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거는 작은 소망
변 영 희
계미년은 몹시 시끄럽고 어수선한 한 해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비롯하여 북핵 문제와 새만금 갯벌문제, 여중생 사망과 촛불 시위, 태풍 매미 피해, 오랜 경기 침체로 인한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 급증, 대통령의 재신임 카드와 이락크 파병, 살상의 무기로 쇠스랑까지 등장한 부안사태,고질적인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10.29 대책, 경악할 만한 액수의 대선자금 수사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중대한 문제들의 연속이었고 그 소용돌이는 아직도 갈앉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도 갑신년 새해는 어김없이 밝았고 어떠한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시금 희망과 포부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갈파한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리며 비록 사소하고 하찮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작은 것부터 하나씩 개선하고 실천해 나가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자비광명의 밝은 사회로 나아가는 지름길을 삼았으면 한다.
신문에서 '中 동포 지하철서 투신 자살' 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최근의 외국인 불법체류 단속 여파로 중국에서 많은 돈을 들여 한국에 왔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살을 했을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또 하나는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18세 여자가 갑자기 선로에 떨어져 숨졌다는 지하철에서의 추락사고 소식이었다. 모두들 취업하기 힘들어 하는 터에 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성남 시내의 S전자에 입사했다는 金모양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절대로 죽일 뜻이 없었다구요...."라면서 지하철 승강장에 서있던 한 여인을 선로로 밀쳐 목숨을 잃게 한 범인-노숙자가 T V에서 입고 있는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내가 떨어져 목숨을 잃은 장소에 자주 나와 본다는, 졸지에 아내와 가정의 단란함을 빼앗긴 죽은 여인의 남편과 어린 아들도 보았다.
지하철에서의 자살, 타살, 추락사의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전 부터 나는지하철의 위험을 피부로 느끼며 살았다. 마치 그 옛날 60년대 초에 오지로 떠나는 완행열차처럼 시발점에서 한 번 앉으면 웬만해서는 유동성-내리는 승객이 거의 없는 0호선 지하철. 이따금 어느 역에 이르러서는 출입문을 활짝 연 상태로 10분 혹은 그 이상의 정체를 한다. 그럴 때는 무릎관절이 뻣뻣하게 굳다가 나중에는 눈비에 얼어터진 장작개비처럼 되기도 한다.
지하철 안 풍경은 어떠한가. 요즘 모인 사람이 100 이면 핸드폰은 110 개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업무개시라도 하는 것일까. 그중에는 피치못할 상담이나 사업상 처리할 안건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에서 6,70대에 이르는 노년층까지 흡사 떠들기대회에 출전한 선수들같이 목청껏 소리를 질러댈 때는 그들의 무신경,안하무인, 무례함 때문에 혐오감이 솟는다.
한 떼의 청소년-학생들이 우루루 지하철 안으로 몰려 들어 온다. 입에 물고 빠는 사탕, 과자봉지, 어떤 때는 아이스크림, 각자 기호와 입맛대로 먹고 빨고 바스락대는 소리는 정도가 지나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공공장소에서 먹는 입 따로, 웃고 떠드는 입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듯 남의 시선이나 불편 쯤은 아랑곳도 없다.
그뿐 만이 아니다. 지하철에는 찬송가 소리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천히 지나가는 부부 걸인, 인쇄된 종이쪽지를 휙휙 돌리는 비정상의 몸을 가진 청년, 껌통이나 바늘 쌈지를 들이대다가 눈감고 있는 승객에게 공공연하게 시비거는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걸행각이 펼쳐진다. 다른 한 쪽에서는 골프, 산책용 장갑을 파는 여인, 아득한 시절의 음반-첸징파트너 등이 포함된 CD판매원, 목도리 ,우산, 우비, 선풍기덮게, 옷솔 등등 각종 잡상인들의 생업무대가 되기도 한다.
이런 북새통을 뚫고 환승역에서 하차했다고 하자.지하철과 승강장 사이는 왜 그리 넓은가. 새파란 젊은이들도 발을 헛디뎠다 하면 순식간에 저 세상으로 갈 만큼 위험한 곳이고 보니 조심을 한다고 하여도 앗차!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3분에서 5분, 어떤 때는 10분도 넘게 지하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막무가내로 전후좌우 사정없이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 살인 무기가 따로 있을 까 싶게 모골이 송연해지곤 한다.
지하철은 장점도 많다. 럿쉬아워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비교적 시간을 맞출 수가 있고 밝은 형광등 아래서 신문이나 책을 읽을 수도, 그리고 동지섣달 추운 날엔 후꾼 할만큼 난방이 돼있어 언몸 녹이는 데도 그만이다. 그러나 예절 모르는 시민 군상들, 위험한 시설을 방치하는 당국의 무관심 속에 목숨을 건 승하차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갑신년 새해에는 지하철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당국은 가능하다면 지하철의 실태를 몸소 체험해 보고 점차 개선해 감으로써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안전에 대하여 국가기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다해 주었으면 한다. 지하철 '요령껏 위험을 피해서 타고 다녀라'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서민들의 발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교통- 지하철의 안위 문제 만큼은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간불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