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 문학을 살펴야 할 이유!
2018년 출간된 사이토 미나코의 『동시대 일본 소설을 만나러 가다』는 1960년대 이후 2010년대까지 일본 사회의 다양한 변화에 맞춰 가장 최근의 일본 문학사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동시대 문학계를 정리할 이유를 저자는 『일본의 현대소설』을 쓴 나카무라 미쓰오의 말에서 찾는다. “동시대인의 판단에 입각한 역사는 사상누각과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양한 현대사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성격을 알고 싶어 하는 강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 책은 독자와 동시대의 일본 문학에 대해 정리한 최초의 책으로 호평을 받았다.
문학 작품들로 촘촘하고 조밀하게 들여다본 일본 현대사 변화의 조감도이자 가이드북
이 책은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나누어져 있다. 한두 명의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등장하는 작가들만 400여 명이 넘고 작품 수도 약 300개가 넘게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을 다 읽지 않았어도 당시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동시대를 객관적이면서도 저자만의 개성 넘치고 섬세한 렌즈로 비춤으로써 독자들 역시 시대 변화와 작품 경향성의 변화 등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이토 미나코는 작품 중심으로 일본 문학사를 훑지 않는 이유를, 50년 사이 크게 변한 복잡다단한 현대의 작가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작가들을 그룹 지어 문학사를 서술하는 방식이 맞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시대 변화에 맞추어 어떤 소설이 쓰였는지를 밝히는 게 더 나은 서술 방식이라 생각해 이 책을 쓴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문학이 동시대의 ‘어떤 점’에 주목했는지를 보여주고, 문학이 시대를 생각하는 바를 통해 독자가 자신을 뒤돌아보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독자에 주는 시사점은?
버블 경제로 인한 사회 변화, 블랙 기업, 노동 문제, 여성 이슈, 노인 간병 문제, 가정 해체 문제 등등 이 책에서 저자가 시기별로 꺼내든 사회 문제는 너무나 한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렇듯 이웃 나라 일본과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슷한 경험을 하는 한국의 독자에게 이 책은 일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사는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일본 문학의 시대별 흐름 분석에 대해 읽으며, 우리 문학과 또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마련된다면 한국의 독자에게도 유의미한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모든 신화와 권위가 사라지고 불탄 자리에 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 소녀 시절의 기억. 사회와 인간에 대한 ‘불신’을 눈앞에서 확인한 세대는 전쟁을 증오하는 것 이상으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깊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엘리트층과 지식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어져 세상과 거리를 두는
염세적인 분위기를 양성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1960년대에는 지식인의 권위를 실추시키
는 또는 지식인이 쓸모없게 된 시대의 고뇌를 그린 작품들이 잇달아 등장했습니다. (본문 36P)
어쨌든 지식인이나 엘리트는 원래 반감을 사기 쉬운 계층이기는 합니다. 입으로는 혁명을 표방하면서도 거만한 태도로 여성들을 깔보는 좌익계 남성들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러한 남자들의 행동이 이렇게까지 계속해서 비판을 받고 놀림의 대상이 된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작품에 사용된 수법은 각각 다르지만, 지적인 엘리트층을 이리저리 해체한 소설들은 픽션이라는 세계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51~52P)
전쟁을 그린 작품이 왜 1970년대에 다수 발표된 것일까?
근대에 대해서 반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전의 전쟁도 점검의 대상이 되었고, 그와 더불어 작가에게는 자신이 고령이 되기 전에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점. 게다가 패전 후 25년이 지나 거리를 두고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을 획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본문 105P)
이듬해에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년생)가 군조신인문학상 수상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け)』(1979)로 데뷔합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매우 특이한 스타일의 소설이었습니다. (중략) 하지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 후에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줄기를 뻗어나가 많은 팬을 확보하여 그들을 매료시킵니다.
독자적인 무라카미 월드가 형성된 것입니다. 세련된 표층과는 달리 이것도 상당히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본문 120~121P)
근대사와 근대문학이 소설의 연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화석연료’로서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소설이 근현대사를 제재로 삼은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를 겪어온 현대 작가들의 손을 거치면 역사도, 과거의 문학도 훌륭하게 ‘탈구축’됩니다. 오래된 민가가 카페로 재탄생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본문 247~248P)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의 화자는 말합니다. “중류
라는 계급이 소멸해가고 있다. 경제 격차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 대다수에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80퍼센트~90퍼센트의 국민이 몰락했다는 감각에 휩싸여 선망과 질투가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였고 무력감이 엄습했다. 당연한 듯이 새로운 내셔널리즘이 대두했고 몇 개인가 신우익정당이 태어났으며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신흥종교로 빨려 들어갔다.”
이 말은 2000년대 이후의 일본을 거의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습니다.(본문 283~284P)
2000년대에 부상한 것은 불안정고용 노동자를 의미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1990년대 이후에 급증한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 상황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고용자와 실업자를 총칭하는 용어-역주)라는 단어입니다. 비정규직 고용자의 비율이 해마다 증가하여 30퍼센트를 넘은 것이 2002년. 여성의 경우에는 과반수가 비정규직 고용이었습니다. 소설에도 그러한 현실이 투영된 것입니다.(본문 312P)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격차와 빈곤에 관한 유효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았고 전쟁과 테러가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감각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1년 3월 1일에 이러한 모든 것을 일단 제쳐놓을 수밖에 없는, 문자 그대로 거대한 지진이 열도를 덮쳤습니다.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입니다.(본문 328P)
그런 시대 상황 탓인지 2010년대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대’였습니다. 2000년대부터 축적된 불온한 공기가 가득해져서 한꺼번에 터진 듯했습니다.(본문 330P)
2010년대 소설의 경향을 대략적으로 훑어보았습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대라고 하는 의미를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노동환경의 악화, 인구감소와 고령화, 재해와 원전 사고, 안전보장 정책의 전환과 항간에서 회자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 디스토피아 소설의 유행은 현실의 가혹함에 호응하고 있습니다. 소설가는 동시대의 공기를 제대로 흡입하고 있는 것입니다.(본문 383P)
순문학의 DNA에 구속되어 니힐리즘을 자랑하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세상에 절망을 뿌려대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반격하는 자세’만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닐까?
1960년대에 사소설의 막다른 길을 타개한 것은 젊은 작가들이 외부의 세계로 나가는, 문자 그대로 ‘항해기’였습니다. 일본의 동시대 소설에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온 것들이 있습니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마라. 차세대의 문학사는 이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본문 398~39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