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오형제/권혁웅
0. 기지 基地
정복이네는 우리 집보다 해발 30미터 더 높은 곳에 살았다. 조그만 둥지에서 4남 1녀가 엄마와 눈 없는 곰들과 살았다 곰들에게 눈알을 붙여 주면서 바글바글 살았다 가끔 수금하러 아버지가 다녀갔다
1. 독수리
큰형이 눈뜬 곰들을 다 잡아 먹었다 혼자 대학을 나온 형은 졸업하자마자 둥지를 떠나 고시원에 들어갔다 형은 작은 집을 나와서 더 작은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십 년을 보냈다 새끼 곰들이 다 클만한 세월이었다
2. 콘돌
둘째 형은 이름난 싸움꾼이었다. 십 대 일로 싸워 이겼다는 무용담이 어깨 위에서 별처럼 반짝이곤 했다 형은 곰들이 눈을 뜨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큰집에 살러 가느라 집을 비우면 작은 집에서 살던 아버지가 찾아왔다
3. 백조
누나는 자주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곰같이 살아! 나는 그렇게 안 살아! 눈알을 박아 넣는 엄마 손이 가늘게 떨렸다 누나 손은 미싱을 돌리기에는 너무 우아했다 누나는 술잔을 집었다
4. 제비
정복이는 꼬마 웨이터였다 누나와 이름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소식을 주워 날랐다 봄날은 오지 않고 박꽃도 피지 않았으며 곰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냥, 정복이만 바빴다
5. 올빼미
하루는 아버지가 작은집에서 뚱뚱한 아이를 데려왔다 인사해라, 네 셋째 형은 말도 하지 않았고 학교에 가지도 않았다 그저 밤중에 앉아서 눈뜬 곰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했다
6. 불새
우리는 정복이네보다 해발 30미터가 낮은 곳에 살았다 길이 점점 좁아졌으므로 그 집에 불이 났을 때 소방차는 우리 집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불타는 곰 발바닥을 버려두고, 그렇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 사실 독수리 오형제는 독수리들도 아니고, 오형제도 아니다. 다섯 조류가 모인 의남매다. 다섯이 모이면 불새로 변해서 싸운다.
<시 읽기> 독수리 오형제/권혁웅
그들은 왜 불새가 되었나
1990년대에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독수리 오형제>라는 만화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이 만화엔 아얀 날개의 지적인 리더 1호(독수리), 검은 옷을 입은 타고난 싸움꾼 2호(콘돌), 핑크색 옷을 입은 홍일점 3호(백조), 언뜻 봐도 똑똑해 보이는 4호(제비), 나가서 싸우지는 않고 이동거지를 지키는 뚱뚱한 5호(올빼미) 이렇게 다섯 주인공이 등장한다(그러니 시인의 말마따나 이들은 ‘다섯 조류가 오인 의남매’다. 독수리 오형제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장남 중심적(?)인 작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만화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조류 오남매’가 ‘합체’하여 불새가 되는 순간이다. 이 불새는 지구를 위협하는 ‘나쁜 놈’들을 쓰러뜨리고 지구를 구한다.
시인은 이 이야기를 어느 달동네 도시 빈민 가족의 삶에 포갠다. 가난한 집안의 유일한 희망인 큰형은 고시 공부를 하며 그러지 않아도 가난한 살림을 거덜 낸다. 이러한 장남 때문에 가장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둘째 형은 방황과 반항에서 존재근거를 찾으며 큰집(교도소)을 들락날락한다. 누나는 고생하는 어머니의 삶을 강하게 거부하지만 돈도 배움도 없기에 결국 술집으로 흘러 들어간다. 나름 똘똘한 막내 정복이는 너무 어리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여기에 아버지의 ‘두 집 살림’의 결과물로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셋째형, 처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설상가상으로 폭력적이며 바람까지 피우는 아버지. 곰 인형에 눈알 붙이는 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인고와 희생의 살을 살아가는 어머니까지 해서 등장인물은 총 일곱 명이다. 제3자가 봐도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나면서 슬픈 가족 이야기다.
이 이야기 또한 ‘불새’ 장면으로 끝난다. 단, 시의 장면은 만화와는 정반대로 매우 비극적이다. 그들의 ‘기지(집)’는 불에 타서 없어진다. 소방차가 갈 수 없는 산꼭대기(‘해발 30미터가 더 높은 곳’) 달동네에 있기 때문에.
얼마전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 공주>의 결말을 인어 공주가 왕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알고 잇는 중학생을 만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디즈니 만화 때문이었다(니즈니 사는 이 비극적 동화를 해피엔딩으로 바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현실이 만화처럼 항상 정의가 승리하고 착한 공주는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이런 시도 나오지 않았을 텐데, 밤마다 곰 인형을 안고 꿈나라로 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쉴 새 없이 곰 인형의 눈알을 붙여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만화 속의 독수리 오형제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새가 되지만 현실 속의 독수리 오형제는 소방차가 접근할 수 없는 달동네에 살았기에 불새가 되었다.
그나저나 ‘불새’ 장면만큼이나 ‘정복’이라는 이름도 정말 슬프다. 정복이는 과연 무얼 정복할 수 있었을까. 무엇 정복하고 싶었던 걸까.
―김경민, 『시 읽기 좋은 날』, 쌤앤파커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