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와 동료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그의 인식이 하느님을 세상과 분리된 초월자로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물들의 총 집합체이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하느님 당신이 현상화 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은 전일(전체가 하나를 구성한다는 의미)하시며 모든 사물들은 손과 발처럼 사실상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물들, 특히 인간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형제들이나 동료를 미워하는 것은 손이 발을 미워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손과 발의 역할은 다르지만 결국 몸 전체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역할에 있어서 다르지만 한 분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역할에 충실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활동 능력이 강화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끼리의 갈등과 싸움은 좋은 의미에 있어서 더 이익이 되는 방향, 더 선한 방향으로 가기 위함인 것인데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결여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세계의 진행을, 단순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어떤 통속에 미로가 존재하여 출구가 하나 뿐일 때, 그 안에 있는 마우스가 출구로 나가는 방법은 그 마우스에 출구로 나가는 방법이 세부적으로 프로그램화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하자면, 하느님을 초월자로 생각하여 미래의 모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마우스가 움직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내장된 프로그램이래야 부딪히면 방향을 바꾸는 것 뿐이다. 그러나 마우스는 결국 미로를 탈출한다. 왜냐하면 부딪히면 그 부딪힌 장소와 방향을 기억하므로 더 이상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진행은 이와 같은 것이다. 미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물간의 성질이 상호간에 작용하여 미래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같은 작용이 일어나는데, 인간은 가장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끼리 갈등과 싸움을 일으키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기에게 그러한 싸움이 오히려 각자에게 불리하고 해악이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더 이익이 되는 방향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면서 더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더 큰 선의를 가진 자가 더 큰 힘을 갖게 될 때, 그의 승리는 일시적이 아니라 영속적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현재 진행은 미로의 통 속에서 한참 헤메는 마우스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마우스가 스스로 미로를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통 바깥에 어떤 초월자가 와서 마우스를 인위적으로 통 밖으로 꺼내준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마우스는 스스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무능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존재의 본질과 속성을 이해한다면 하느님의 존재가 자연과 분리된 존재일 수도 없고 자연이 가진 능력 이외의 초능력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그분을 구성하는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며, 또한 동료나 형제들끼리도 손과 발의 서로 다른 역할을 하게 되므로 서로의 이익이 충돌할 때, 협조하여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유토피아에 이르는 한 과정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정확히 인식할 때, 비록 작은 부분에서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큰 차원에서는 그것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공멸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