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두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에 계합이 되는 것이다.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그 생각’이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그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그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난다 그 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아!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향 냄새가 난다,
아!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 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
하고 그렇게 딱! 믿어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 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그 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 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 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 말이여
첫댓글 모든 중생 참 나를 깨달아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며
우주법계에 깨달은 부처님으로 가득차기를 발원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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