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국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시집<소주병>(2004)-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회상적, 감각적(시각적), 애상적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멀덕국 → 가난한 집안 형편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소재
*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 어머니의 안타까움과 사랑
* 별빛 사리 → 자식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에서 흘리는 어머니의 눈물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매개체
떨어지는 눈물을 아름답게 시각화함.
◆ 주제 : 가난한 어머니의 애달픈 모정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가난한 시절의 회상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멀덕국 안에는 '별'들이 있다. 여기서 '별'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화자가 이 국을 먹고 배가 불렀다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에 자식에게 변변한 음식을 못해 주는 어머니의 안타까움과 사랑의 눈물은 '별빛 사리'라는 함축적인 시어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건더기도 제대로 넣지 못한 맑은 국을 끓일 수밖에 없는 가난한 여성이다. 하지만 아들인 화자는 그러한 멀덕국을 먹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한다. 맑은 국물에는 별이 떠오르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쏟아진다. 이러한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은 '별빛'의 이미지, '사리'의 이미지로 승화된다.
◆ 더 읽을거리
시의 초반부는 시인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가난 가운데 애틋한 어머니의 사랑을 일상어로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후반부에는 시적 상상력으로 멀덕국물 속에 달과 별을 띄우고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 같은 눈물을 쏟게 하여 애잔한 슬픔 안에서도 맑고 아름다운 서정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자식에게 넉넉히 해주지 못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워하는 심정과 그 어머니의 정성에 배가 부른 자식의 갸륵한 마음이 잘 녹아 있다.
그냥 재바르게 읽어도 막히거나 이해 못할 대목이 없지 싶은데, 한 중학생이 이 시를 읽고 질문을 한다. "국물 속에 있는 별들을 건졌다는 건 뭔 소리예요? 별은 국속에 들어 있는 고기를 말하나요? 그리고 왜 갑자기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져요? 별빛 사리는 도대체 뭐지요?" 공부를 아주 못하는 아이도 아니고 학교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는 읽어보고 이해도 한다는 녀석인데 이 정도 수준의 은유와 상징을 모르다니 …….
언어의 아름다운 숨결을 이해하지 못하는 책임이 어쩌면 이 시대에 있고 우리 모두의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지난 세밑 친구들의 행패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중학생의 죽음이 떠올랐다. 가족 곁을 떠나 이 사회와 작별하기로 작정한 어린 친구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연일 학교와 선생님과 학생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인터넷에서는 가해 학생의 심판이 자행되었다.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가해 학생들은 구속되었다. 한쪽에선 죽은 학생도 문제가 있으며 그 부모에게도 책임이 크다는 식의 이야기도 나온다. 학교는 패닉상태라고 한다.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겨를은 아닌 것 같다. 잘못이라면 황금만능 출세지향 입시위주교육의 삶으로 빠뜨려간 우리 모두에게 있고 총체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본디 생각보다 훨씬 많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눈에서 떨어지는 '별빛 사리'의 의미를 알고 깨닫는 한 말이다.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 그 부모나 살아 있는 우리 모두 그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
[작가소개]
공광규[ 孔光奎 ]
출생 : 1960. 6. 15.
출생지 : 국내 충청남도 청양
데뷔 : 1986. 《동서문학》에 시「저녁1」등 5편이 신인문학상에 당선
시인. 국문학자. 1960년 6월 15일 충청남도 청양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동서문학》에 시 「저녁1」등 5편이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단국대학교, 한성디지털 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공광규는 등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신이 몸소 부딪힌 당대의 사회현실을 생생하게 시편으로 형상화한다.
화염병이 난무하는 대학생활의 일들을 시로 쓰고 있는 『대학일기』(1987)나 자본과 권력 사이에 벌어지는 거래와 그곳에서 소외된 소시민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는 『지독한 불륜』(1996), IMF사태 이후 가장들의 신산한 삶을 그려내고 있는 『소주병』(2004)등의 작품집들은 공광규의 이러한 시적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광규는 이렇게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불합리와 불평등, 그로인한 슬픔과 절망의 이야기들을 시를 통해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한편 공광규 시는 불교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특징 또한 보이고 있다. 비관적인 현실세계와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과 한계를 불교적인 세계관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치유의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제1회 신라문학상 대상, 2009년 「놀랜 강」외 9편으로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제23회 동국문학상, 같은해 「지족해협에서」외 6편으로 제1회 김만중 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낙타의 인생」으로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저서로는 시집 『대학일기』(실천문학, 1987), 『마른 잎 다시 살아나』(한겨레, 1989),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자유사상사, 1992), 『지독한 불륜』(실천문학, 1996), 『소주병』(실천문학, 2004),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 2008) 등이 있으며 공저로 젊은동인시선인 『그대 울어 세상 흔들때까지』(시민, 1990), 시우주 회원들의 시편을 엮은 『푸른울음을 삼키다』(우주, 2009)가 있다.
한편 공광규는 시창작 방법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서를 펴낸 바 있는데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푸른사상사, 2005)와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푸른사상사, 2006),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화남출판사, 2009) 등의 저서가 있다. 이 외에도 성철 스님의 전기를 소재로 한 동화책 『성철스님은 내친구』(재능출판, 1993)와 『천진한 부처 성철스님』(북앤피플, 2002), 『마음동자 : 청담 큰스님 이야기』(화남, 2003)등을 펴내기도 했다.
<학력사항>
동국대학교 - 국어국문학과
동국대학교 - 문예창작학과 문학박사
경력사항
단국대학교, 한성디지털 대학교 등에 출강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을 역임
<수상내역>
1986년 작품명 '저녁1' - 《동서문학》에 시「저녁1」등 5편이 신인문학상에 당선
1989년 제1회 신라문학상 대상
2009년 작품명 '놀랜 강' - 「놀랜 강」외 9편으로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제23회 동국문학상
2010년 작품명 '지족해협에서' - 「지족해협에서」외 6편으로 제1회 김만중 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작품명 '낙타의 인생' -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작품목록>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네이버 지식백과] 공광규 [孔光奎]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