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6]나는 과연 ‘황홀한 은퇴자’인가?
아산에 사는 지인선배가 어제 구순의 담임샘과 친구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졸문 <찬샘별곡 Ⅱ-95>을 읽고, “우천은 좋은 만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네요. 참 황홀한 은퇴자∧∧”라는 댓글을 보내왔다. ‘황홀한 은퇴자’라? 과연 그러한가? 이게 칭찬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글을 쓴다. 그분은 내가 귀향한 이후 나의 졸문 <찬샘시리즈>를 모두 받아봤으므로(현재까지 852편), 나의 귀촌 일거수일투족과 생각을 거의 안다고 할 것이다. 아무튼, 황홀이란 단어는 한자조차 황홀恍惚하다.
또한 최근 <아름다운 사람(만남, 인연)> 시리즈를 27편까지 쓰자, 서울에 사는 용띠 선배가 “이제, 아름다운 사람-우천 최영록을 추천합니다”라고 댓글을 보내 깜짝 놀랐다. “아니, 제가 저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명명하며 글을 쓸 수 있을까요?”하니 “추천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서... 흐흐”라고 했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중국의 한 대부집에서 식객食客으로 있던 ‘모수’라는 꾀돌이가 자신을 써먹어보라고 ‘self 추천’을 했다는 고사), 자기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쓴 예는 없을 터, 한참동안 민망했다.
아무튼, 두 지인선배의 댓글을 보고 자문자답해 본다. 나는 황홀한 은퇴자인가? 5년여 동안 동분서주, 좌충우돌하며 수많은 생활글을 썼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의 귀향歸鄕을 ‘탁월한 선택excellent choice’이라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자기가 태어난 집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제법 그럴 듯하게 리모델링해 ‘전원생활’ 비슷하게 유유자적하게 사는 친구들이 주변에 얼마나 될 것인가? 흔치는 않을 일. 더구나 구순의 아버지를 모신다(사실은 내가 모심을 받은 셈이지만)는 명분은 ‘사이비 효자’를 넘어 ‘진짜 효자’로 둔갑하기에 맞춤이었다.
간헐적 만남의 ‘월말부부’는 10년 공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너스레를 곧잘 떨었지만, 장단점은 있다고 봐야 할 터(마눌님의 의중意中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허나, 나로선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잔소리’를 안들어 좋았을까? 자신있게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인생2막’을 열면서 어떤 욕심(?)도 버리고, 부리지 않고 낙향거사로, 초보 농사꾼으로, 또래 친구들과 재밌게 어울려 ‘반半 자연인自然人’처럼 사는 것을 두고 ‘은퇴 성공자’라고 한다면, 황홀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것 같아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예전처럼 통신通信이 어렵다면 몰라도 ‘손전화’ 하나면 멀리 바레인에 사는 여덟 살 손자하고도 눈 앞에 본 듯 얘기하는 세상이니, 시공간의 소통疏通이 무슨 걸림돌이 될 것인가?
두 번째, 나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진짜 아니다. 나의 주변엔 웬일인지 ‘아름다운 사람들’이 ‘천지삐까리’인 것은 맞다. 그게 나만의 특유의 인복人福인지는 모르겠다. 나의 ‘아름다운 사람’의 기준(잣대)은 혼자는 절대로 못사는 사회(세상)에서 가족을 비롯한 남(친구 등)들에게 그 어떤 ‘민폐’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도움(하다못해 친절만 해도 좋다)’이 되는 사람이다.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사는 고귀한 영혼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굳이 성직자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사악한 사람보다 ‘천사표’들이 몇 수십 배 많기 때문에, 이 풍진 세상이 그래도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언제나 ‘가족이기주의’에 빠져 있고,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이 부족하다. 그나마 작은 장점이 있다면, 친구를 비롯한 타인에게 그것이 책이든, 농산물이든, 물건이든 조건없이 주고 곧바로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흐흐. 근데 그것은 팩트일까?
여지껏 소개한 <아름다운 사람> 스물일곱 분은 그 어떤 잘난 체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 하여 <아름다운 사람> 시리즈는 계속 될 것이다. 아무튼, 어떤 식이든 주변에 헬프help가 되는 인간이기를 소망하지만(그렇다고 ‘착함병病 증후군’은 아니다), 실천궁행實踐躬行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저 노력할 뿐. 세상 모든 것이 다 ‘글감’이 되는 나의 ‘생활글’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