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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 주해
1. 바울은 비디시아 안디옥에서 고전 15장 3-5절에서 선포한 사도들의 전승된 복음을 전했다.
1)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되셨으며 성경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택한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현현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2) 그리고 베드로(행2장)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성경대로 부활하였음을 증거한다.
2. 박해로 인하여 이고니온으로 가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다(14:1).
1) 이고니온에서도 비시디아 안디옥처럼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으나 박해도 동일했다.
2) 방해에도 오랫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으나 돌로 쳐 죽이려는 위협으로 인해 루스드라로 피한다.
3) 앉은뱅이를 치유한 일로 제우스와 헤르메스라면서 제사를 드리려하자, 옷을 찢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전한다.
3. 바울과 바나바는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아, 구브로 섬 →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 →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1) 오늘 본문은 1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2) 사도들은 성령에 붙잡혀 전심으로 복음을 전한 결과 생명을 얻은 제자 공동체가 세워짐과 함께 사도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열심도 극심하였다.
4. 박해할 때마다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열정은 대단하였는데, 사도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열심도 대단하였다.
1)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사도들을 따라와서 군중을 선동하고 바울을 돌로 친다.
행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를 연상하게 한다. 아마 바울도 신성모독의 죄로 인하여 그렇게 돌에 맞았을 것이다.
3) 박해자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내 버린다.
5. 제자들이 돌에 맞아 죽은 것 같은 바울을 둘러섰을 때, 바울이 일어나서 성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난다(20절).
1) 루스드라에서 더베는 남동쪽으로 56km 정도 떨어진 거리다.
2) 돌아 맞아 죽었다고 할 정도로 상했던 바울은 다음날 장거리를 걸어가서 복음을 전한다. 성령께 사로잡힌 복음의 열정은 돌로 맞아 죽을 뻔한 고통을 삼켜버린다.
3) 박해로 인하여 돌에 맞았던 바울은 더베에서도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는다.
6.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에서 제자를 삼은 것으로 1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한다.
1) 그동안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졌던 곳을 역순으로 되돌아가면서 방문하면서 파송교회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간다.
2) 복음을 전했던 곳마다 사도들을 박해하려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 사도들은 박해가 있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도리어 신생 교회들을 찾아간다.
3) 복음을 믿은 제자들을 자신들처럼 고난을 통과하는 견고한 믿음으로 세우기 위해서다.
7. 바울은 제자들을 찾아가서 두 가지 일을 한다.
1) 먼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표준새]행 14: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2) 직역하면, “우리는 많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이다.
3) “믿음을 지키라”라는 헬라어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믿음 안에 거하라”라는 뜻이다(NRSV, “encouraged them to continue in the faith”).
4) 환난으로 인하여 위축되지 말고 도리어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된다는 “반대정신”으로 마음을 굳세게 해 준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8. 두 번째,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우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주님께 맡겼다.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1) 놀랍게도 이제 막 믿은 제자들 중에서 “장로들”이 세워진다.
2) 물론 그 장로들은 연약하다. 그러기에 장로들을 부활하신 주님께 맡긴다.
3) 장로들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돌보지만, 교회의 머리는 부활하신 주님이다.
9.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박해로 사도들이 떠나야 했어도, 그곳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52절).
1) 이제 그 제자들 중에서 장로가 세워지면서 서로를 돌아보며 목양하게 된다.
2) 그들에게 환난을 두려워말고,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3) 사도들이 전한 전승된 복음, 성령이 그 복음을 가르치실 때, 짧은 기간에도 이렇게 믿는 자들이 생겨나고, 장로들이 세워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간다.
4) 사도들은 복음을 전한 모든 지역에서 이렇게 했을 것이다.
10. 두 사도는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를 떠나 밤빌리아 지방에 이른다(24절).
1) 그들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에 앗달리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파송교회인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로 간다(25절).
11. 안디옥은 그들이 선교 활동을 하려고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내맡기고 나선 곳이다.
행 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1) “두 사도가 이룬 일”(26절)은 “주께서 불러서 시키신 일”(13:2)이다.
2) 바울이 회심할 때 주님이 주신 소명이 10년이 훌쩍 지나서 성취되어 간다.
12. 안디옥교회로 돌아온 사도들은 교회를 모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한다(27절).
행 14: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행 14: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1) 사도들이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있었다는 말씀은 참 따뜻한 말이다.
2) 오늘날 교회와 선교사의 관계, 교회와 목회자와의 관계와 다른 느낌을 준다.
13. 안디옥 교회와 바나바와 바울은 어머니와 자녀 같은 느낌을 준다.
1) 바울과 바나바는 마치 자기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오랫동안 함께 있는 것 같다.
14. 성령충만함으로 복음을 전하여 각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치열한 박해도 있었다.
1) 한편으로는 성령이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 중에 장로들도 세워졌다.
2) 한편으로는 신생교회, 이제 막 믿은 제자들이 근심될 수도 있다.
3)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그 모든 것을 주님이 하셨고, 주님이 하실 일로 맡기고, 하늘 가족 공동체에 돌아와 안식하고, 사랑으로 교제한다.
15. 선교사와 목회자와 교회가 이런 관계인 것이, 초대교회요 안디옥 교회였다.
1)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한 주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간 후에, 교회에 와서 한 주간의 삶을 나누고 함께 교제하는 안식이 있는 교회였을 것이다.
2) 오늘날보다 훨씬 치열한 삶, 박해와 환난을 통과하는 믿음이 필요한 현실이 있었다.
3) 그리고 복음이 주는 평안이 있었고, 안식하고 쉴 수 있는 교회가 있었다.
16. 전에는 너무 지나친 헌신과 쉼 없는 사역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하던 오류가 있었다.
1) 최근에는 너무 쉼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오류가 있기도 하다.
17. 박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 돌에 맞아 죽은 것 같았던 그 다음 날,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한 것을 보면, 쉬지도 않고 복음만 전한 것 같다.
1) 초대 교회와 사도들은 “함께 오래 있으면서 교제하고 안식하는 삶”도 있었다.
2) 오늘 본문에 “돌에 맞는 바울, 환난을 통하여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함께 오래 머무는 것”이 다 있다.
18. 예수님의 제자 파송도 동일하였다.
1) 전도 여행 파송과 치열함
마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 보고와 쉼
막 6: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 나의 묵상
몸의 건강을 위해서 여러 영양소가 필요하다. 또한 먹는 것, 운동, 스트레스 관리가 동시에 중요하다. 하나님은 단 1가지만으로 되지 않게 하셨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어리석음을 나는 그대로 답습하였다. 전통적으로 사역자는 헌신해야 한다고 하는 대로 쉬지를 못했다. 교회 시스템도 사람들의 요구도, 나의 생각도 모두 쉼 없이 열심히 사역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쉼이 필요한 시기에도 거절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더 이상 열심을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 여파는 반대로 지나친 쉼이 필요하게 만들었다. 사도들, 특히 바울은 늘 열정적이고, 사역을 하고, 헌신을 하고, 박해를 견딘다고만 생각했다. 선입견이다. 예수님도 곤할 정도로 사역할 때도 있었지만 한적한 곳에 종종 거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박해 받을 수 있는 사역과 함께 쉬라고 하셨고, 바울과 바나바도 돌에 맞는 박해를 직접 격고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였지만 안식하고 쉬고 머물줄을 안다.
하나님의 열심과 다른 나의 열심히 자기주장이 되듯이, 하나님이 피조물의 한계를 두셨는데, 그것을 넘어서려다가 도리어 낭패를 보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신생교회를 돌보면서도 동시에, 신생교회를 주님께 맡기고 오랫동안 안식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본다. 나 같으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 신생교회들을 찾아갔을 것이다. 헌신과 섬김만 생각했지, 부활하신 주님,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믿지 못함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환난과 안식, 어울리지 않는 이 2가지를 하나님이 함께 명하신다. 아직도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안식을 견디지 못한다. 목회자가 1주라도 교회를 비우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그러면서도 환난 없는 신앙을 추구한다. 나 또한 이 어리석음의 범주에 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 환난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도리어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하는 것이 복음이고 믿음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안식도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며, 연약한 피조물에게 반드시 필요한 누림이다.
환난도 안식도 피하려고만 하였다. 어쩔 수 없이 환난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쉬었다.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는다. 환난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어쩔 수 없는 안식이 아니라, 안식해야만 함을 받아들인다. 환난도 안식도 오직 부활하신 주님을 신뢰해야 해야 한다. 환난과 안식 위에 거하시는 주님이시다. 나의 모든 것을 초월하시며 주관하시며 아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의 주권과 통치와 섭리안에서 현실을 수용하고 안식하길 원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요셉의 고백, 내가 누구관대를 주장하던 모세와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머리이시다.
◈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환난을 통과하는 믿음, 불철주야 헌신해야 한다는 것 또한 이 세대의 주장이었습니다. 지금은 환난 없는 신앙생활, 편안한 신앙생활로 세상의 뜻이 신자들과 저에게 들어옵니다. 성령을 따라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성령을 따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안식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주권과 뜻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틀, 나의 틀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게 하옵소서. 치열하게 환난을 이기는 믿음과 안식하며 쉼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머리되신 주님께서 몸과 지체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제를 누리게 하옵소서. 신생교회의 제자들과 장로들을 주님이 인도하셨듯이 성도들과 항존직, 원형셀, 장로님을 세워 주십시오. 모든 교인들과 가족들이 복음을 통하여 생명 얻어 천국 백성 되게 하옵소서. 주일에 예배와 교제가 참된 안식이 있고, 환난을 이기는 믿음이 세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