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조화, 소설의 행복
김도언
‘조화’는 자연의 본능 같은 것이다. 이 말은 살아있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무릇 조화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항상성이라는 일종의 자연법칙이 개입한다. 그런데, 자연계가 복잡해지고 인간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배적인 생태계를 만들면서 애초에 유지되던 조화와 질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립과 반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균열의 양상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 자연과 사물 사이에서 매우 다채로운 양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조화가 무너지는 균열의 양상은 문학작품이라는 텍스트를 둘러싼 작가와 비평가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줄리안 반즈의 평판작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언급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이 작품은 내 생각에는 현대소설의 이적 같은 작품이다.(줄리안 반즈는 1946년 생으로 박범신, 이외수, 윤후명 등과 나이가 같다.) 이 작품은 소설의 일반적인 형식과 구성을 파기하고 매우 파격적인 형식실험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실험성은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며 실존 인물인 플로베르의 평전 형식을 취하고 있는 부분에서 가장 극명해진다. 이 평전 형식의 소설을 통해 줄리안 반즈는 문학작품을 둘러싼 창작자와 수용자의 욕망과 인습적 태도 등을 매우 정교하게 문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은유적으로 텍스트의 조화를 욕망한다. 소설 속에서 줄리안 반즈는 비평가의 왜곡된 역할과 작품에 대한 독자의 경직된 수용을 지적하기 위해 에니드 스타키라는 실존했던 비평가의 작업을 언급한다. 에니드 스타키는 플로베르 연구의 권위자였는데, 그녀가 플로베르의 대표작인 『보바리 부인』을 분석하면서 중요한 인물인 에마의 눈동자 색깔이 일관되지 않고 세 번이나 바뀌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물의 외양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에마의 눈을 갈색으로 묘사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진한 검은 눈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푸른 눈으로 묘사하고 있다.”
줄리안 반즈는 자신이 『보바리 부인』을 여러 번 읽었음에도 여주인공의 눈빛이 그처럼 변한다는 사실은 한 번도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작가의 실수에 대해 관대하지 않는 비평가의 태도를 반문학적 행위로 바라보며 사실상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작가를, 실수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 완전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범하기 쉬운 오류의 일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문학의 사실성이 문제가 된다면, 아이러니와 환상 같은 수단은 더욱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주장이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과 같은 가치가 있는지 모른다면, 사실이 아닌 것, 또는 사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인 것의 가치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기에 줄리안 반즈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엄정하고 엄격한 정신의 호위를 받는 것이지만, 그것이 자연과학처럼 언제나 사실만을 지향하지는 않는 것이며 지향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오히려 의도되지 않은 오류와 실수까지를 포함할 때 문학작품의 유기적인 해석의 틈이 열릴 수 있고, 독자들은 그것에 더욱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외적 실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작품의 향기는 곧 휘발되고 말아 독자는 그 작품이 베푸는 연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바르고 알고 분명한 태도를 갖는 것이 텍스트의 조화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사실 줄리안 반즈는 수용미학의 왜곡된 태도에 대해 훨씬 더 심층적이고 복잡한 얘길 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늘 이 정도로만 이해해도 충분할 것 같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조화’는 자연의 본능 같은 것이며 이 말은 살아있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무릇 조화 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문학작품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문학작품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생명을 가진다는 내 개인적인 신념을 표현한 것이다. 문학작품의 모든 텍스트는 자연이 그러하듯 조화를 지향한다. 그 조화는 창작자와 수용자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다시 말해, 작가와 비평가, 독자가 모두 행복하다면, 그것은 텍스트의 조화로움 때문이다. 그런데 텍스트의 조화에 균열이 생기면, 어느 한쪽만 행복하거나 어느 한쪽은 불행해진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이것은 작가의 의지만 가지고도 되는 게 아니고 비평가와 독자의 너그러움만으로도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문학작품의 존재원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와 애정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계간 『시에』 2013년 가을호
김도언
충남 금산 출생.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소설, 2012년 『시인세계』로 시 등단.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 『악취미들』, 『랑의 사태』.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꺼져라, 비둘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