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Cappadocia, Kapadokya)란 페르시아어 '카트파두키아'에서 유래한 말로 기원전 6세기께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때에 생긴 작은 왕국의 이름이기도 하며 '좋은 말들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카파도키아는 지도에 나오는 도시명이 아니고,터키(Turkey)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나톨리아(Anatolia) 고원의 남동부 일대를 말하는데, 동쪽 카이세리(Kayseri)부터 서쪽의 악사라이(Aksaray), 북쪽의 하치벡타쉬(Hacibektas), 그리고 남쪽의 니그데(Nigde) 까지 매우 광할한 구역입니다.
카파도키아는 300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재가 고원지대에 두툼하게 쌓여 응회암층을 형성했읍니다. 이 응회암층은 단단하지 못해. 오랜 세월 지하수와 비바람에 침식되면서 무른 부위는 깎여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살아남아 지금 같은 버섯이나 죽순모양의 기암군이 형성됐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박해기에 종교의 탄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숨어들어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네브세히르(Nevsehir), 윌굽(Urgup), 우치사르(Uchisar) 등의 지역에서는높은 언덕에 성을 중심으로 바위를 파내어 주거 단지를 만들었고, 괴레메(Goreme)와 젤베(Zelve) 지역에서는 버섯바위 안을 파서 집을 만들어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데린구유(Derinkuyu)에서는지하 동굴을 연결하여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어 생활하였습니다.
괴레메 (Goreme)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으로 이 일대가 전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파도키아의 인근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용이하여 카파도키아 투어의 시발점이 되는데, 우치사르 정도는 가뿐히 걸어 갈수 있습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Goreme Open-air Museum)
괴레메 벨리중 가장 인기있는 곳으로 거주가들이 바위를 깍아 만든 교회에는 11~12세기 경 의 프레스코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식당, 교회, 수도원, 무덤 등 볼 것이 많은 곳입니다. 수도원들 중에는11세기 초에 지어진 6층 규모의 수도원(Maidens Monastery)을 시작으로 성 바실 교회(St. Basil church),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사과 교회(Apple church), 성 바바라 교회(St. Barbara church), 뱀 교회(Snake church), 샌들교회(Sandle church) 등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위에서 보는 풍경
우치사르 (Uchisar)
우치사르는 터키어로 3개의 요새라는 뜻으로, 카파도키아에 가장 높은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자세히 보면 벌집같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데, 이곳에는 대개 비둘기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비둘기 뿐만 아니라, 수도사들도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데, 그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길러서 '비둘기 골짜기'라는 별명이 붙었다고도 한다. 성채 꼭대기에 가면 360도 파노라마로 카파도키아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고, 괴레메 골짜기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파샤바(Pasabag, Valley of the Faity Chimneys)계곡
버섯 바위로 유명한 곳으로 카파도키아 중에서도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한 바위에 세 개의 버섯이 있다하여 유명해진 세쌍둥이 버섯바위, 낙타바위 등이 유명합니다. 지금은 포도원이 있으며 윗쪽만 파서 은친처 및 교회로 사용한 바위가 많은데 침략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구를 높은 곳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세쌍둥이 버섯바위
낙타바위
점심 식사한 동굴 속 식당
터키 민속음악 / 우스쿠다르(Uskudar)
위스크다르라는 터키 민요의 진짜 제목은 캬팁이다. 캬팁이란 서기, 비서정도의 공무원을 말한다. 위스크다르는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마을의 이름으로 지금의 아시아지구에 해당된다. 오스만 제국 때에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제 2대 황제 오르한 가지가 비잔틴의 콘스타티노프 황제의 딸과 결혼하고, 장인을 1347년 위스크다르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후 5년만에 위스크다르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위스크 다르는 오스만 제국이 아나톨리아 지역에 대한 원정의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군사 기지 역할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는 물론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위스크다르는 옛날에도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한다. 이스탄불을 가장 아름다운 시각에서 보기 위해서는 꼭 위스크다르를 들려야 한다. 위스크다르에서 보는 이스탄불 도시의 실루엣은 한 편의 화폭이 아닐 수 없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활홀감을 자아내게 한다. 저녁 해질 무렵 위스크다르에서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도시의 건물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오스만 제국의 영화가 해협의 푸른 물과 어우러져 해안 저편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을 갖게된다.
위스크다르는 그 옛날 위스크다르의 처녀가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을 바라보면서 캬팁이라는 노래를 불렀음직한 도시로 남아 있다. 역사의 도시 위스크다르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캬팁이라는 노래이다. 캬팁은 오스만 제국 때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터키의 전통적인 민요이다. 따라서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터키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이 민요는 부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곡조가 되고, 빠르게 부르면 흥이 생기는 그런 노래이다. 노랫말을 보면, 위스크다르에 살고 있는 처녀가 젊은 공무원을 사모하는 연가이다. 캬팁의 가사를 우리 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비가 내리네
내 님의 외투 자락이 땅에 끌리네
내 님이 잠에서 덜 깨어 눈이 감겼네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막으리
내 님의 깃 달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손수건을 놓았네
내 님을 위한 손수건에 사랑을 담았네
어느새 내 님이 바로 옆에 있네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막으리
내 님의 깃달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