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절대 일심동체가 아니다
노병철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요즘 즐겨보고 있다. 노비가 양반댁 규수로 살아가는 그저 그렇고 그런 드라마이겠구나 생각하고 보았는데, 여태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외지부(外知部)’라는 변호사 직업이 사극에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역시 작가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군이다 싶다. 외지부란 역할이 조선 초기엔 쓸데없는 송사나 일으키는 사기꾼 취급을 받아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범법자 취급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아주 멋진 변호사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옥태영이 외지부 역할을 하면서 ‘열녀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을에 열녀가 나오면 국가에서 많은 혜택이 주어져 억지로 열녀를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여행하다 보면 가끔 양반집 동네에 ‘열녀문(烈女門)’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남편을 따라 같이 죽은 여자를 향해 ‘열녀’, ‘열부’로 칭송하는 것이다. 여성이 본의 아니게 성적 범죄를 당해도 그건 오롯이 여성의 잘못으로 치부되어 자결을 강요받았고 그래서 자결한 여성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격려와 포상을 했다는 것이다. 정절을 위협받는 상황이면 자결을 권하고 하늘 같은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으라는 행동 방침이 있는 ‘삼강행실도’가 제대로 가스라이팅 한 것이다.
내가 죽는다고 집사람이 따라 죽으면 내 기분이 어떨까? 물론 그런 일은 천부당만부당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따라 죽을 마음도 없겠지만 나 역시 절대 원치 않는 일이다. 그래서 열녀문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렇게 좋은 방향으론 생각되지 않았다. 그 집안 어른이 열녀문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에 만약 죽은 할머니가 정말 할아버지를 애틋하게 그리워 자진해서 죽음을 택하지 않고 강제 죽임을 당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자기 할머니의 잔혹사를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자체가 더 우습게 느껴지고 후손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사건이 아닌가 말이다. 마치 순장(殉葬)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졸지에 열녀가 된 친정집 식구들로부터 외지부 옥태영이가 칭송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에서 ‘보쌈’이 나쁜 쪽으로만 해석되고 있지만 과부가 되면 평생 개가 금지에 오로지 수절만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자결하면 열녀문을 내려 가문의 영광으로 치부하던 때에도 보쌈이란 효과적인 재혼 풍습이 있었다. 홀로된 과부를 야심한 밤에 보에 싸서 데려와 혼인하던 풍습으로 일종의 약탈혼이라고도 했다. 임금이 법으로 여자들의 재혼을 금지했으나 사람이 어디 법대로 살 수 있나. 특히 친정집 사람들도 당연히 수절하고 사는 것보다는 재혼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미 결혼을 약속한 과부랑 홀아비들이 서로 집안끼리 말을 이미 맞춰놓고 보쌈 꾼을 돈 주고 구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며느리도 재혼하게 했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온다.
‘성적자기결정권’이 강조되는 21세기 성 풍속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많이 변해버렸다. 특히 부부라는 관계는 주례도 없어졌지만, 주례사에 약방에 감초처럼 들어가던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신혼여행 갔다 오는 길에 이혼한다지 않는가. 정절(貞節)이란 단어가 요즘도 사용되는지 궁금하다. 남자는 아무 데나 씨를 뿌리고 다녀도 큰 탈이 없고 여자에게만 정절이 강조되던 풍습은 호랑이가 담배 끊고 은단 먹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됐다. 그리고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못했다. 열부문(烈夫門)을 세워줬다는 말이 어느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같이 따라 죽겠소.”
농으로 던진 이 말을 완전 다큐로 받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고 난리다. 내가 그 정도였나? 갑자기 성질이 난다.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사성(四星)이란 것이 우리 때는 있었다. 여자가 죽으면 이 사성을 같이 묻는 풍습이 있다. 요즘 중년 여자들이 장롱 깊숙이 넣어놓은 사성을 꺼내 태운단다. 이 사성을 보고 남편이 저승에서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하여 미리 그 단초를 없애는 것이다. 부부는 절대 일심동체가 아니다.
첫댓글 ㅎㅎ~~
저도 사성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참에 찾아서 태워버려야 하나~~
제가 이야기했다는 말씀은 절대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그걸 이제야 알았는감.
부부란 이심이체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