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밀고 내려오는 러시아군 기갑부대(탱크와 장갑차 행렬)을 튀르키예(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드론으로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2020년 9월 아르메이나-아제르바이잔 간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에 이어 '바이락타르 TB2' 드론의 미래 전투력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드론은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주요 군사장비로 자리매김했다.
'드론'은 사전적으로 자율 항법 장치에 의해 자동 조종되거나 무선 전파를 이용해 원격 조종되는 '무인 비행체'로 정의된다. 이 해석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흑해함대 공격에 나선 우크라이나 '수상 드론', 크림대교 폭파를 시도한 '수중 드론' 등 해상에서 운용되는 '무인 선박'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잘못 사용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론의 정의를 '무인 비행체'로 한정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원격 조종이 가능하거나 자율 조종되는 '무인체'로 확대한다면, 지상전에 투입되는 '무인 탱크'나 '무인 로봇' 등도 '드론'의 영역에 속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상 드론'이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비버'/사진출처:텔레그램
우크라이나 보안국 SBU의 수상 드론/사진출처:SBU
러시아 '지상 드론'인 무인 전차 '우란9'/사진출처:위키피디아
아직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 만큼, '지상 드론'은 매체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지상 기반의 로봇(플랫폼), 지상 전투 로봇, 무인 탱크, 탱크 로봇, 전투 로봇 등이다. 여기서는 '지상 드론' 혹은 '무인 탱크', '전투 로봇'으로만 쓰기로 한다.
'지상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면, 전통적 의미의 드론(공중 드론)과 '수상 드론', 드론과 '지상 드론'이 서로 치고받는 소위 '무인 전쟁'의 개막을 예상해볼 수 있다. 빠르게 물살을 헤치며 흑해함대를 향해 달려오는 우크라이나 '수상 드론'의 출현을 탐지한 러시아 해군이 즉각 전함 위에서 '자폭 공격용 드론'을 띄워 '수상 드론'을 파괴할 수도 있고, 지상에서 '무인 탱크'가 뉸앞에 나타나면 드론을 띄워 바로 저격하거나, 포 공격을 유도할 수 있다.
다만, '수상 드론'이든 '지상 드론'이든 그 크기가 작아 탐지하고 대응하기까지 시간이 촉박하고 어렵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드론이 '수상 드론'을 잡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았지만, 드론과 '무인 탱크'간의 지상전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지난 30일 우크라이나 47(기계화) 여단이 (러시아군이 최근 점령한 뒤 공세를 펴고 있는) 아브데예프카(아우디우카) 전선의 베르디치 마을에서 AGS-17 자동 유탄 발사기를 장착한 러시아 '전투 로봇'을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47여단은 "FPV 드론(사람이 조종 가능한 드론)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전투 로봇'을 무력화했다"면서 "러시아군이 지금까지 이러한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전투 로봇이 출현한 베르디치 마을은 '아브데예프카 전선'에서 가장 '핫'한 곳의 하나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아브데예프카를 지나 북서진 중인데, 탱크 36대와 장갑차 12대로 편성된 기갑부대가 앞장서고 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군은 FPV 드론과 포병의 연합작전으로 러시아군의 진격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베르디치 전투에서는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지상 드론'을 최전방으로 내보냈으며, 우크라이나군은 드론으로 '지상 드론'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측은 그러나 '지상 드론'이 적진 깊숙히 침투해 유탄 발사기로 진지를 공략했으며, 사상자 없이 적 진지를 제압했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우크라이나측이 공개한 러시아 '지상 드론' 파괴 모습. 지상 드론을 포착한 뒤(위) 드론을 띄워 자폭했다/영상 캡처
'무인 탱크'도 기존의 탱크와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직접 공격하거나 공격을 유도하는 FPV 드론 앞에서는 무력함을 드러낸 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지상 드론'의 위력을 마냥 무시하기는 힘들다. 드론을 잡는 대공포를 장착한 '지상 드론'도 이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전문 장교인 세르게이 베스크레스트노프(암호명 플래쉬, "Флеш")는 최근 텔레그램을 통해 "6개월에서 1년 내에 러-우크라 양측이 모든 지상 군사장비를 파괴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FPV 드론을 생산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보병이 지하로 다녀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상에서는 드론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반경 6km 내에서 활동하는 병력과 장비를 탐지하고 파괴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근거리의 모든 전투 활동은 앞으로 '무인 탱크'에 의해 수행되고, 전투 부대는 지하로 다녀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하루 종일 전장 위를 떠도는 FPV 드론이 상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지휘부에 전달하면, 이를 확인한 지휘부가 드론이나 포 공격으로 타격을 가하면 지상 병력의 움직임은 한층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무인 탱크'를 앞세워 드론을 운용하는 적 진지를 제압하는 게 합리적이다.
'지상 드론'의 전장 출현은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된 상태였다. 러시아 '안드로이드나야 테크니카'사는 2023년 1월 자신들이 개발한 '전투 로봇'인 '마르케르'(Маркер,영어식 표현으로는 '마커')에 대한 테스트가 끝났다며 "전투 로봇 2대를 내달(2월)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 정찰 및 물류 운송 시스템을 시험할 예정"이라며 발표했다. 또 "실전 투입이 아니라 실전에 가까운 환경에서 로봇 장치들의 핵심 기술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전투 로봇 마커/사진출처:위키피디아
'마커'는 일단 사람의 인위적인 개입없이 자율적으로 적을 포착하고 살상이 가능한 '전투 로봇'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2002년 7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실제 수색작전에 투입한 '헤르메스 전투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 '헤르메스'는 원격 조작되는 로봇이었다.
마커는 원래 경비 업무용으로 2018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외로 길어지면서 중화기를 장착해 전쟁터에서 직접 시가지 전투에 나서거나 전투 지원이 가능하도록 개량됐다고 한다. 마커의 성능이 처음 소개된 것은 러시아의 국제 무기 전시회인 'Army-2022' 포럼이다. 바퀴가 달린 마커 3대와 무한 궤도형 마커 2대 등 5대의 '전투 로봇'이 등장했는데, 각기 12.7㎜ Utes 기관총과 RPG-26 대전차 유탄 발사기 등 서로 다른 무기가 장착돼 있었다.
또 근거리 대공 방어 시스템으로 활용이 가능한 '레이더 시스템' 장착이 가능하다고 했다. 드론 저격용이다. 상대를 공격할 자폭용 드론도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러시아 군사전문 매체 톱 워(Top War.ru)에 따르면 마커는 약 15㎞ 떨어진 곳에서 자율적으로 목표물을 포착하고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해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적을 겨냥할 수 있다. 무게가 약 3톤(t)으로 시속 8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으며, 1회 배터리 충전으로 3천km를 이동할 수 있다.
특히 바퀴 달린 '마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정찰 로봇'으로 유용하다. 레이더를 장착해 감시 구역이 크게 확장된다. 처음부터 보안및 경비 업무용으로 개발이 시작된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2021년 10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경비 업무에 투입됐다. 러시아우주청(로스코스모스)는 드넓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마커를 투입,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 자율적으로 이동하면서 순찰하고, 침입자를 탐지해 식별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시험했다.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또한, 몇대의 마커가 떼로 몰려오는 침입자를 식별하고 우선 순위를 부여한 뒤, 대응하는 협력 시스템도 합격점을 받았다고 한다.
러시아군 무인 전차 '마커'/사진출처:ferra.ru
이같은 과정을 직접 지켜본 로스코스모스의 드리트리 로고진 전 대표는 2023년 2월 러시아군이 특수 군사작전 지역에서 '마커'의 전투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우크라이나 실전에서 '전투 로봇'의 출현이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47여단이 거론한 '전투 로봇'이 '마커'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전 '전투 로봇'인 '우란 9'은 시리아 전투에서 실망을 안겨준 것으로 확인돼 우크라이나 전장에 나타난 '전투 로봇'은 '마커'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마커'는 적의 탱크나 장비, 진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공격할까? 로고진 전 대표는 "미국 에이브럼스 전차(탱크)와 독일 레오나드 전차 등 나토(NATO) 군사장비의 이미지가 '마커'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다"며 "신경망 알고리즘으로 이미지를 분석하는 인공지능(AI)시스템을 이용해 적 장비를 식별하고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해군분석센터의 새뮤얼 벤데트 연구원은 뉴스위크에 "마커가 상당히 복잡한 일련의 임무들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장과 같은 매우 복잡한 환경에 투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전투 상황에서는 마커와 운영자 사이의 통신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전투 업무가 상당히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마커' 이전의 '우란9'은 시리아 전투에서 그같은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2019년 1월 실전 배치된 '우란9'은 시리아 실전 테스트에서 통제와 기동성, 화력, 정찰 및 관측 기능 등에서 취약점이 드러났다. 러시아 국방부 제3중앙연구소는 실전 보고서에서 "우란 9가 운영자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실제 범위는 300~500m 이내) 신호가 손실됐고, 30㎜ 포 발사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자주 수리가 필요했다"고 인정했다.
벤덴트 연구원은 "러시아가 이번에도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군사용 지상 드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선전전을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프랑스 피가로 등 유럽 언론들은 당시 서방국들이 '마커'의 등장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마커가 미국 에이브럼스와 독일 레오파르트2 탱크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목된다고 했다.
독일 타블로이드 빌트(Bild)는 지난 1월 우크라이나군이 '지상 드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유형은 다양하다. 러시아 지뢰밭을 공략하는 지뢰 제거용 로봇과 미국 M2 기관총을 탑재한 지상 드론, 철도 교량 아래로 침투해 자폭하는 '가미카제형 지상 드론' 등이다. 꼭 전투용이 아니더라도 무인으로 적에게 손실을 가하는 로봇들이다. 모두 '지상 드론' 범주에 묶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