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리더쉽은 우리의 최고의 모델이시다.
섬기는 리더쉽은 사람들을 이끄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천국의 것인데 지금껏 발견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는 것은,
이것이 없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지독한 유혹이며,
계속되는 찬사를 받기 위해 종종 무의식 적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이때 쭘이면 그는 이미 중독 상태다.
“이 세상 해악의 절반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겨지려는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엘리엇)
우리는 평생 지배욕과 남보다 앞서려는 욕망을 감추며 살아간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는,
섬기는 리더쉽은 리더 자신이 죽는 것이다(마20:28)
2. 스타가 되려는 유혹.
막1:28-39
계속되는 기적과 능력, 권세있는 말씀 선포!
온 동네가 난리다. 새벽! 홀로
나가시더니…!
갑자기 사라지셨다! 제자들이 찾으러 난리다.
엉뚱한 곳에서 사람들과 대화!
아니! 주님 여기서 뭐하세요?
주님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뚜벅 뚜벅 또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신다! 온 갈릴리로…!
외형적인 죄보다,
질투, 탐욕, 시기, 자기 중심주의와 같은
비밀스럽고 교묘하게 포장되어 있는 죄성이 더 무섭다.
한 발자국만 내 딪이면,
스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공의 3가지 요소, 크기, 속도, 폭발력(대중화)!
주님은 이런 결정적인 효율성을 왜 몰랐을까?
대답은 실로 간단하다.
주님은 어떤 상황이든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셨다.
그것은 자신은 아버지의 핼퍼라는 사실이다.(요8:29)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큰 거짓말이 통한다.(힛틀러)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당부한다.
허탄한 지식을 쫒아 서로 다투지 말라.
고후11장에서 12장까지는
계속해서 자랑하는 자를 꾸중하신다.
“나는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해요!?”
조심하라! 이 말만큼 매력있게 들리는 말도 없으며,
이 말만큼 행하기 힘든 말도 없다.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비젼이나 리더쉽을 외칠 때,
그는 성공적인 사람으로 보여질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류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그어떤일에도…!
자신이 특별히 선택된 그릇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은
쉽게 기름부으심을 조작한다.
처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을지 모르지만,
결국 방향성을 상실하고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만다.
“종교적인 사람이 짓는 실책중 하나는
하나님보다 더 영적인 것으로 보이려는 것이다.(프래드릭)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역자는
자신의 사역을 세워나가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목적보다는 친교가,
기대보다는 순종이 앞서야 한다.
비록 기회를 놓치더라도,
비록 비 효율적이라도,
비록 호된 시련이 있더라도…!
사람 속에 숨어있는 기만성(렘17:9)
지위: 리더쉽 안에 있는 가장 유혹적인 요소다.
자신의 지위에서 받을 수 있는 특별 대우에 탐닉하는 사람은 이미 이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다.
유명인을 아는 척하기: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의
일반적 현상이다.
방어: 방어와 거만은 쌍둥이다.
자신을 선전하기: 자기 노력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떠오르는 현상.
목적을 들며 방법을 정당화 하는 것: 사실은
그 사람 안에 야망과 지위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 현상이다.
3.용납으로 변화됨.
정말 섬기려는 자세를 가진 리더는
지적보다는 용납을 택한다.
리더가 용납을 할 때!
세상에서 거절당하고 소망을 잃은 사람에게는 구원과 다름 없는 힘이 된다.
거절! 일반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은
상처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분리 시킨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은 거절의 느낌을 감추면서,
아주 밉살스런 태도로 공격적이 되곤 한다.
삭개오! 그는 후자에 속했다.
그는 거절감을 감추기 위해 더욱 더 착취해서 결국 세리장이 되었다.
주님은 삭개오를 따로 불러서 책망하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뭇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용납하셨다.
왜 그랬을까?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직 용납 뿐이다.
자신을 돌아보라!
우리는 용서 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거나,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용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용서하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용서 받는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모질고 거만한 태도로 경멸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을 외면하실 것이다.
비극은 이것이다.
몸을 사리는 많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모습.
자신의 손가락 하나 다치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
고상하고 자비로운 모습들! (핸리 나우웬)
나는 완고한 나의 장남을 보며 한숨을 쉰다.(목회 노트 2004-09-29 참조)
문제는 나다!
내가 가장 옳다고 외치는 그곳에서는,
이해, 용서, 용납이 없다!!!
4.차별의 위험.
두 아들을 좌우편에 앉게…!?
“특별한 호의를 얻으려 하거나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는 유혹은,
오직 지위를 추구하는 영혼에만 매혹적인 것이다.”
“부끄럽게 옷자락을 만진 여인이든,
성가시게 굴던 맹인이든,
주님은 누구를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셨다.”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의 사역을 기꺼이 받아드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세워준다.”
“한 방향으로만 영향 받는 것은 없다.
책임이란 언제나 쌍방간의 문제다.”
부자청년이 뒤 따라온다.
엎드려 어떻게 하면 영생을? 하고 주님께 묻는다.
옳커니! 유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이 궁핍한 재정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
가진 것 모두 다 팔아서…!
긴장된 순간이다. 이제야 주님도 우리 재정 형편을 아시는 구나!
그러나 그 다음 말씀을 보라!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와! 저 답답한 주님!
유다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섬기는 리더는 사역중에 재정을 모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적인 재정과 사역을 분리하는 순결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재정적인 면에 적당히 타협하다 보면,
그 파괴력은 실로 엄청나다.
두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나는 누구의 핼퍼인가?
7. 말 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라.
“행위와 본질이 분리될 때,
경건은 발 씻는 데나 어울리는 내용물로 전락한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본을 보이노라고…
“말이 세력을 떨치면, 행동은 작아진다.
그러나 행동이 세력을 떨치면, 말은 증인이 된다.”
그렇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대부분,
행동이 없는 사람이다.
8.온유함.
이것은 섬기는 리더의 최고의 품성이다.
겟세만의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주님은 왜 자신의 능력을 사용치 않으셨을까?
많은 추론이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주님은 그 능력을 사용치 않기로 작정하셨다.
왜? 온유함이다!
이것은 겸손으로 나타난다!
말구유! 그리고 십자가! 이것은
최고의 겸손, 온유함이다.
하늘의 능력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권위를 상징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단순한 사건은 그 내용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십자가! 그 사건 안에는 죄를 감당하시는 사역이외,
말할 수 없는 더 중요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주님의 온유함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사용하는 리더쉽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이나 지도력이 아니라,
연약함과 겸손에 기반을 두고 그 왕국을 건설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신다.
주목! 사단이 유혹하는 것은,
영웅주의, 호화로운 업적에 초점을 맟추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 군중들은 분노했다.
악의 본성을 가진 군중들에게는 예수님은 경멸의 대상일 뿐이였다.
겸손은 수직적, 온유는 수평적이다.
배드로는 말한다. 겸손하라!
그 겸손위에 하나님은 일 하실 것이다(밷전5:6)
“사람들은 십자가의 실패를 만날수록 더욱 더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진다.”(밴자민 프랭크린)
“온유한 리더는
자신을 이용했거나 상처를 준 사람에게
자신의 지휘를 이용해서 복수하지 않고
자유케 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실패를 들먹이지 않으셨다.
“네가 그러리라고 말했지? 이런 말씀은 주님의
사전에는 없다.
배드로와 유다의 배반을 다 알고 계셨으나 결코 탓하지 않으셨다.
온유와 겸손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연약함을 일부러 찾아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바울의 고백! 고전1:26-29.
예수를 믿으면, 점점 바보가 된다.
사실,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보다,
더 지혜롭고, 잘 참으며, 전략적이고
눈치 빠르며, 재치 있다.
그렇다면? 믿는 자가 패배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그 연약한 그 부분에서 주님이 일하시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