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작명법 金庸의 작명법
김용의 작품은 표현이 생기발랄한데, 때로는 유희를 즐기는 듯한 필치를 발휘하여 해학과 흥미가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여 그 묘미가 무궁무진하다.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 주는 묘미는 등장인물의 작명(作名)에 있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일월신교의 교주 임아행(任我行)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내 마음대로 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이 그 사람만큼이나 잘 어울린다.
이 사람은 무공이 고강할 뿐만 아니라 그 수단도 악랄하여 행동에 거침이 없다. 심지어는 무림의 태두인 소림, 무당 양 파 조차도 안중에 두지 않는, 무림인들이 그 이름만 듣고도 치를 떠는 그런 대마두와 같은 인물이다. 임아행의 교주 자리를 빼앗은 동방불패(東方不敗)도 그 이름만 보아도 그 무공이 절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자는 무림의 비학인 『규화보전』을 익혀 최고의 무공을 뽐낸다.
그의 수중에는 항상 자그마한 수 놓은 바늘이 있는데, 이를 가지고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무공을 발휘한다. 임아행이 서 호(西湖) 매장(梅莊)에서 탈출한 후, 흑목애에서 동방불패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영호충, 향문천, 상관운, 이 세 사람의 힘을 합쳐서 간신히 물리칠 수 있었다. 만약 일 대일로 결투를 벌였더라면 동방불패는 결코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아행과 동방불패 라는 이름은 두 사람의 성격과 잘 맞아 떨어진다.
한 사람은 유아독존식이고 또 한 사 람은 안하무인식으로 모두 세상을 벌벌 떨게 하는 무공을 지닌 괴물들이다.
『협객행』에는 무공이 상당한 두 늙은이가 나오는데, 정불삼(丁不三) 정불사(丁不四)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두 형제는 살생을 좋아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들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다. 정불삼은 자칭 '하루에 세 사람 이상을 죽이지 않는다'고 했으며, 정불사는 '하루에 네 사람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은 행동은 아주 황당하고 또 괴이하여 그야말로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게 '불삼불사'한,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인 물들이었다. 흥미로운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기로는 『소오강호』를 따라갈 작품이 없다. '황하노조(黃河老祖)'라는 두 사람의 이름부터 이야기해보자. 한 사람은 성이 '노 (老)', 이름이 '야(爺)', 자는 '두자(頭子)'다. 또 한 사람은 성이 '조(祖)', 이름이 '종(宗 )' 자는 '천추(千秋)'다.
이를 합성해 보면 노야 노두자와 조종 조천추가 되는데 꽤나 이 상한 이름이 만들어졌다. 척 보기만 해도 해학이 넘쳐 흐른다. 또 노두자의 딸은 노불사(老不死), 포부동의 딸은 포불견(불견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란 어릴 적 이름 을 갖고 있는데 그 이름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황하노조' 이 두 사람의 친구인 '흑묘자(黑描子)' 계무 시(計無施)라는 이름은 '무계가시(無計可施)'에서 따온 것으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그 뜻이 분명하다. 그러나 계무시와 그의 별명 흑묘자를 합쳐 놓고 보면 대책없이 훔치려 드는 '욕투무계(欲偸無計)'의 뜻이 되어 아주 흥미로워진다.
역시 『소오강호』에 보이는, 감옥을 책임지며 임아행을 감시하고 있는 매장사우(梅莊四友)의 이름은 사실은 별명일 뿐이다. 작가는 이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이름을 지어 주었다. 글씨를 좋아하는 '독필옹(禿筆翁)', 그림에 심취해 있는 '단청생(丹靑生)', 거문고 연주를 몹시 좋아한 '황종공(黃鐘公)'(황종은 옛날 음악에서 12율의 하나로 그 음이 가장 울림이 크다고 한다),
바둑에 빠져 있는 '흑백자(黑白子)'가 바로 그들이다. 네 사람의 이름을 한데 합쳐보면 '書(글), 畵(그림), 琴(음악), 棋(바둑)'이 된다. 이것은 『사조영웅전』에 보이는 일증대사 문하의 4대 제자 '어(漁), 초(樵), 경(耕), 독(讀)'과 그럴 듯하게 어울리는데, '어초경독 서화금기' 이 여덟자는 서로서로 운이 맞아 떨어지며 운치가 넘치는 그야말로 좋은 댓구가 된다.
이쯤해서 특별히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있다. 작품 속에서는 직접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조협려』와 『소오강호』에서 모두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그 이름도 아주 괴이한 독고구패(獨孤求敗)다. 스스로 패배하기를 소원한다는 이름의 뜻은 천하무적임을 달리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창안한 '독고구검'은 무림의 절세 무 학으로 영호충이 이 절학을 배워 내공은 부족하지만 그런 대고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독고구패와 동방불패, 이 두 사람은 이름에서는 서로 상반되나 그 뜻에서는 일맥 상통한다. 즉, 극도의 자부심이 그 이름에 들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독고구패라는 이름에는 자부심 속에 적막감과 처량함이 내포되어, 글자 그대로 뜻을 밖으로 드러내고 있는 동방불패라는 이름에 비한다면 한결 의미심장하다. 독고라는 성을 가진 이 대협은 자신의 이름을, 나를 패배시킬 맞수를 구한다는 '구패'라 칭하고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을 헤매어 다녔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마침내는 깊은 계곡에 검을 묻어 버리고는 우울하게 생을 마친다. 늘 승리만 하는 영웅이라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자신과 겨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상대를 찾지 못할 때 말로 다하기 어려운 적막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바둑계의 국수들도 하나같이 이런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늘 승리를 추구하지만 늙으면 이기는 것도 재미가 없어진다. 그들은 패배를 갈망하며 더욱 강력한 적수를 갈망한다. 또 해가 바뀌었는데도 상대가 자신의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반집을 다투는 파란만장한 반상의 긴장감도 없다면, 그런 승리는 오히려 견디기 힘들다.
차라리 강력한 상대를 맞이하여 악전고투 끝에 그의 손에 패배하는 것만도 못하다. 진정한 영웅호걸은 자신의 상대가 호랑이나 사자와 같이 용맹하길 바라지, 토끼나 양 마냥 연약한 자이길 바라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독고구패가 백번 싸워 백번 이긴 후 그토록 패배를 갈망하게 된 정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초식만들기★★★
지금까지 기술적 이름짓기와 동물의 모양새를 딴 이름짓기를 살펴보았다. 이들 이름들은 대개 실제 무공초식에 쓰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더욱 기묘한 초식이름은 지금부터이다. 다른 방법으로 초식에 많이 쓰이는 것은,
1. 사람의 형태나 고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2.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사람의 형태나 고사를 이용하는 방법중 유명한 것으로는,
◆선인지로(仙人指路)- 신선이 손을 들어 길을 가르키는 모양으로 권법이나 검법에 쓰인다.
◆동자배불(童子拜佛) 또는 동자배관음의 초식은 부처에 절하는 어린 소동의 모습으로 보통 대결에 앞서 예를 차리는 모습이나 공격초수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조참망(高祖斬芒)은 한고조 유방이 길을 가는데 구렁이가 막았다. 유방이 단칼에 베고나니 왠 노파가 울부짖는다. 그 구렁이가 바로 백제의 아들 이었고 유방이 적제의 아들이라는 고사다.
◆패왕거정(覇王擧鼎)은 춘추전국시대 패왕이 되면 신정을 모시고 군웅들을 모은다는 얘기에서 나온것이다. 또는 초패왕 항우를 나타낼수도 있다.
◆일위도강(一葦渡江)은 달마대사가 버들잎을 의지하고 남경앞 장강을 건넜다는 데서 나온 경신술이다.
◆단봉조양(丹鳳朝陽)은 장안성(長安城) 백성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는 조양봉(朝陽峰) 단봉(丹鳳)의 울음소리다. 온누리에 퍼지는 초식을 의미한다.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회풍파류(廻風擺柳),춘뢰주야(春雷走野), 등등 바람, 별,번개,뇌성, 나무등 수없이 많다.
이런초식은 나중에 한번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 분야의 최고봉인 김용의 수법을 한번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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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나 고사를 이용한 김용의 초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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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풍부한 지식을 이용하여 적잖이 기묘한 초식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중 한림이 가장 좋아하는 신조협려에서 살펴보자. 신조협려는 김용의 작품에서 무공초식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다. 소용녀는 고묘파의 전인인데 그녀가 쓰는 옥녀소심검(玉女素心劍)은 소용녀와 잘 어울리는 수법이다. 옥녀란 선녀이고 소심이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니 소용녀의 이미지와 딱 떨어지지 않는가?
◆수휘오현(手揮五絃)-태극권의 수휘비파를 교묘히 바꾸어 오현으로 대신했다.
◆옥녀투사(玉女套梭)-태극권의 옥녀천사를 교묘히 바꾸었다. 비록 옥녀천사보다는 덜 아름답지만 김용의 수법으로 변화시켰다.
◆금필생화(錦筆生花)--비단에 그림을 그리니 꽃이 피어난다.
◆낭적천애(浪迹天涯)-파도가 절벽에 흔적을 남긴다.
◆화전월하(花煎月下)- 달밤에 꽃전을 부쳐먹는다.
◆청음소작(淸飮小酌)-작은 잔에 맑은 청주한잔.(여성적이지 않는가?)
◆무금안소(撫琴按簫)-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퉁소를 누른다. 다시말해 거문고를 튕기며 퉁소의 구멍을 누르는것이니 분다는 의미이다.
◆소설팽차(掃雪烹茶)-눈을 쓸어담아 차를 끓인다.(얼마나 낭만적인가?) 찻물로는 첫눈이 가장 좋다했는데...
◆송하대혁(松下對奕)-소나무밑에서 바둑을 둔다.
◆지변조학(池邊調鶴)-연못옆에서 학과 논다.
◆소원예국(小園藝菊)-작은 정원에서 국화를 다듬는다.
◆유음연구(柳蔭聯句)-버드나무 밑에서 시를 읊는다.
◆죽렴임지(竹簾臨池)-대나무들이 연못을 둘러쌌다.
◆채필화미(彩筆畵眉)-각종 색으로 눈썹을 그린다.
◆거안제미(擧案齊眉)-상을 눈썹높이로 들어 올린다. 이건 원래 거안여미제라는 시구로 맹광이란 부인이 남편에게 밥상을 들고 갈때 항상 눈높이로 들고 갔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초식은 옥녀소심검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한림이 잘못 뽑았든가 아니면 김용의 실수이겠다. 하지만 분명히 소용녀가 쓴 검법이다.
◆호완옥촉(皓腕玉,月+蜀)-하얀 팔뚝과 옥같은 가슴.
이게무슨 무공초식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앞의 태극권을 비교해보라. 금필생화는 붓처럼 검끝이 떨리며 수많은 검화를 만드는 모습이고 낭적천애는 거친 검풍이 상대의 가슴을 쳐가는 느낌이지 않는가? 청음소작은 작은 손을 들어 고개를 젖히고 상대의 무기를 피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옥녀소심검을 보면 별유천지에 노니는 선녀의 일상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눈처럼 옥처럼 흰 살결을 지닌 선녀,소용녀가 아침에 일어나면 눈썹을 그리고(화장)난뒤 작은 뒷뜰에서 국화를 손질 하고 대나무 우거진 연못에서 학과 노닐다가 봄날엔 버드나무 밑에서 시를 짓고(대련을 하니 아마 상대 신선이 있는 모양이다), 여름이면 소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고 가을달밤엔 국화전에 죽엽청한잔, 겨울이 되면 눈을 받아 찻물을 끓인다. 그러다가 꽃을 그리거나 비파를 타거나 퉁소도 분고 베틀에 앉아 천의를 짠다. 김용이 어떻게 이 초식을 만들었 는지 짐작이 가는가? 이런 무공초식은 소용녀에겐 그저 일상생활하는게 무공연습하는 거나 다름없고 다른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김용이 무공초식에 대해 갖는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낸 부분이라 하겠다.
김용이 무술초식을 만드는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미인을 이용했을 때이다. 신조협려의 양과와 육무쌍이 한바탕 드잡이질을 하면서 초식을 논하는 부분이다. 이때 양과는 미녀권법(美女拳法)을 쓴다.
◆초선배월(貂蟬拜月)-초선은 동탁을 죽이기 위해 미인계로 들어간 불운한 여인이다. 달을 보며 비는 슬픈 초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소용녀가 동자배불 초식을 썼다고 할때와 초선배월을 썼다고 할때 독자가 느끼는 감흥을 비교해보라.
◆서시봉심(西施捧心)-서시는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바친 미인이다.
가슴이 아팠던지 항상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찌푸렸는데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여인들이 너나(?)할것없이 찌푸리고 다녔다는 얘기의 주인공이다.
◆소군출새(昭君出塞)-왕소군은 비운의 왕비로 흉노족 선우에게 바쳐진다. 소군이 새외로 나갈때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것을 알았을까?
◆문군당로(文君當爐)-탁문군은 사마상여와 도망치곤 술집을 열어 당뇨를 앓는 사마상여를 보살폈다. 그러니 화로를 지키고 앉은 탁문군의 모습이 그려진다.
◆농옥취소(弄玉吹簫)-농옥은 진 목공의 여동생으로 소사(蕭史)라는 젊은이에게 시집갔다. 이 소사는 퉁소의 달인이었다. 그러니 농옥이 퉁소를 불지 않겠는가? 이들 두사람은 나중에 봉황을 타고 하늘로 등선했다. 김용은 소사승룡(蕭史乘龍) 이라는 초식도 만들어 내었으니 이들 부부에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귀비취주(貴妃醉酒)-양귀비는 요염함의 주인공이다. 춤을 그리 잘추었다지 않는가? 그녀는 술이 있는 연회석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술에 취한듯 비틀대며 보법을 밟는 소용녀의 모습이 요염하기까지 하니 취권보다 더 절묘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측천수렴(則天垂簾)- 측천무후는 중국의 최고 여걸이다. 아들인 중종과 예종의 뒤에서 수렴청정하다가 마침내 아들까지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위에 올랐던 아름다운 여걸이다. 누가 감히 주렴뒤에 있는 무후에게 다가가겠는가? 이 초식이름에서 금강부동신법과 같은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일소경국(一笑傾國)- 경국지색이란 나라를 기울게 할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말한다. 한번 웃음에 나라를 기울게 하다니, 이건 더욱 과장이 아닌가?
◆낙신릉파(洛神凌波) -능파선자(凌波仙子)는 물을 다스리는 선녀이다.아름다운 선녀의 대명사로 나온다. 그녀를 이용한 초식은 많다. 더구나 김용은 천룡팔부에서 이 능파선자의 보법을 절묘한 보법으로 만들어냈다. 단예가 능파미보(凌波迷步)하나만으로 고수의 초식을 간단히 피하는 장면이 수없이 나온다.
◆만요섬섬(蠻腰纖纖)-만족여인의 허리가 그렇게 가는가? 이건 아무래도 신법을 묘사한것 같다.
◆목란만궁(木蘭彎弓),목란회사(木蘭廻射)-목란(뮬란)은 아마 활을 잘쏜 모양이다. 앞의것은 활을 당기는 모습이고 뒤것은 몸을 돌려 활을 쏘는 모습이다. 디즈니 만화영화를 본사람이 많을테니 한림보다 잘알것이다.목란이 미인인지...
◆항아절약(嫦娥竊藥)-항아는 달의 선녀. 남편 예가 서왕모에게서 얻어온 불사약 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
◆반희부시(班姬賻詩)-반희는 반첩여를 말하는듯. 희란 왕의 비빈을 말한다. 반첩여는 조비연자매의 농간에 성종의 총애를 잃은 여인이다. 결국 그 원통함을 시로 남겼는데 원가행(怨歌行)이다.
◆여화소장(麗華梳裝)-여화는 바로 이후주(李後主)의 애총으로 머리카락이 7척이나 되었으며 빛이 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후주는 결국 그녀로 인해 정사를 팽개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런 여화가 머리를 빗질 하며 꾸미니 얼마나 현란하겠는가? 김용은 이 '소장(빗질하며 꾸미는)' 이라는 말이 맘에 들었는지 여자를 바꾸며 XX소장이라는 초식을 계속쓴다.
이들 초식이름은 고사를 알지못하면 아름다움을 모른다.소군이 퉁소를 불고 초선이 화로를 지켰다고 해보라.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되어 버린다. 이중 백미는 아무래도 서시봉심과 초선배월이겠다.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더구나 이들 초식을 쓰는 동작이 대결장면에서 이름과 너무도 딱 맞아 떨어질때 독자는 두세배의 감흥을 얻는다. 김용은 이 미인초식이 아쉬운지 다른 작품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시킨다.
녹정기 4권에 홍안통교주와 홍부인이 위소보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홍부인이 먼저 미인삼초(美人三招)를 가르친다.실제 동작은 김용이 자세히 설명 하고 있으니 한번 비교해보라.
◆귀비회모(貴妃回眸)-요염함의 대명사인 양귀비이니 눈동자를 돌리는 모습이 얼마나 요염하겠는가? 양귀비는 풍만한 몸매로 춤추듯 움직였다.
◆비연회상(飛燕廻翔)- 조비연은 한나라 성종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다. 두자매가 같이 비로 들어갔는데 미인이면서 성격은....어쨌든 조비연은 제비로 통한다. 그 이름처럼 엄청 날씬했던 모양이다. 양귀비가 날듯이 움직였다면?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거다.
◆소련횡진(小憐橫陳)- 소련이 누군지 모르겠다. 소련이라는 미인이 진나라를 숨어서 지나간 모양이다.
홍교주가 이걸보고 위소보에게 영웅삼초(英雄三招)를 가르친다.
◆자서거정(子胥擧鼎)- 오자서가 화로를 들어올리는 모습이라나.
◆노달발류(魯達拔柳)- 노달은 수호지의 노지심(魯智深)화상을 말한다. 도적들을 상대로 하여 버드나무를 뿌리채 뽑아 흔들었다는 얘기이다.
◆장창화미(張敞畵眉) - 장창은 아마 일류 화가였던 모양이다.
이 초식을 본 홍부인이 한마디한다. 장창은 영웅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러자 홍교주가 얼른 수정을 한다.
◆적청항룡(狄靑降龍)- 적청은 말을 잘다루기로 유명한 사람. 여기서 용이란 천리마를 말한다. 야생의 천리마위에 타고 말을 길들였다는 말이다.
홍부인이 멋적게 한숨짓는다. 아무래도 이들 초식은 노수삼초(老壽三招;할아버지삼초)와 노파파삼초(老婆婆三招;할머니삼초)라고. 위소보가 옆에서 아양을 떤다. 자기처럼 어린이가 쓰면 금동삼초(金童三招), 옥녀삼초(玉女三招)가 된다고.
어찌보면 이들 초식은 장난끼가 넘치는 초식이름이라고 할지모른다. 독자중에는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김용이 잘난척 한다고.하지만 김용이 초식 이름이 아닌 무공이름을 만들어 낸것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다른점이 나온다. 김용은 수많은 얼토당토않은 무공을 만들어 내었다. 합마공(蛤膜功),구음진경(九陰眞經) ,건곤대나이,흡성대법,무슨 독공등등...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초식인가? 작품을 써본 사람은 알것이다. 무공이름을 만들어 내는건 쉽지만 초식을 만들어 내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것도 캐릭터와 동작에 맞는 초식을 말이다. 김용은 동작에 맞게 초식을 만들어 내었다. 아마 이런 초식을 만들어 내는데 무척 고심했을것이고 조심했을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는 그 의미를 모르고 skip했음이 분명하다. 중국인중에서 얼마나 알았을까? 한국독자라면?
그러나 이들 초식을 씀으로써 신조협려는 의천도룡기나 사조영웅전보다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김용은 소용녀가 쓰는 무공에 무척 신경을 썼다. 소용녀는 한번도 살벌한 초식을 쓰지 않는다. 김용은 소용녀를 선녀로 묘사해야만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용녀가 더욱 사랑 스러운지 모르겠다.(한림에게만).의천도룡기엔 소용녀와 양과의 후손이 나온다.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소용녀의 본래모습에 가장 가깝다.소용녀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선녀의 모습이지만 의천도룡기의 그녀 후손은 거의 천상선녀의 모습이다.김용이 소용녀에 대해 갖는 애착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는 부분이다.
더욱 황당한 초식이 신조협려 마지막권에 나온다. 소용녀를 잃고 16년을 기다리는 양과가 소용녀를 그리워하며 만들어 낸 초식이다. 이걸 다음에 살펴보자.
김용은 초식이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초식이란 움직임이다. 그런데 김용은 움직임이 없는 초식을 만들어 낸다.일견보면 무초가 유초를 이긴다는 얘기를 실증하기 위한것처럼 보이나 한림이 보기에는 그마저 실패한것 같다. 김용은 신조협려 마지막권에서 움직임이 아닌 감정으로 무공초식이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 내더라도 실제 무공이 될려면 동작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과연 성공했는지 한번 보자.
양과는 단장애에서 소용녀를 잃고는 세상을 16년간이나 떠돈다. 그러다가 암연소혼장(암然銷魂掌)이란 기상천외한 17식을 창안해 낸다. 이 초식하나하나가 소용녀를 그리워하며 혼마저 녹아버린(銷魂) 암울한(암) 양과의 마음을 담았다. 글자 그대로 양과의 입장에서 해석해 보겠다.
◆심경육도(心驚肉跳)- 심장이 놀라 뛰고 살이 떨린다. 자면서 놀라 깨보니 꿈에서 만난 소용녀는 없고 혼자뿐이다. 깨어나기가 두렵다.
◆기인우천(杞人憂天)- 기인(杞人)이란 하늘이 무너질까 겁내며 산다는 전설의 족속이다. 그들처럼 항상 하늘을 쳐다보며 16년동안 살아갈수 있을까 걱정하는 양과의 심정이 보인다. 양과는 무슨일이 있어도 16년은 살아야한다. 그래야만 소용녀를 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늘이 무너질까 겁내는 기인족과 다를게 있겠는가? 멋진 비유다.
◆무중생유(無中生有)-무슨 도덕경의 말씀인가? 무에서 유가 생긴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언제나 없는듯 죽은듯 있지만 살아야만 하는 양과의 심정이다.
◆타니대수(拖泥帶水)-진흙엔 물이 잘 통과하지 않듯이 모든 행동이 꾸물꾸물 느린 형태이다.
◆배회공곡(徘徊空谷)- 빈 골짜기에 혼자서 돌아다닌다. 소용녀를 찾는것도 아니고 빈골짜기인줄 알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다.
◆역불종심(力不從心)-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온몸이 나른하니 힘이 없다.
◆행시주육(行屍走肉)- 걸어다니는 건 시체요, 뛰어다니는 건 살집뿐이다. 그에겐 혼이 없다는 말이다.
◆용인자요(庸人自擾)- 떴떳한 사람은 스스로 요란히 떠들어댄다는 밀인가? 양과는 죽은 듯이 지내니 죄인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소용녀를 잃었으니 죄인 인건 분명하다.
◆도행역이(倒行逆施)-자빠지거나 꺼꾸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마지막자는 시보단 이로 읽는게 좋을것 같다. 세상을 거꾸로 보며 살아가는 양과의 심정이 나타난 듯하다.
◆폐침망식(廢寢忘食)-잠도 오지않고 음식도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 침식을 잊은 모습이다.
◆고형척영(孤形隻影)- 홀로 있으니 따르는 것은 오직 그림자뿐이다.
◆음한탄성(飮恨呑聲)- 한숨만 쉬며 말은 삼켜 나오지 않는다.더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육신불안(六神不安)- 신(神)은 곧 신(身)이라. 온몸이 불안하다는 말이다.
◆궁도말로(窮途末路)- 모든길이 막힌 것과 다름없다. 가는 길이 어찌 탁 트여있겠는가? 양과가 걷는 길은 모두 16년후의 단장애로 귀착된다. 그에겐 그곳이 시발점 이고 종착점이다.
◆면무인색(面無人色)- 사람 얼굴이 사람색이 아니다. 웃음을 잃은 굳은 얼굴과 창백한 얼굴이 어찌 사람색이겠는가? 더구나 이때 양과는 가면을 쓰고 다닌걸로 기억된다.
◆상입비비(想入非非)- 소용녀의 생각이 들수록 참을수 없다는 말인가?
◆혼불수사(魂不守舍)- 혼이 집을 지키고 있지 못하다니? 집은 몸을 말하는듯. 혼과 몸이 따로 논다는 말같음.
이 초식이름들을 보면 한마디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건 마치 시체와 같은 사람이다. 과연 이런 얼토당토않은 초식이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가? 김용은 이 암연소혼장에 대해 처음엔 거창하게 구상을 한것 같다. 주백통에게 양과가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러나 그건 김용의 실수였던게 분명하다. 초식이름으로 양과의 심정을 표현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그걸 필요한 동작으로 연결시키는덴 실패한것 같다. 김용은 이들 초식중 몇가지의 동작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심경육도(心驚肉跳)는 주백통이 가슴을 갈겼을때 가슴이 솜처럼 들어갔다가 반탄력을 갖고 주백통의 장을 튕겨낸다. 그럴듯하다. 기인우천은 하늘을 쳐다보며 위에서 찍어 누르는 상대를 팔로 막아내는 형태다. 이것도 그럴듯하다. 무중생유는 움직이지않고 있다가 주백통의 손이 다가왔을때 손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이건? 좋지못하다. 억지느낌이 강하다. 사람의 손발이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초식하나로 무림을 제패했을 것이다. 도행역시를 설명하면서 양과는 물구나무선채 우장을 내민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이게 다는 아니고 각초식은 무한한 변화를 내포한다고. 더이상 싸움장면을 만들지 못하고 결국 설명으로 들어간다. 김용 자신도 더이상 초식이름을 동작으로 연결하는데 실패했음을 실토하는 장면이다. 면무인색은 어떤거냐고 묻는 주백통에게 양과는 억지로 실토한다."내가 기뻐하면 적도 기뻐하고 내가 근심하 면 적도 근심하게 되어 결국 나의 명령을 따르게 되는 것이죠" 결국 동작이 아닌 섭심술이 되고 말았다. 이건 마지막부분에 가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몽골군과 대치하며 곽정을 구하는 장면에서 양과는 암연소혼장을 쓰나 실패한다. 이미 소용녀를 만나 더이상 처참한 감정이 없어서라는게 김용의 설명이다. 그러다가 요결을 깨닫지만 결국 쓰는 초식은 네댓개 정도이고 스토리에 관계가 없다. 차라리 독고구검의 검술이 더 나았을뻔 했다.
하지만 한림이 보기에는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초식을 염두에 두고 읽은 독자는 없을테니까. 처음에 암연소혼장의 강렬한 인상이 독자들에게 새겨져 양과의 애끓는 사랑이 독자에게 전달되었다면 성공한 셈이다. 몇몇독자만은 이걸 옥의 티라고 보겠지만 그런 독자가 몇이겠는가? 한림이라면 암연소혼장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말고도 양과의 무공은 이미 입신의 경지에 달했지 않는가? 차라리 작은 시나 짧은 얘기로 양과의 애끓는 사랑을 간접 묘사했을 것이다. 굳이 이 암연소혼장을 별도로 본것은 어설프게 초식을 만들어내다간 작품에 누가 될뿐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김용같은 대가도 처리하기에 고심하는데 하물며 우리같은....
어쨌든 신조협려는 이렇게 아름다운 초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누가 뭐라해도 김용의 무공초식중 백미는 아무래도 협객행이라고 본다. 글도 모르는 석파천이 무공을 배우는 얘기인 협객행은 절묘한 초식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걸 한번 살펴보자.
협객행(俠客行)이란 24구의 가사이다. 행(行)이란 노래를 뜻한다. 행류의 시가중 가장 유명한 것으론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이 있다.
김용은 시간이 나면 무초(無招)가 유초(有招)를 이긴다는 요결을 적용할려고 애쓴 흔적이 여러작품에서 보이나 초식을 중요시하는 중원무술때문인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이 협객행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김용의 솜씨가 빛나는 것 같다.
협객행은 협객도에 있는 24구의 시구와 그것을 그린 24폭의 그림인 협객행을 찾아나선 무인들 얘기이지만 그중에서 설산파(雪山派)와 금오파(金烏派)의 원한관계가 멋지게 펼쳐진다. 김용은 이들 두 문파의 대립을 여러가지 면에서 대비시킨다.
첫째, 설산파는 검을 쓰고 금오파는 도를 쓴다. 검(劍)은 정(正)이고 도(刀)는 반(反)이라는 중국무림의 관념이 드러난다. 이건 의천도룡기에서도 비슷하다. 의천검을 제압하는 유일한 무기가 도룡도이었던가?
둘째, 설산은 찬 음(陰)의 기운이고 금오는 태양속에 사는 새이니 양(陽)이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설산을 대표하는자는 남자였고 금오파는 사파파라는 여자였던가? 그점은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셋째, 설산파의 검법과 금오파의 도법은 상극(相剋)이다. 이점을 오늘 살펴보기로 한다. 설산파의 무공을 창안한 얘기가 잠깐 나온다. 설산파가 위치한 능소성 안팎에는 매화꽃을 잔뜩 심어놓고 있었다. 과거 이 설산검법을 창안한 설산파의 조사가 매화꽃을 유난스레 좋아하다 보니까 검법 가운데 적지 않은 초식이 매화꽃이나 매화나무 가지 등의 형태를 본받아 창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용은 설산파 검법과 금오파의 도법이 상극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금오파의 도법이 설산파의 검법을 제압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쌍방향이라기 보단 일방향인 느낌이 많지만 그점은 김용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로 하자. 아래의 글에서 앞의 초식은 설산파의 검법이고 뒤의 것은 금오파의 도법이다.
◆창송영객(蒼松迎客) : 개문읍도(開門揖盜);
푸른 송림에서 손님을 맞는다는 설산파초식에 대해 금오파는 문을 열고 도둑놈을 맞이한다 했으니 손님이 도둑놈이란 말이다. 김용의 설명으론 설산검법은 위선이고 금오도법은 솔직하단다.
◆매설쟁춘(梅雪爭春) : 매설봉하(梅雪逢夏);
매화와 눈이 봄을 시샘하듯 피어있는 모습의 설산검법에 대해 금오파는 '그놈의 매화와 눈에 여름 뙤약볕을 내려주겠다.'고 한다.매화는 금방 시들테고 눈은 금방 녹아버릴테니 정말 절묘하다.
◆명타서래(明駝西來) : 천균압타(千鈞壓駝);
좋은 낙타(낙타는 가끔 불교=달마의 뜻으로도 쓰임)가 서쪽에서 왔다. 그런데 금오파는 수천근의 짐으로 낙타를 짓눌러 버리겠단다. 균(鈞)은 무게단위이다.
◆풍사망망(風沙莽莽) : 대해침사(大海浸沙);
사막의 모래바람이 끝없이 불어오는데 금오파는 바닷물로 사막자체를 삼켜버리겠단다.
◆월색혼황(月色昏黃) : 적일염염(赤日炎炎);
달빛이 어둠을 황금빛으로 밝히는데 금오파는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을 내놓는다.
◆암향소영(暗香疏影) : 포어지사(鮑魚之肆);
담담한 향기가 어디선가 모르게 풍겨오는데, 금오파는 절인 생선을 여기저기 늘어놓겠단다. 절인 생선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알것이다.
◆설니홍조 (雪泥鴻爪): 답설심매(踏雪尋梅);
기러기가 눈덮인 늪가에 발자국을 남기는데, 금오파는 매화꽃을 찾는다고 눈속을 뒤지고 다닌댄다. 그러니 기러기가 다 도망갈테고 금오파 발자국 만 남을뿐 기러기 발자국조차 남겠는가?
◆호마월령(胡馬越嶺) : 한장당관(漢將當關);
오랑캐의 기마병이 고개를 넘어오는데, 한나라 장군이 관문을 지키고 있다. 관(關)은 새외로 통하는 문이다. 그러니 오랑캐가 감히 넘어오지 못한다.
◆명월강적(明月羌笛) : 적일금고(赤日金鼓);
밝은 달밤에 오랑캐가 피리를 불어대니, 벌건 대낮에 북을 두들기겠단다. 강족(羌族)은 사천성 서쪽에 살던 흉노족이다. 북은 한족을 뜻한다.
◆노지횡사(老枝橫斜) : 장자절지(長者折枝);
설산검은 오래된 가지가 옆으로 비스듬히 뻗은 모습인데, 금오파는 늙은이가 그 가지를 잘라버리는 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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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대비가 아닌가? 마지막 두초식은 다른 대비와는 조금다르다. 지금까지는 설산파가 선(善)이고 금오파가 철저히 악(惡)의 역할이지만 마지막 두초식에서는 설산파가 오랑캐고 금오파가 한족이다. 그런데 이건 선과 악의 대비가 아니라 정(正)과 반(反)의 대립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김용은 이들 무공초식을 대결장면에 적절히 넣어 동작과 연결시켜 멋진 성공을 하고 있다. 다시말하지만 무공초식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다되는건 아니다. 이들 초식을 어떻게 적절하게 이름과 어울리는 동작으로 묘사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앞에서 말한걸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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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의 마지막 부분엔 협객도에서 협객행의 24폭 그림을 보고 석파천이 무공을 배우는 얘기가 나온다. 그 장면은 김용이 협객행을 어떤 의도에서 썼는지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다른 무협이라면 그냥 초장에서 무공이름만 적고 주인공이 무공을 익혔겠지만 김용은 협객행도를 배우는 것으로 작품을 끝낸다. 김용이 협객행에서 무공초식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수 있는 부분이다. 협객행도의 24폭 그림해석에서 김용은 적지않은 부분을 할애했다. 협객행도는 실제 존재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한림이 그 그림을 보았다면 기쁘게 24폭 그림을 해석해 보겠지만 아쉽게도 가진게 없다. 협객행도를 보아야만 진짜 협객행을 읽었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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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세번에 걸쳐 김용의 절묘한 초식들을 훑어보았다. 이외에 그의 번뜩이는 기지가 발휘되는 초식이름들이 많지만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이런 기묘한 이름을 어찌 만들수 있는가? 걱정한다면 아직 시기상조다. 이 강의가 끝날때쯤이면 김용만큼은 안되더라도 반쯤은 되리라고 확신한다. 이런초식을 만들어 쓴다고 읽을 독자가 있을까? 걱정한다면 한림도 할말이 없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수록 좋은 독자도 많아질것이라는데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젠 결말부분에 가까워졌다.자연을 이용한 초식을 보기전에 또하나 아름다운 초식이름이 즐비한 경신술(경공술)을 한번 살펴보자.
경공술(輕空術),경신술(輕身術),보법(步法)등을 총괄하여 신법(身法)이라 할수 있는데 이중 경공술과 경신술은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하다고 할수 있다. 굳이 구별하자면 경공술은 공중으로 오르내리는 것이고 경신술은 장거리를 달리는 것이지만 둘다 몸을 가볍게 한다는 점에선 다를바 없다.
한림이 작품을 쓸때 고민한것중 하나가 무공을 어느정도까지 과장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가능하면 실제적인 무공을 고집했지만 경공,경신술만은 거부하지 못했다. 굳이 그 이유를 밝히자면 이들 무공이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란데 있고 누구나 과장이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어에도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달린다는 말이 있잖은가? 빠르게 달리는걸 풀잎위를 달리는것으로 묘사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언가? 하지만, 무공이름은 쓰지 않았다. 그냥 뛰어 올랐다든가 달렸다 정도로 묘사했다. (가끔씩 슬쩍 집어넣은것도 사실이다.) 무협소설의 무술중 가장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들 경공,경신술이다. 이들 무공은 그 무공이름자체가 초식이름이 된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름이 많다.
이번에는 이들 경공 경신술과 더욱 황당하지만 멋진 무공초식이름 몇가지를 살펴보자.
앞에서 동물이름으로 만든 초식중 새에 관련된 이름은 신법이 많다. 대붕전시라든가 평사낙안,연자착수등은 아주 많이 써먹는 초식들이다. 하지만 이들 신법은 위에서 아래로 날아내리는 신법들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사용되는 초식이 되지만 이번에 살펴볼 초식이름은 중력을 거스런 무공이름들이다. 다시말해 위로 날아 오르거나 붕떠서 달려가는 무공들이다. 그래서 신비스러운 것이다.이걸 과장으로 보는 독자도 좋고 가능한것처럼 읽는 독자도 좋다.
◆천근추(千斤墜)
추(墜)보다는 추(錘)가 더 좋을듯하다. 경공술은 아니고 신법으로 온몸의 힘을 하반신으로 내려 천근으로 내리누른다고 하니 1근이 400~800그램사이인걸 고려하면(도량단위는 시대마다 바뀌었다)400kg중~800kg중정도라는 셈이다.
◆무력답수(無力踏水)
정말 촌스런 이름이다. 물위를 걷는다는 의미인것 같으나...
◆칠보추혼(七步追魂)
일곱발짝 떼더니 귀신처럼 사라졌다는 말이다.
◆팔보간섬(八步看閃)
여덟발짝 떼더니 번개처럼 사라졌다는 말이다. 칠보추혼의 귀신보다 번개를 보았다는게 조금 더 멋있다.
◆부공삼매(浮空三昧)
부공삼매란 무의식 중에 붕떠오른다는 말로 내공수련이 극치에 이르렀을때 운기중 몸이 자연히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무슨 오기조원이니 생사현통이니 내공의 극치를 묘사하는 말엔 온갖말이 있지만 그중 가장 멋있다고 본다.
◆등평도수(登萍渡水)
일위도강(一葦渡江)보다는 훨씬 보편적이고 멋있다. 일위도강은 달마의 냄새가 나지만 부평초를 밟고 물위를 건느는건 아무나에게 어울린다. 그리고 버들잎보다 부평초가 얼마나 낭만적인가? 물론 장강보다는 연못처럼 작은 곳이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금리도천파(金鯉渡穿波)
잉어가 파도를 헤치고 달리는 모습이니 날치가 물위를 나는 모습이 연상된다. 어쩐지 물속기술같은 느낌이 든다.
◆육지비등(陸地飛騰)
들위를 날고 산위를 오르는 모양을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해 멋이 없다.
◆천마행공(天馬行空)
천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이라...김용이 써먹은 수법인데 멋이없다.
◆경공제종술(輕功提踪術)
제종술은 추격술처럼보이는데...이것도 김용이 써먹은 수법이다. 아래 제운종이 훨씬 멋있잖은가?
◆일학충천(一鶴沖天),백학충천(白鶴沖天)
충천이란 위로 바로 오르는 모양이다. 학은 다른 새와는 달리 수직으로 올라가는 모양을 볼수 있다.
◆허공답보(虛空踏步)
허공을 밟고 가듯이 날으는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직설적이지 않는가?
위의것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다운 이름들을 보자.
◆능공허도(凌空虛道,渡)
공중에 길이 있는것처럼 달리는 것이다. 말이 멋있다.
◆부신약영(浮身躍影)
몸이 붕뜨더니 그림자처럼 휙 사라져 버렸지만 왠지 여운이 남는다.
부와 약의 조화가 멋지기 때문이다.
◆궁신탄영(弓身彈影)
몸을 활처럼 구부리더니 핑하니 사라졌는데,역시 궁과 탄이 조화가 되어 멋지게 보인다.
◆어기충소(馭氣沖宵)
기를 끌어 모아 수직으로 솟아 오르는 모양이다. 일학충천보다는 더욱 신비로와 보인다. 그건 날개짓이 없어서 일것이다.
◆초상비(草上飛)
한림은 이 무공이름이 너무 좋다. 풀잎위를 나르는 모습이라니... 그렇지만 작품에선 써보지 못했다.(신탐무에서 한번 썼던가?)
◆상천제(上天梯)
중국 전설에 보면 처음에는 하늘과 땅이 이어졌다가 떨어지며 그 사이를 잇는 사다리가 있었다. 그걸 천제(天梯)라 한다. 이 천제는 높은 산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자세한 얘기는 야랑전설에 나온다. 하늘사다리를 오르는 모양이니 그 모양을 상상해보라. 마치 허공에 사다리가 있고 한발한발 걸어 오르니 얼마나 신비한가. 경공,경신술중에서 가장 불가능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답설무흔(踏雪無痕)
눈위를 밟으나 발자국 하나 없다. 경신술을 나타낼때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무공초식이다. 하지만 한림은 초상비가 더 좋다.
◆제운종(提雲踪)
구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이니 손오공이 근두운을 탄 모습이다. 무당의 수법으로 쓰인다.
◆연대부운(蓮臺浮雲)
연대란 부처님께서 앉으신 좌대이다. 그 연대가 구름처럼 떠오르는 모습이니 상상이 갈것이다. 보통 가부좌한 상태로 떠오르는 초식으로 쓰이는데 내공의 고수만이 쓸수가 있겠다. 부공삼매를 생각해 보라. 소림수법이란걸 누구나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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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초식들이 과연 가능한가? 하지만 그냥 모양과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라 이해하는 독자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반소설에서도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표현해도 좋은데 왜 무협에선 그게 과장되어 보일까? 그건 그 결과를 묘사함에 있어 엉터리가 많기 때문이다. 무공이름이 붕산장(崩山掌)이라 해놓고 실제로 산이 한손짓에 무너지게 묘사하니 모든게 엉터리로 보이는 것이다. 그 예로 다음 초식이름을 한번 보자. 정말 가능한 얘기일까? 하지만 이들 초식은 실제로 자주 쓰이는 초식이름이다.
◆격산타우(隔山打牛)
산너머의 소를 두들긴다는 얘기이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 가능하게 묘사하는 작가가 있다면 어찌 되겠는가? 실제 무당의 면장같은건 창호지를 격하고 그뒤의 물체를 부술수 있다지 않는가? 창호지가 산으로 과장되었을 뿐이다. 김용의 작품중에 이 격산타우로 비꼬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느작품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격산타우란 초식이름을 듣고 벌벌떠는 무뢰한의 모습이 우스웠다.
◆비화타혈(飛花打穴)
꽃을 날려 점혈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꽃을 날려 점혈하는 모양을 그리는 작가가 있었다.그렇다면 앞의 미녀들이 나오는 초식은 모두 그 미녀들이 나와야 하는데...
◆천왕탁탑(天王托塔)
천왕이 돌탑을 밀어 올리는 모양인데 태산압정과 대비해 쓰면 좋다. 이런 초식은 아주 많이 등장하는 초식이다. 과연 돌탑을 밀어 올릴 장사가 있겠는가?
◆횡소천군(橫掃千軍)
너무나 유명한 초식이다. 한번 쓸어 천명의 군사를 넘어뜨리는 기세이지 실제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초식이름을 짓는데 있어서는 과장이 필요하다. 아름다울려면 그정도 과장은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 초식을 쓰는 동작이나 묘사에 있어서는 철저히 과장을 죽여야한다. 그래야만 초식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위의 경공 경신술을 쓰는데 있어 조금 조심한다면 현실감을 죽이지 않고도 효과를 얻을수 있는 것이다. 초상비로 바람처럼 달려갔다고 묘사하면 그만이다. 초상비를 써서 풀잎위를 날아갔다고 쓸 이유가 있겠는가? 그럼 거짓말처럼 되는 것이다. 물론 작가나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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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번째 자연을 이용한 초식만들기로 들어가 보자. 자연을 이용하는건 사람이나 고사를 이용하는것보다 훨씬 쉽다. 중국에 관한 지식이 필요치 않으니까.
자연을 이용한 초식은 누구나 그 느낌을 쉽게 전달할수 있어 많이 애용되는 방법이다. 자연현상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것은 바람(風)이고 식물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매화(梅)이다. 사군자중에서 매화가 가장 사랑받는 이유는 눈속에서 강인하게 피어나는 고고한 모습이 무공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외 수많은 자연현상과 식물이 등장하는데 자연현상은 그 주는 느낌이 탁월하므로 무협소설에선 극히 많이 사용된다. 또 그리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그중 몇가지 예를 살펴 보기로 하자. 워낙 많으므로 한림이 가진 자료중에서 몇가지만 뽑아 보겠다.
◆회풍류(廻風擺柳),춘풍벽류(春風擘柳),광풍절지(狂風折枝),
선풍소엽(旋風掃葉),회풍발수(回風潑水),풍소낙엽(風掃落葉),
풍불수양(風拂垂楊);
회풍이나 선풍은 같은 말이다. 류(柳)나 양(楊)은 버드나무를 말한다. 바람과 버드나무는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그건 다른나무와는 달리 버드나무가지가 축 늘어져 바람에 쉽게 흩날리는 모양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춘풍벽류에서 부드러운 봄바람이 버드나무를 쪼개는게 아니라 늘어진 가지들이 갈라지는 모양을 묘사한 것이다. 회풍발수는 폭포물이 바람에 흔날려 물이 쫙 뿌려지는 모습을 보인다. 낙엽에는 아무래도 소(掃;쓸어버림)가 어울리는 모양이다. 이중 멋있는 말은 춘풍벽류와 풍불수양인데 풍불수양은 바람이 늘어진 버드나무를 흔드는 모양인데 그냥 흔드는게-요-아니라, 날리는게-파-아니라 털어내는 모습이 멋지다. 이들 이름은 무공초식으로는 약한 느낌이 든다. 바람으로 강한 느낌을 줄려면 아무래도 광풍이나 한풍(寒風,朔風)을 쓰는게 좋다.
◆팔방풍우(八方風雨),만천화우(滿天花雨),화풍세우(和風細雨);
비(雨)는 풍처럼 매우 자주 쓰인다. 앞의 두가지는 너무도 유명한 초식이다. 팔방풍우는 몸주위로 검화나 암기가 쫙 뻗어나가는 모습이고 만천화우는 사천당문의 암기술을 쓸때 꼭 나오는 수법으로 하늘가득 덮은 암기가 꽃비로 묘사된 느낌이다. 화풍세우는 바람이 잦아들어 보슬비가 내리는 꼴이니 무공으론 약한 느낌이지만 오히려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않는가? 소리없이 적시는 독기가 느껴진다.
◆괴성점원(魁星点圓),성타구진(星打勾陳),적성환두(摘星換斗)
성횡두전(星橫斗轉),괴성척두(魁星剔斗),
은하횡공(銀河橫空),유성타지(流星墮地);
별은 꽃(花)대신 암기나 검화를 묘사하는데 쓰이는데 여기서 쓰는 초식은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초식들이다. 유성이 땅을 때리는 유성타지나 별이 구진(勾陳;북극성)을 때린다는 성타구진(실제로는 북극성을 때리는-가로지르는- 별은 없다.) 그리고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횡공은 쉬우면서도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이 상당히 아름답다. 그외에서 나오는 괴(魁)는 북두칠성의 앞국자부분 네별을 의미하고 두(斗)는 보통 북두칠성의 손잡이 부분 세별을 말하지만 가끔 북두칠성 전체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괴성점원은 북극성을 보고 도는 북두칠성의 모양새를 나타내는 초식이름이다. 괴성척두는 아마 북두칠성의 앞부분이 손잡이 부분을 끄는 모양인것 같고, 성횡두전이란 보통 별은 밤하늘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는데 비해 북두칠성만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모양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걸 알고 있지만 옛사람들이야...) 적성환두란 일반 별을 따다가 중요한 북두를 만든다는 뜻이니... 북두는 아마 별중에서 최고로 꼽혔던 모양이다.
◆춘뢰주야(春雷走野),뇌경백리(雷驚百里),뇌천대장(雷天大壯),
뇌산소과(雷山小過),자전천운(紫電穿雲),춘운사전(春雲斜電);
자연현상중 가장 강한 현상은 뇌(雷)이다. 뇌란 천둥 또는 번개이다. 번개는 보통 섬전(閃電)이라하지만 뇌하나로 천둥번개를 같이 묘사한다. 모두 천둥번개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모양을 의미하는 초식이름이고 마지막 자전천운은 보라빛(신비함이다) 번개가 구름을 꿰뚫는 모양이다. 옛사람들은 번개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걸로 보았나? 춘운사전도 똑같은 말이다. 봄에 마른 번개가 많이 치는 모양이다.
◆쌍봉삽운(雙峰揷雲),선장퇴운(仙掌推雲),고운출수(高雲出手)
운횡서령(雲橫西嶺),흑운차일(黑雲遮日),흑운만천(黑雲滿天)
운연과안(雲烟過眼),개운직지(開雲直指);
구름은 보통 권장법에 많이 쓰인다. 태극권에 운수가 있다는걸 잘알것이다. 쌍봉삽운은 구름속에 두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오르는 모습이고 선장퇴운이나 고운출수는 높은 산위의 구름을 신선이 걷어내는 모습이다.운횡서령은 구름이 서쪽(구름이 어디로 흐르던가?) 고개를 넘어가는 모습, 흑운차일이나 흑운만천은 먹구름이 해와 하늘을 가리는 모습이니 어떤 수법인지 짐작이 갈것이다. 운연과안도 마찬가지. 구름과 연기가 눈앞을지나가니 온통 캄캄하지 않겠는가? 이런수법을 깨는 수법으로는 마지막에 나오는 개운XX(開雲XX)를 많이 쓴다. 선장퇴운등도 괜찮겠으나 개운을 쓰면 눈앞이 확 걷히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삼환토월(三環套月),회중포월(懷中抱月),회두망월(回頭望月)
퇴창망월(推窓望月),월하송영(月下松影),한당월영(寒塘月影);
달은 둥근 모양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쓰인다. 삼환토월은 달에 세겹의 테두리가 씌우는 모양 이고 회중포월은 둥근 달을 끌어 안는 모습인데 제법 많이 쓴다. 어떤 수법인지 그 동작이 보일 것이다. 다른건 분위기다.
◆경설난비(輕雪亂飛);
눈도 제법 많이 쓰는데 그중 눈송이가 분분히 휘날리는 모양을 나타낸 이 경설난비도 제법 멋있는 초식이다.
◆백홍관일,채홍관일(彩虹貫日),채홍경천(彩虹景天);
홍(虹)이란 무지개. 흰무지개나 색무지개나 모두 불가능한 해를 꿰뚫었다. (무지개는 해의 반대쪽에 있다.) 그래서 신비한 느낌의 초식이 된다. 검법에서 아주 많이 쓰는 이름이다. 채홍경천은 무지개가 하늘에 걸려 있는 모습인데 앞의 채홍관일에 비하면 너무 촌스럽지 않는가?
◆일락서해(日落西海),일월상회(日月相會),일출동산(日出東山),
일기피형(日奇披形),투천환일(偸天換日);
여기 나오는 해에 관한 초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개운일출(開雲日出)같은 초식이 훨씬 낫다.
◆좌우봉원(左右逢源),기봉돌기(奇峯突起),천암경수(千巖競秀);
산이나 들에 관한 이런 초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태산압정(泰山壓頂)같은 쉬운 초식이 낫다.
매화는 앞의 김용편에서 예를 들었으니 다른 것을 살펴보자.
◆양주수양(楊州垂楊),도발수양(倒拔垂楊),고등전수(枯藤纏樹),
등라반목(藤蘿絆木),독산고목(禿山孤木);
양주는 그이름이 말해주듯 버드나무의 고장이다.수서호옆길에는 그 유명한 버드나무숲이 이어져 있다. 그냥 버드나무가 늘어진 모습뿐이니 참 촌스러운 이름이다.고등전수나 등라반목은 모두 등나무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모양이다. 독산이란 민둥산이고 그 민둥산에 홀로선 나무이니 독산고목은 위의 기봉돌기보다는 훨씬 운치있다.
◆추일소엽(秋日掃葉);
가을에 쌓인 낙옆을 쓸어 모으는 동작이지만 위의 바람이 쓸어 내는것보단 그림이 좋지 못하다.
◆천녀산화(天女散花),마축락화(馬蹴落花),이화춘우(梨花春雨);
하늘에서 선녀가 꽃을 뿌리는 모양의 천녀산화나 봄에 핀 배꽃에 내리는 이화춘우는 매우 아름다운 이름이다. 한림은 꽃을 너무 좋아한다. 말이 뒷발질로 떨어지는 꽃잎을 차는 모습도 아주 그럴듯하다. 말이 뛰어다니다가 우연히 떨어지는 꽃잎을 찰 확률이 얼마겠는가?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정말 멋진 눈을 가졌다. 이런걸 퇴법초식에 쓰면 정말 멋질 것이다.
◆이화접목(移花接木),거석압목(巨石壓木);
이화접목은 도인기술의 극치로 표현하는 초식이름이다.접목은 보통 작은 잎눈을 잘라 접붙일 묘목에 붙이는데 그 눈이 자라 나무가 된다. 결국 손톱만한 힘을 들여 상대의 커다란 힘을 자기것으로 만든다는 묘용을 표현한 멋진 이름이다. 거석압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너무 직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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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선보인 초식이름들은 예로 든것으로 자연을 이용한 수법은 끝도 없이 많다. 아마 이들 이름보다 더 멋진 이름을 생각해 내는건 어렵지 않을것이다. 남이 생각해내지 못한 이름,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이 얼마나 읽는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잘 알것이다. 초식이름은 한마디로 시구를 만드는것과 같다. 글자하나가 전체 이름의 느낌을 바꾼다는걸 명심하자.
이젠 마지막 정리의 단계로 들어가자.
지금까지 수많은 예를 보았다. 이제 정리하는 의미에서 한번 되돌아 보자 기술적 이름짓기는 모양을 정확하게 전달하지만 독자들이 알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동물이나 자연,고사등을 이용하여 모양을 나타내는 것은 알기는 쉬우나 모양을 전달함에 있어 애매한 단점이 있다. 더구나 초식이름이 아름다울수록 독자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것이다. 그럼 초식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그건 작가가 쓰고자 하는 작품의 의도에 따라 잘 판단해야 한다. 이제 마무리 단계로 몇가지 점을 힌트로 주기로 한다.
[힌트1]
초식이름은 4자로 쓰는게 일반적이다.(단,기술적이름짓기는 조금 다르다). 형용사+주어+동사+목적어 순이다.
[힌트2]
초식이름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동사]선정이다. 대개 무공용으로 쓰는 동사는 손수(手)변의 글자가 많다. 옥편의 손수변 동사만 활용해도 어지간한 무공초식을 만드는덴 지장이 없다.
[힌트3]
무기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는 대개 그 활용법에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찌르기를 보면 창으로 찌를때는 찰(札;손수변),뭉뚱한 봉으로 찌를때는 착(),검으로 찌를때는 자(刺)를 쓴다. 또 휘두르는 동작도 회(回),소(掃),륜(手+侖)등인데 소는 정강이부분을 목표로 하고 륜은 가슴부위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특히 륜은 무화(舞花)와도 비슷한 동작에도 쓰인다. 하지만 이런걸 세세히 알 필요는 없다. 무예가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테니 일반 독자는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굳이 정확성을 기할려면 평소 많은 동작을 구별하는 눈을 길러야한다.
[힌트4]
기술적 이름짓기의 방식은 굳이 초식이름에 사용하지 않아도 동작묘사에 활용하면 좋은 글이 된다. 특히 보법은 동작묘사에 아주 좋다.
[힌트5]
동물을 활용할땐 등장인물의 성격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인물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동물은 역효과이다. 또한 동물마다 무공특성이 있으니 앞의 자료를 잘 활용하면 큰 무리는 없을것이다.
[힌트6]
아주 강렬한 동사를 쓸땐 그 목적어로 사람이나 동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참(斬), 자(刺),격(擊),파(破),타(打),단(斷)등에 살아있는 것이 따라오면 듣기에도 끔찍한 모양이 된다. 앞에 예를 든 고조참망이나 무송타호,직도황룡등 은 고사를 참조해서 만든 이름이지만 좋은 이름들은 아니다. 물론 악당의 초식에 쓰면 대비가 되겠지만...
유명한 무공중 개방의 타구(打狗)봉법이 있고 그 초식 대부분이 개를 두들겨 패는 모습들이다. 이 타구봉법은 거지와 짖어대는 개를 잘 대비시켜 주어 끔찍하다기 보다는 해학적인 느낌이 든다. 이런 경우는 예외로 봐야 하겠다.
[힌트7]
김용처럼 아주 시적인 초식을 만들어 내는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용도 많은 초식을 옛 문헌에서 따왔다. 고시나 고문등을 보다가 적절한 어귀가 있으면 모아두었다가 써먹으면 정말 멋진 초식이 된다. 특히 시는 좋은 어귀의 보고이다. 고시한편에서 멋진 초식 하나는 집어낼수 있을것이다. 주역 또한 많이 애용되는데 시보단 아름답지 못하다. 앞에서 예를든 항아분월, 이나 거석압목등은 주역의 육십사괘에서 나왔다.
[힌트8]
무협에는 중과 도사가 거의 등장한다. 이들이 쓰는 무공은 도교나 불교의 특성에 따라야 한다. 도교는 대개 자연을 기초로 하는게 많다. 특히 태극(太極),양의(兩義),삼재(三才),사상(四象),오행(五行),육합(六合), 칠성(七星),팔괘(八卦),구궁(九宮), 그리고 이십팔수(二十八宿)등은 도교의 무공초식과 이름에 잘 어울린다. 점복술의 십간(十干),십이지(十二支)등은 도교의 냄새보단 민간의 냄새가 더 많다. 양의는 음양, 삼재는 천지인, 사상은 청룡,백호,주작,현무 또는 태양,소음 태음,소음을 말하기도 한다. 오행은 목화토금수이고,육합은 십이지가 서로 합하여 오행이되는것으로 십이지를 시계숫자로 놓고 반을 갈라 수평으로 이으면 된다. 예를 들어 자-축이 합하면 토가되고 해와 인이 합하면 목이 된다는 등이다. 진법에 사용하면 좋은 경우다.칠성은 북두를 나타내는 것으로 일곱개의 별이 사용되고 팔괘는 여덟방위를 나타내는 말로써 건곤손간감리진태이다. 구궁은 구성(九星) 또는 구기(九氣)라고도 하며 팔괘의 방위에 중앙을 합친것으로 중궁,건궁...등으로 이름한다. 또는 별을 사용하여 일백수성,이흑토성....등으로 부르기도 한다.십간은 갑을병정... 십이지는 자축인묘... 이십팔수는 하늘에 떠있는 스무여덟개의 성좌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오리온자,전갈좌등으로 부르는 것들이다.
[힌트9]
불교에서 쓰는 이름은 소림무공이 너무 유명하므로 거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불교는 아주 특이한 이름들이 많다. 특별히 몇가지 본다면 바로 인계(印契)이다. 인계는 부처님의 손모양에서 나온것인데 부처상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수인(手印)이라고도 한다.부처님의 손모양을 무공에 넣으면 불경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모양이 무척 아름답다. 몇가지 예를 보면 석가부처의 근본오인인 선정인(禪定印) 또는 삼마지인(三摩地印) -단전호흡할때 이 모양을 따라한다.-,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전법륜인(轉法輪印),여원인(與願印), 시무외인(施無畏印)이다. 이외에 지권인(智拳印),구품인(九品印)등 매우 많다.
첫댓글 ... 먼지 모르겠는데여 ㅎㅋㅎ
그리고 하루에 3개 이상쓰면 안된다는거 같은데.. 주의해야할듯합니다 짧은소견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