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은 영원의 길이며
무지는 죽음의 길이다.
그 영혼이 깨어있는 이들은
영원히 살 것이며
그 영혼이 잠든 이들은
이미 죽음의 집에 들어섰다.
출처: 법구경 21
옹달샘의 물:
닦음의 깨어 있음은
배경의식의 깨어남입니다.
문화권에 따라
깨어 있음의 개념과 용어가 다양하지만
우리의 경우
깨어 있음은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생리적 의식의 깨어 있음과
이성의 깨어 있음
그리고
배경의식의 깨어 있음이 있습니다.
첫째
생리적 깨어 있음은
판단하는 의식인 마음의 깨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단순히는 잠이나
의학적 코마 상태와는 대비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그 깨어 있음이지요.
그러나 여기엔
뇌세포를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세부적으로 다양한 상태가 있습니다.
잠의 경우
깊은 잠과 꿈이 이루어지는 램수면이
있습니다.
깊은 잠은
가장 낮은 델타파를 발산하고 있으며
꿈은
이미지 작용이 가능한 세타와 알파파를
냅니다.
자각몽이나 꿈의 기억은
알파파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잠에서 깬 일상은
일반적으로 알파와 베타파로 구성됩니다.
다소 혼잡한 의식 상태에선 베타파이며
집중 상태는 알파파입니다.
그러나 드물기는 해도 일상에서
세타파가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잠을 잔다고
뇌세포 모두가 셧다운되지는 않지요.
뇌의학은
잠을 잘 때
뇌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로 전환될 뿐
일부 세포는 계속 깨어 있다고 합니다.
의학적 코마도
일부 전두엽이나
운동을 관장하는 영역이 쉴 뿐이지
많은 영역이 깨어 있지요.
상식에 준하는 일상적 깨어 있음은
생리적 깨어 있음의
작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생리적 깨어 있음은
뇌신경의 역할 비중이 많기는 하지만
시각 청각 촉각을 비롯한
말단 감각 세포들과의
총체적 네트워크이지요.
전통적으로
이들 각 부분을 나누는 관습이 있지만
현대적 의미에선
이들을 나누어 생각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리적 의식' 하나로 묶었습니다.
생리 의식의 주요한 특성은
신경 세포와 결합한 이미지 작업
곧 판단 작업입니다.
닦음에선
판단 의식을 '마음' 이라 정의하는데
마음은
생리 의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생리 의식이 곧 마음은 아니며
마음은
보다 확장된 차원을 지니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멍 때리기' 라는 표현은
과도한 판단 작용의 수위를 낮추는
현상입니다.
과도한 뇌활동은
뇌의 베타파를 높이거나
30Hz 이상의 감마파를 유발하기에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적 방편이지요.
이것은
의도적으로 개념의 이미지 작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약물이
같은 작용을 합니다.
수련 방편 중 위빠사나는
'깨어 있음' 을 슬로건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내부를 살피면
여기서의 깨어남은
마음의 깨어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습관적 인식 작용을
파고 들지요.
현장의 신선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억에 의한
기계적 인지가 대부분이기에
우리의 감각적 의식을 깨우는
훈련을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 이라 'mindfulness' 라고
합니다.
이 표현대로 위빠사나식 깨어남은
마음의 깨어남이 맞습니다.
생리 의식을 기반으로 한
판단 의식의 정교화이지요.
그래서 단순한 한 동작을
수 십 가지로 나누어 인식하고
마음의 양태 또한
이런 식으로 구분합니다.
현장에 등장하는 무수한 대상들을
구분함으로써
생생한 알아차림을 정교히 합니다.
그러나
이런 깨어 있음은
근본적으로 판단에 기반하고 있지요.
실제 이런 수련에 몰두할수록
뇌는
디폴트 모드 곧 '멍함' 을 갈구하게 되지요.
누구나
이 수순으로 넘어올 수 밖에 없음에도
그 다음 단계를 지도하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명상은
생각이 멈추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요가수트라에 있는
요가의 정의가
'요동치는 판단 의식의 멈춤' 입니다.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은
기술적으로
완료되지 않은 방편입니다.
생리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깨어 있음은
신경세포와 연계된 판단하는 의식
곧 마음의 활성화입니다.
생리 의식의 깨어남은
건강한 인간 활동을 가능케 하고
환경과의 교감을
증대시킵니다.
그러나
닦음의 깨어남은 아니지요.
둘째
이성의 깨어 있음은
의미의 차원에 대한 깨어남입니다.
사회학적으로
'계몽'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요.
생리 의식이
자연 혹은 물리적 깨어남이라면
이성의 깨어남은
형이상학적 차원으로의 확장입니다.
1차적 생리 인식을 넘어
2차적 의미 인식의 단계이지요.
이 의식의 주된 특성도 판단이지만
단순 판단이 아닌
해석입니다.
목적과 가치를 이해하는
의식 수준이지만
근간이 판단 작용이기에
이성은
마음으로 분류되지요.
이성은 생리 의식의 확장 형태이므로
뇌파나 다른 물리적 계측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셋째
배경의식의 깨어 있음은
생리 의식과는 전혀 무관하며
판단 작업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마음과 교집합이 없는
온전히 분리된 차원입니다.
현상의 차원이 아니기에
애초에
문명의 기기로 계측이 불가능하고
잠을 자지 않는다고
깨어나는 의식이 아닙니다.
여기엔
mindfulness 와 같은
이원성에 근거한 알아차림이 없습니다.
위빠사나 수련자가
배경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배경의식은
비현상의 영역
이원성 밖의 차원이지요.
남아시아 전통에서
인간의 최종 평안과 안락과 행복을
목샤moksha 라고 합니다.
니르바나nirvana 는 파생 개념인데
중국 음사로는 열반이라 하지요.
명칭이야 어떻든
이들 개념이 가리키는
현장에서의 실제 의식 상태는
사마디samadhi 입니다.
닦음에서 사마디는
배경의식과 마음이 동시에 깨어 있는
이중성의 의식 상태를
가리킵니다.
배경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사마디는 없습니다.
닦음에서
배경의식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깊은 곳 당당히 피어올라
관심의 지역 아랑곳 않고
어둠 갈라 세상 드러내니
밝은 생기 너로 인함이네.
..241014小野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덕분에 시월이 행복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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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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