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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끝나고, 당신은 남았다!
맨손으로 살아남아 세계를 다시 건설해야 한다면?
고도로 전문화된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문명화의 결과를 풍족하게 누리지만, 정작 아주 간단한 물건조차 스스로 만들 수 없다. 1958년 레너드 리드가 쓴 논문 「나는 연필입니다」의 충격적인 결론에 따르면, 원료를 제공하는 곳과 생산 수단이 따로따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연필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을 동시에 보유한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13쪽)
우주생물학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유명한 과학저술가인 루이스 다트넬은 이 책에서 핵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대재앙을 맞이한 인류를 가정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 살펴보는 동시에 인류의 지식 발전 과정을 독특하고 흥미롭게 정리했다. 물론 최악의 종말이 닥친 후에도 생존자들이 곧바로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국 환경식품농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쌀과 말린 국수 및 통조림처럼 부패하지 않는 비냉동식품이 영국 전역에 11.8일치 비축되어 있다. 재앙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들어 약 1만여 명이 남는다면, 그 비축량으로 50년가량 견딜 수 있을 것이다.”(59쪽)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어느 정도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부패하고 부식되며 분해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먼저 사라진 문명이 남긴 쓰레기더미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을 효과적으로 찾아내 재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의식주에서부터 의학과 의약품, 전력, 운송, 커뮤니케이션, 고급 화학, 시간과 공간 등에 관한, 생존과 사회 재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지식과 과학 기술을 압축적이고 실용적으로 전한다.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해 필요한 한 권의 책
세계가 붕괴된 이후에도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생존 지식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끝나면 생존자들은 맨손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밑바닥에서부터 사회를 재건해야 할 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1751년 드니 디드로는 《백과전서》 첫 권에서 “이런 종류의 작업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우리 반구가 다시 어둠 속에 떨어지는 순간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재앙이 닥칠 경우에 대비해 인류가 이룩한 지식을 안전하게 보관해서 남겨야 함을 강조했다.(18쪽)
이 책에서는 생존에 필수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 즉 충분한 식량과 깨끗한 물, 의복과 건축 자재, 에너지와 의약품 등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고, 농업을 다시 시작하고 식량을 안전하게 비축하며 식물섬유와 동물섬유로 옷을 짓는 법에 대해 알아본다. 그 밖에 종이와 도자기, 벽돌과 유리, 강철을 만드는 방법도 상세하게 들여다본다.
「가디언」, 「타임스」, 「뉴 사이언티스트」 등에 글을 기고하고 다양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미래 시나리오는 사고실험의 출발점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게 느끼는 기본적인 과학 기술의 원리를 점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생존에서 문명으로, 의식주부터 의학·전력·운송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까지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세계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매뉴얼
문명이 붕괴된 이후 최대한 신속하게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실용적인 지식도 생존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새롭게 지식을 쌓아나가기 위해 과학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도 전달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살아남은 인류를 위한 문명 리부팅 안내서이자, 그동안 인류의 문명을 지탱해온 지식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연기관이나 시계 혹은 현미경이 인류 문명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것들을 만드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더 기본적인 차원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옷을 짓는 방법은? 이 책은 바로 그 방법들을 알려주면서 인류가 과학·기술 지식을 쌓아온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압축적이고 실용적인 매뉴얼이 있다면 사회를 재건하는 데 꼭 필요한 역량들도 최대한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 채굴이나 낡은 건물의 폭파에 적합한 폭발물을 개발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 사용되는 감광용 은화합물이나 인조비료를 생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덮을 때가 되면 문명화된 생활 방식을 위한 하부구조를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는지 이해하고, 우리가 가진 지식의 수준을 높이는 ‘과학’이라는 활동의 기본적인 원칙들에 대해서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며 끊임없이 변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19나 최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산불, 홍수, 폭염 등의 기후 재난, 끝나지 않은 핵무기의 위협 등은 인류 문명이 머지않아 파국을 맞이할 것을 예감케 하고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이를 경고하고 있다. SF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더 이상 상상에 그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생존자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곤경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말해서 과거에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기반시설이 파괴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잿더미로부터 다시 일어서서 장기적으로 융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신속하게 곤경에서 벗어나 정상 상태를 회복하려면 그들에게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 p.10
고대문명들이 그 시대에 축적한 지식의 씨앗을 남겨놓았다면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라. 15세기와 16세기에 르네상스가 남긴, 변화의 주된 기폭제는 고대문명의 학문을 서유럽에 전달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몰락과 더불어 사라졌던 고대문명의 지식은 아랍 학자들에 의해 보존되고 전파되었다. 그들이 고대 문헌을 신중하게 옮겨 쓰고 번역한 덕분이었다. 물론 유럽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다른 문헌들도 있었다. 그러나 철학과 기하학 및 실용적인 기계장치들에 대한 이런 논문들이 타임캡슐이란 분산형 네트워크에 애초부터 보존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책을 미리 마련해둔다면, 종말 후의 암흑시대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 p.21
인간이 유목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한곳에 정착해서 주변의 농경지를 개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농작물로 선택한 식물의 수확량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제공하는 식물의 영양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바람직한 형질을 기초로 번식하는 식물을 선택하는 품종개량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는 식물의 생물학적 구조에서 일정한 특성을 강화하고 달갑지 않은 특성을 억눌러왔다. 식물의 번식 전략을 우리 목적에 맞추려고 난도질하는 과정에서 식물의 생물학적 구조는 심하게 왜곡되었고, 이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 식물에 의존하는 만큼이나 식물도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오늘날 괴물처럼 커다란 토마토부터 성장이 억제된 대신 낟알만 굵어진 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재배하는 모든 작물은 그 자체로 테크놀로지의 산물, 즉 유전공학자들의 작품이다.
--- p.91
다양한 종류의 화합물들은 목수의 연장들과 비슷하다. 각각의 연장에는 특정한 용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이런저런 연장을 사용해서 원자재들에 변형을 가해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 화합물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긴 사슬형 탄화수소 화합물은 에너지를 훌륭하게 저장하기도 하지만, 물을 배척하는 특성 때문에 비바람을 견디는 내후성을 지닌 물건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화합물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추출과 정제에 사용되는 다양한 용매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또한 화학적으로 대립쌍을 이루는 알칼리와 산이 많은 중요한 활동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 어떤 화학물질은 산소를 빼앗음으로써 다른 물질을 ‘환원’ ― 순수한 금속을 얻는 기본적인 방법 ― 할 수 있는 반면에, 환원과는 정반대의 행위, 예컨대 연소를 가속화하는 산화제로 쓰이는 화학물질도 있다. 따라서 환원과 산화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지만, 전기를 만들고, 사진에 쓰이는 빛을 포착하며, 폭약에서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하는 화학적 특성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 p.139
이제 콘크리트는 잿빛의 따분한 건축자재로 취급받으며, 언제인가부터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에 대한 혐오감마저 팽배한 실정이다. 그러나 한 걸음쯤 물러나서, 콘크리트가 실제로는 얼마나 경이로운 건축자재인가를 잠깐 생각해보자. 콘크리트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암석이라 할 수 있고, 만드는 방법도 신기할 정도로 간단하다. 포틀랜드 시멘트와 모래나 자갈을 1 대 2의 비율로 혼합하고 물을 적절하게 넣어 걸쭉한 반죽을 만들면 된다. 나무로 멋지게 짠 거푸집에 그 걸쭉한 반죽을 붓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이 재료가 굳기를 기다린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콘크리트가 파괴된 도시를 신속하게 되살려냈고, 지금도 도시의 건물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자재로 군림하는 이유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이처럼 콘크리트는 현 시대의 아이콘이지만 기본적인 제조법은 2,000여 년 전에 발명된 것이다.
--- pp.171-172
의학적 진단 방법을 바꿔놓은 도구인 청진기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장비이다. 한 끝을 귀에 꽂고, 반대편을 환자의 몸에 대고 밀 수 있는 속이 빈 나무관을 사용해도 되고, 종이를 원통 모양으로 돌돌 말아서 사용해도 된다. 청진기는 실제로 1816년에 이런 식으로 발명되었다. 르네 라에네크는 유난히 가슴이 풍만한 여성 환자의 가슴에 귀와 뺨을 대는 게 거북하게 느껴져서 즉흥적으로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임시변통으로 관을 만들어 사용하면 심장 소리를 완벽하게, 그것도 증폭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청진기로는 체내의 소리를 통해, 심장 소리의 이상 징후부터 폐 질환을 뜻하는 쌕쌕거리고 탁탁거리는 소리까지, 심지어 장폐색의 징후도 알아낼 수 있었다. 또, 태아의 희미한 심장박동도 들을 수 있었다.
19세기가 저물어갈 쯤에는 청진기만이 아니라 체온을 측정하는 체온계, 혈압을 측정하기 위한 눈금표와 연결된 가압대가 의사들의 가방에 든 기본적인 의료 장비였다. 체온계로는 감염과 관련된 열병을 밝혀낼 수 있다. 체온을 규칙적으로 측정해서 찾아낸 패턴이 어떤 특정한 질병을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말 후의 문명이 고에너지 형태의 빛을 발생하는 법을 다시 알아낼 때까지 인체의 내부 형편을 가늠하는 핵심적인 도구로는 청진기가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p.200-201
원칙적으로, 당신의 면 셔츠에 얼룩을 남기는 것은 무엇이든 임시변통으로 잉크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잘 익어 짙은 색깔을 띤 장과류 열매를 으깨서 과즙을 내고, 으깬 과육을 체로 걸러내서 남은 과즙에 약간의 소금을 녹이면 잉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물에서 추출한 잉크의 주된 문제는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생존자가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 종말 후의 사회에서 새롭게 축적한 지식을 영원히 간직하려면, 종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햇빛에 희미해지지 않는 잉크가 필요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세 유럽에 등장한 잉크가 ‘몰식자 잉크’이다. 실제로 서구 문명의 역사도 몰식자 잉크로 쓰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이 잉크로 자신의 공책들을 채웠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이 잉크를 사용해서 협주곡과 모음곡을 작곡했으며, 빈센트 반 고흐와 렘브란트도 이 잉크로 스케치했다. 미합중국 헌법도 이 잉크로 쓰여 후손에게 전해졌다. 원조 몰식자 잉크와 무척 유사한 잉크가 아직도 영국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등기소 직원이 출생증명서와 사망증명서, 결혼증명서 등과 같은 법률문서를 작성하는 데 사용하는 잉크가 중세시대에 사용하던 몰식자 잉크와 화학적 성분이 거의 똑같다.
--- pp.277-278
1681년,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세균을 관찰한 학자가 되었다. 어느 날 설사병에 걸렸는데, 배설물을 직접 제작한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무척 귀엽게 움직이는 극미동물들을 보았다며 생김새는 폭보다 길이가 약간 더 길었고, 배에는 여러 개의 작은 발들이 달려 있었다 라고 보고했다. 또 자신의 정액을 관찰함으로써 모든 동물의 유성생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정자들이 힘차게 꼼지락 거리는 걸 발견했다.(하지만 레이우엔훅은 죄가 되는 행위로 정액 샘플을 구한 것은 아니며, 부부관계에서 자연에서 나에게 허락한 초과분이었다고 주장했다.)
종말이 있고 여러 세대가 지난 후 사회가 한없이 퇴보해서 세균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상실한 탓에 역병의 원인을 다시 나쁜 공기나 신들의 분노로 해석하는 지경까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하면 음식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곪게 하며 시체를 썩게 만들고 병의 전염시키는 원인인, 눈에 보이지 않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작은 생명체의 존재를 우리 문명이 다시 생각해낼 수 있을까?
미생물
분만용 겸자를 발명한 의사들의 가족은 다른 산과의사들이 갖지 못한 이점을 활용해서 큰돈을 벌려고 겸자의 존재를 한 세기 이상 동안 비밀에 부쳤다. 겸자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않으려고 그들은 겸자를 상자에 담아 분만실에 들어갔고, 참관인들을 모두 내보내고 산모에게도 눈가리개를 씌운 후에야 상자를 열고 겸자를 꺼냈다.
프랑스 군대가 통조림 식품을 사용한 지 50년이 지난 후, 1960년대에야 최초의 통조림통 따개가 발명되었다. 군인들은 끌이나 총검을 사용해서 그럭저럭 통조림을 열었지만, 통조림이 민간인들에게도 널리 확산되자 따개가 절실히 필요했다.
영겁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문명이 존재했다는 걸 후세에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카메라가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적도부근에서 1-2분 정도의 노출로 밤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면, 지구의 자전 때문에 모든 별들의 윤곽이 흐릿하게 번져서 굽은 줄무늬처럼 나타난다. 하지만 전혀 번지지 않는 광점들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것들은 하늘에서 일정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지구와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회전하는 것들이다. 지구 위의 그 자리에 계획적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며, 적도 상공에서 정확히 하루의 궤도 주기로 공전하는 정지위성이다. 이 위성들은 도시와 인공물이 허물어져 먼지로 변하고 땅속에 파묻힌 후에도 우주에서 우리 테크놀로지 문명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관찰하는 방법만 알아내면 언제라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과거 문명의 증거가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