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독자님께 보내는 아홉번째 편지>
법원 앞 1인 시위는 왜 하는가 - 공개 질의서-
충북 영동에서 <한겨레>신문을 16년 전 창간 때부터 배달만 해온 사람입니다. '창간지국장'이란 별칭이 있기도 합니다만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 중졸 가지고 어디다 명암을 내밀 수 있나요. 40대 초반에 신문이란 게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체험적인 '신문배달이야기'를 적어 봤는데, 이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출범기념 문예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상장과 상금을 받은바 있습니다(2002년11월 12일)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받아본 상이었습니다.
16년 전, 중앙일간신문들은, 군부독재에 아부하고 길들여져 '관제언론'으로서 진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축소하거나 왜곡보도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광주 망월동 민주영령묘지에 가보면, 5.18사건 때 어떻게 보도하였는가를 증거물로 전시해 놓은 것을 몇 년 전에 보고 왔습니다. 5.18 당시 저는 추풍령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농민운동 한다고 주로 카톨릭 농민회가 있는 대전, 청주, 서울, 등을 다니기도 했지만 신문들을 별로 보지 않았던 것은 거짓말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언론이란 사회적 공기(公器)일진대 '흉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 지경이 되어 암담하든 차에 해직언론인들 중심으로 '바른 소리하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자본금마련을 국민모금운동으로 전개하여 한겨레신문 창간호를1988년5월15일에 발간하게 된 것입니다. 소액주주로 동참한 저는 당연히 이 <한겨레>만 널리 보급되어 국민들이 많은 것을 알고 깨우치게 되면 세상이 좋아지리라 믿었고, 농민운동과 같은 선상에서 사명감으로 새벽잠을 깨우며 저 자신을 채찍질하였습니다. 이렇게 신문배달을 시작하였지만 먹고살기가 힘겨웠습니다.
16년 전, 고향의 친구 동생인 후배가 공무원 시험 합격하여 영동법원에 근무를 하게되었는데, 그가 살고있는 아파트로 배달해주었고, 직장으로 수금하러 가면 "형님 반갑다" 면서 커피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서울로 떠나면서 "과장이 한겨레를 싫어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 후로 여러 해 바뀌었고, 행여나 신년에 투입을 하면 전화로 "넣지 말라"고 하여 그 뜻을 지금까지 존중(?)해왔습니다.
몇 년 전에도 투입하였다가 전화로 "넣지 말라"해서'질의서'를 보낸바 있지만 유야 무야 지나갔고, 그래서 법원은 다시는 접근하지 말아야 할 '이방지대'로 생각해 왔는데......본사 판매국 판촉 담당이 관공서 '구독확장'을 하겠다며 영동법원에 가더니 '과장개인'이 구독. 일단은 법원 현관에 배달해 주는 것으로 1부라도 들어가니 위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과장이 서울로 갔다고 하면서 "넣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16년이 지나도록 공식적으로 1부도 구독해 주지 않는 이 관청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리하여 지난 8월 13일 '질의서'를 내용증명으로 보냈습니다. 질의1. 영동지원에서 <한겨레>를 구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친일신문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4.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병행하여 구독할 의사는 없습니까. 5.언제까지 계속 <한겨레>를 거절하시겠습니까. 6.서울로 갔다는 서무과장의 구독료 1년 치를 송금해 주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전화가 오기를 구독료 청구하면 온라인 송금해주겠다고 하여 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질의5가지에 대한 대답이 없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10월 1일부터 오전 11시~오후 1시까지, 반드시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라는 각오로 1인 항의시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인터넷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현장까지 와서 취재하기에 이르렀고10월 20일(수요일)에 보도되었습니다. 신기자가 영동지원 유아무개 서무과장을 만나 대화한 아래의 내용입니다.
- 질의서를 받았다면 왜 답변서를 보내지 않아.
"왜 특정신문을 안 봐 주냐는 건데 그게 무슨 민원이냐. 답변하면 또 말꼬리를 잡을게 뻔 하다" 특정신문을 왜 안 봐주느냐고 궁금하여 묻는 것 자체가 '민원'이 아닐까요. 관청이 아닌 개인이라면 묻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답변을 하면 말꼬리 잡을 게 뻔하다니. 제가 말꼬리 잡는 사람인가? 참으로 상식 밖의 대화입니다.
- 어느 신문을 구독할지를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나.
"직원들의 선호도가 높은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또 직원들이 새로 오고가고 할 때마다 취향에 따라 구독 신문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지원장님이나 법관 분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신문도 다른 것이 아니겠나."
직원들의 선호도와 취향에 따라 구독 신문이 바뀌기도 한다면서, 16년이 지나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처 갔고, 그들은 시대가 바뀌어 종교단체에서 만드는 신문도 '개인적'으로 구독해주는지 모르지만, 유독'민주언론'<한겨레>를 국가공공기관에서 배척하는 것은 국가공무원들의 일반상식이 의심스럽다. 또 "지원장님이나 법관 분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 선호도에 대하여, 시사저널여론조사에 의하면 전문가집단 1041명상대로 조사해 '가장 좋아하는 매체'는 한겨레(26.8%), 조선일보(25.7%)문화방송(24.8%). 한겨레는 지난해 4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고.(한겨레10월21일보도)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신문도 다르다? 그렇다면 영동지원 전체 직원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옥천에서는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옥천신문 오한흥 대표는 조선일보를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직원들의)기호에 따른 것까지 뭐라 말 할 수는 없지 않겠나."라는 데, 한 마디로 말해서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은 생각 못하고 기호로 신문을 구독한다? 공평해야 관공서에서, 보수신문 조선일보는 친절하게 대해주고 진보신문<한겨레>는 배척해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들은 조선일보는 구독해서 밥 먹여주었고, 한겨레는 16년 동안 구독해주지 않았으니까 굶겨온 것 아닌가? 당신들 같으면 지금쯤 한겨레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난한 서민, 뜻 있는 분들이 아껴주었기에 발전해 왔고, 심지어 농민의 자녀들인 영동고등학교 기숙사에도 8부씩 들어가는 데, 공무원 전문직원이 25명이 근무하는 법원에 1부가 들어가지 않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주어야 좋을까요. 저는 이번 1인 시위를 하면서, 충북대학교의 시인이자 교수이신 한 분의 홈페이지에 이 소식을 올렸더니
"......올린 글의 내용으로 보아 흰머리소년님의 주장이 크게 무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개인의 경우라면 취향에 따라 특정한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관공서는 논조가 상반된 다양한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글쎄요. 관공서에 신문구독료가 없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웃으면서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은데......아마 그분들이 흰머리소년님을 유명하게 만들어드리려고 그러나 봅니다. 아무튼 몸도 잘 돌보시며 시위를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위로해 주시더군요. 참 한심스럽게도 질의서가 '민원'이 아니라면서 "답변할 생각이 없다"고 한 것이 온당한 것인지, 차라리 국민들에게 <공개질의서>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위의 5가지 질의에 대하여 영동법원은 답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끝으로 지난 20일 오후 1시에 조선일보 영동지국장이 제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법원 정문 앞으로 찾아와 "왜 조선일보냐"고 하면서 제가 들고 있는 피켓을 뺐으려고 하여 옥신각신 하여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란을 피우게 된 것에 대하여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어디에 있는가를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하등의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겨레>1부라도 법원에서 구독해 주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느냐고 동업자로서 건의하는 게 바람직하리라 봅니다. 다른 일간 신문지국장들과는 하등의 감정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신문 상품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 좋은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