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공화국
갑질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다.
어느 비행기 회사 재벌 자녀는 땅콩 회항 사건으로 망신당했다. 동네 졸부들의 행태도 이에 못지않다. 백화점 주차장 아르바이트생을 혼내고, 점원 뺨을 치고, 심지어는 무릎까지 꿇린다. 갑질은 부유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갑질을 보거나 들으면, 분기탱천하며 비난하는 사람마저 알게 모르게 갑질이 몸에 배어 있다. 문제는 자기의 행동이 갑질인 줄 모른다는 거다.
옛날에는 셋방 사는 사람에게 부리는 집주인의 갑질이 단편 소설의 단골 소재였다. 요즘은 시장이나 마트, 식당에서 주인에게 다짜고짜 하대하거나 정도를 넘어선 친절을 강요한다. 학부모는 선생님을 제가 고용한 육아도우미로 착각한 듯 온갖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다. 나이 들었다고 나은 것도 아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 준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기가 그리 어려운가. 어쩌다 경로석에 잠시 앉은 피곤한 젊은이에게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빼앗긴 것처럼 욕설을 섞어가며 호통친다.
우리 관리비로 월급을 주니, 내가 상전이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봉급 받는 공무원이니까 하인 부리듯 해도 된다? 종업원은 손님인 나를 왕처럼 모셔라? 지나가는 개가 코웃음 칠 소리다. 이런 마음속에는 쓰레기 같은 과시욕만 가득 차 있어서 있는 체, 아는 체, 힘 있는 체를 시도 때도 없이 울컥울컥 토해 낸다. 그들 가족·친지 중에는 공무원,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 정녕 없단 말인가.
콜센터 직원에게 온종일 늘어 붙어서 욕지거리하거나 관공서에서 상습적으로 행패를 부리는 행위는 갑질을 넘은 범죄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권 운운하며 처벌을 머뭇거리는 사이, 애꿎은 사람을 사지로 내몬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가위 저녁에 휘영청 뜬 슈퍼문에 갑질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빌었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예의 바른 행동 하나, 품위 있는 온화한 말 한마디가 아쉽다. 출입문을 드나들 때 뒷사람을 위해 잠시 잠깐 잡아 주는 앞사람께, 마트에서 계산하는 분께 고맙다고 눈인사하는 것을 주머니에 든 용돈 아끼듯 하면 안 된다. 내가 먼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갑질 없는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가을 들녘에 나가 올여름 홍수와 태풍을 이겨낸 황금 들판의 벼 이삭을 보자. 우리 모두 익을수록 고개 숙이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가을이 되면 좋겠다.
대구시 남구 소식지. 11월호.<세상보기>
첫댓글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느낌입니다~^^
나도 혹시 꼰대 노릇한 게 없는지 되돌리어 생각키워 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