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宣城)김씨의 선성은 안동 예안(禮安)의 옛 지명으로
후손들은 본관을 예안김씨 또는 선성김씨 두 이름을 같이쓴다.
원시조는 김알지이며 그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예안의
호장(戶長)을 지낸 김상(金尙)을 시조로 하고있다.
봉화 선성김씨 빈동재사(奉化 宣城金氏 賓洞齋舍)
선성김씨 빈동재사는 선성김씨 10세손으로, 세종 때에 문신이며
천문학 발달에 기여한 천문학자인 김담(金淡, 1416~1464)의
묘지를 수호하기 위한 재사로, 최초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753년에 중건하였으며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빈동재사는 안동 문화권에 집중된 口자형 중에서 측면에
누(樓)를 둔 형태의 본채 건물 1동인데, 구조 양식적으로 18세기
전에 주로 나타나는 기단, 창호, 지붕 형식 등이 잘 보존돼 있다.
"코쿨", "흙 등잔대" 등을 설치한 건물로, 코쿨은 강원도 산간 지방과
경북 북부지방 등에서 난방용과 조명으로 쓰던 흙으로 된 벽난로인데,
생김새가 사람의 콧구멍과 비슷하여 코쿨이라 하며, 희소한 가치뿐
아니라 재사건축 양식사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료라고 한다.
김담(金淡,1416~1464)은 19세에 집현전 학사가 된 뒤 문신 겸
천문학자인 이순지와 함께 당시 국립천문대에 해당하는 "간의대"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독자적인 역법(曆法)을 확립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자주적 천문학 체계를 수립했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김담은 19살 때 형 김증과 함께
문과에 급제해 형제가 같이 집현전 정자(正字·정9품)에 임명됐다.
집현전 학사 중 형제가 나란히 선발된 유일한 경우였다.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 김담은 곧 세종의 눈에 띄었고, 이순지와 함께
문과 급제자로는 예외적으로 과학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선성김씨 빈동재사 내부 전면
김담은 천문학 외에도 세법, 측량, 제방 축조 등 수학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이순지와 함께 "칠정산(七政算) 내편"과
"칠정산(七政算) 외편"을 비롯한 많은 천문역서를 교정, 편찬하였다.
누대(樓臺)
이전까지는 중국의 역서를 수입하여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칠정산(七政算)은 중국의 수시력과 대통력에 기반하면서도
중국이 아닌 조선의 천문 환경을 기준으로 만든 최초의 역법이었다.
누대 마루
참고로 선성(=예안)김씨의 계대(系代)를 살펴보면
시조 김상(金尙)을 1세로, 2세 김존성(金存誠), 3세 김돈부(金敦富),
4세 김희보(金希寶)까지는 본관인 예안에서 모두 호장을 지냈다.
5세 김성세(金成世)는 봉익대부 밀직사(密直使), 6세 김뉴(金紐)는
중현대부 대호군, 7세 김방식(金方軾)은 봉선대부 비순위정용호군을
역임했으며, 8세 김로(金輅)는 벼슬이 좌우위 보승낭장이였으나,
손자인 문절공 김담(金淡)이 귀하게 되어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선성(=예안)김씨의 중시조(中始祖)로 받들어졌다.
누대 맞은편
중시조 김로(金輅)는 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 등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이때부터 가문이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아들 김소양(金少良)은 현감을 지내고, 김소양(金少良)의 아들
김증(金潧)은 문과에 급제하여 금산군수를 지냈다.
다락으로 오르는 원목계단
김로(金輅)의 손자이자 김소양(金少良)의 아들 김담(金淡)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며. 사후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받아
이후 문절공파(文節公派) 의 파조가 되고, 귀강서원에 배향되었다.
김담(金淡)의 현손인 김륵(金玏)은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과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시호가 민절(敏節)이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대문간채에 속하는 전면
선성(=예안)김씨는 교리공파(김증), 문절공파(김담),
통찬공파(김홍), 참판공파(김신), 대사헌공파(김지),
장령공파(김비), 학생공파(김존의) 등 크게 7개파로 분파되었다.
인구는 18,900여 명으로 예안 15,600, 선성 3,300여 명이다.
빈동재사 정문
빈동재사 전경
빈동재사 계곡초입에 위치한 문절공 신도비각
문절공 담선생 신도비명(文節公 淡先生 神道碑銘)
신도비 상단(비두)
둑이 터져버린 재사 입구의 저수지와 말밤(수초)
고려엉겅퀴(=곤드레) 재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