성배를 부쉈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잖아」
「그렇지. 녀석 자신이, 최후에 자기자신을 배신한 거다.
……녀석에게 분노를 느꼈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 순간이었겠지.
솔직히 말하면 말이지, 나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거다.
한 인간이 바란 “평온”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가 되는 건지, 매우 흥미롭기도 했기에 말이지」
「당신은 그렇지 않은 건가. 신부잖아, 일단」
물론, 이라며 신부는 끄덕인다.
다툼이 없는 세계, 괴로움이 없는 세계야말로 만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소원은 내 것이 아니다. 애초에, 나에게는 다른 사람 같은 소원 따위 없지」
「? 다른 사람 같은 소원이 없어……?」
「그렇다. 소원이라는 것은 즉, 그 인간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는 모습이잖나.
에미야 키리츠구에게, 그것이 다툼이 없는 세계였을 뿐이라서 말이지. 나와는, 처음부터 기준이 다르다」
「?」
「간단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실이, 나에겐 없었지.
다른 사람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받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너희들이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나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어」
감정이 없는 중얼거림.
그건 내 앞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없는 누군가에게 보내진 듯한, 그런 독백이었다.
「——————자, 이야기는 여기까지군.
에미야 키리츠구가 마스터였는가 어떤가. 그 질문에는 충분히 대답했지」
「으——————아니, 잠깐 기다려. 묻고 싶은 건 키리츠구에 대해서만이 아냐. 에, 에에」
마스터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든가, 이제부터 어떻게 싸워가면 되는가.
……그런 얼빠진 걸 이 녀석에게 물었다간, 틀림없이 싫은 소리와 빈정거림과 조소가 돌아온다.
그건 피하고 싶다.
아니, 절대로 피한다.
「그 외에 질문이 있다면 짧게 끝내지. 지금 한 이야기는 생각 외로 시간을 잡아먹었으니까 말이지」
「——————윽」
……아니, 그 외에 확인해둬야 할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마스터로서 해야 할 행동거지가 아니라, 어떤 의문을 풀기 위해, 오고 싶지도 않은 교회(여기)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나.
「아인츠베른에 대해서는 됐나.
그들에게, 키리츠구의 아들인 너는 말살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윽……! 그래, 그 얘기……! 대체 아인츠베른이라는 건 뭐야. 아까, 당신은 성배전쟁의 원인이라든가 했는데」
「아아, 원인이고말고. 성배전쟁이 마술의식이라고 하는 건 이야기했지. 의식인 이상, 그걸 계획한 자가 있는 건 당연하지」
「200년 전, 이 땅의 영맥에 비틀림이 있다고 안 마술사들이 있어서 말이지.
그들은 서로 비술을 제공해서, 성배를 기동시키는 진을 이 땅 깊숙이 만들어냈다.
그게 성배전쟁의 발단이지. 이 기동식의 작성에 관계된 세 가계야말로, 성배의 정통 소유자이기도 하다」
「성배를 만들어낸 자. 영령을 혹사시키는 령주를 고안한 자.
토지를 제공하고, 세계에 구멍을 뚫는 비술을 제공한 자」
「아인츠베른, 마키리, 토오사카.
최초의 세 가문, 나나 너는 대항할 수 없는 역사와 혈통을 자랑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이 중에서 토착인 자는 토오사카 뿐이
슈바인오그 (젤릿치)
지만, 토오사카도 역시 대사부는 저 시간의 노인이지.
물론, 토오사카의 대사부가 전해지는 말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면, 인종 구별 따위 우스꽝스럽다만」
「……음. 요컨대 아인츠베른이라는 건, 성배전쟁에서 제일 높은 녀석이라는 거냐?」
「과거에는 말이지. 그러나 성배소환이 실패하고, 지금처럼 성배의 소유권이 애매해지고 나서는 참가자에 지나지 않게 됐다. 지금은 성배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역할일 뿐이지.
마키리와 토오사카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저, 마스터로 선택되기 쉽다, 라는 권리를 가졌을 따름인 가계인 거지」
「……그렇다고 해도, 본래 이 성배는 아인츠베른이 고안한 것이지.
그 일족의 역사는 천 년. 분가도 가지지 않고, 다른 마술사와 섞이지 않고 천 년의 세월을 쌓아온 가계는 적다」
「알겠나, 에미야 시로. 아인츠베른은 말이지, 천 년이나 되는 동안, 그저 성배의 성취만을 추구해왔다.
천 년이라고? 성배탈환이라고 하는 사명을 방패 삼아 죽이고 죽이고 다 죽이는 등 이차원의 만행이 버젓이 저질러진 옛날, 중세로부터 연면히 계속된, 인간의 영역 따위 일탈한 광기의 행위다.
그들은 열광적이지도 않고 편집적이지도 않으며 광신적이지도 않고,
절망적인 십자가만을 가슴에 품고 “무의미”함을 관철해 왔지」
「그렇기에 아인츠베른의 마술사는 마의 영역마저 이미 돌파했다.
십 년 단위조차 망각되어 소모되는 집단의 의사를, 그 몇 배나 반복한 끝에 단 한 번도 길을 잘못 들지 않은 괴물들.
그런 그들이 자신들 이외의 마술사를 불러들이는 굴욕과 좌절 같은 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성배의 성취를 우선했다.
잘못을 되풀이하기를 500년. 자신들의 힘만 가지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깨닫는데 300년.
그리고——————역시 자신들의 힘이 아니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고치기까지 더욱 200년」
토오사카&마키리
「아인츠베른은 말 그대로, 자신을 죽일 기개로 천한 자들과 협력했지.
그 결과가 성배의 소유권을 빼앗겨, 한 참가자로서 서로 경쟁한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다.
그 굴욕에 견디고, 지켜온 피의 결속을 깨면서까지 밖에서 온 마술사를 받아들였는데도,
에미야 키리츠구 아인츠베른
그 남자는 성배를 앞에 두고, 발칙하게도 성배를 배신했지」
「그것이 그 일족과 에미야 키리츠구의 관계지.
너와 아인츠베른은, 그런 인연 아래 있다」
「——————」
……그런가.
그 애가 맨 먼저 나를 노리고 온 건 당연하다.
배신자의 아들이 마스터가 됐다면, 그런 녀석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해됐나. 마스터가 되는 자는 모두 어떠한 업을 등에 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키리와 아인츠베른의 집념은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키리가 500년이라면, 아인츠베른은 1000년이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성배는 둘 중 하나의 손에 넘어가지 않으면 애쓴 보람이 없겠지」
「………………」
말이 없다.
수백 년이나 되는 동안 계속된 집념이라니, 그건 사람이 대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울해지지 마라. 에미야 키리츠구는 아인츠베른을 배신했지만, 그걸 무도하다고 힐책하는 게 아니지.
거꾸로 말하면, 녀석은 천 년의 원령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자신이 품은 소원의 성취에 건 거다.
그야말로 자신의 안에 가라앉는 모든 것을 버리면서 말이지. 그건 충분히 자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
……자신을 맞이들인 자들.
천 년의 역사를 적으로 돌리면서 관철한 것.
……신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혹시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키리츠구의 아들이라고 자칭한다면, 키리츠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믿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 그러나. 천 년이라고 듣고 전의가 꺾인 건가, 에미야 시로」
「——————꺾이진 않았어. 이유는 어떻든, 나는 싸우겠다고 결정했지.
다른 마스터가 무슨 생각을 하든, 10년 전 같은 일은 일어나게 놔두지 않겠어」
그것뿐이다, 라며 얼굴을 든다.
신부는 만족한 것처럼, 크게 끄덕였다.
「충분하다. 그게 네 싸우는 의의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해라.
오래 끌면 그만큼 희생자는 나오지. 키리츠구와 마찬가지로, 밤마다 자신의 목숨을 저울에 올려 표적을 끌어들여라」
「……다른 사람 일이라고 하고 싶은 소리 막 하는군. 요컨대 미끼가 되라는 거잖아, 그거」
「그 외에 걸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뭐, 그 정도로 절망적인 계획도 아니다. 너에겐 마스터를 감지하는 능력은 없지만,
서번트는 서번트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지. 네 서번트가 뛰어나다면, 남은 건 앉아서 기다릴 뿐이잖나」
「——————」
신부에게 등을 돌린다.
들어야 할 건 이제 없다.
이미 꽤나 세이버를 기다리게 하고 있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잠깐. 일단 물어두는데, 너는 치유 마술을 습득하고 있나?」
「——————아니. 그게 왜」
「아니. 그렇다면, 부상자가 생기면 데려오도록 해라.
희생자가 나오는 건 교회로서도 간과할 수 없어서 말이지. 늦지 않았다면, 이쪽에서 치료는 맡지」
「——————」
출구에 향하고 있었던 발이 딱, 멎는다.
「……놀랐는데. 당신 치료마술 같은 거 쓸 수 있냐. 교회에선 금지돼 있잖아, 그거」
「본래는 관할 외지만, 배웠다.
옛날, 눈앞에서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죽어서 말이지.
그걸 계기로 손을 대 봤는데 말이지, 생각 외로 상성이 좋았던 듯 하군」
「아아, 다만 너 본인의 치료에는 대가를 요구할 거다. 감독으로서 공평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거절이다. 죽어도 네놈 신세 따위 질 것 같으냐」
흥, 하며 얼굴을 돌리고, 이번에야말로 밖을 향해서 나아갔다.
첫댓글 꺄아 길군!!!!!! 단 한컷이지만 !! 멋있다 길군!! 꺄하하하
길빠시군요.길가메쉬 뭐,좋지요.그게 사랑이아닌 동경의대상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