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을 예정대로 가느냐는 독촉을 받으면서도 일정을 카페에 게제하지 못하고 여행지를 지도위에서 그리면서 도상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어디에서 1박을 하며 어디어디를 관람할까? 고민은 끝도 없으면서 출발 3일전 코스를 확정하고 카페에 과감하게 일정을 올렸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출발 날부터 비가 올 것이라는 불안한 정보가 엄습해 올 때도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서도 출발전날까지도 불안한 맘을 반쯤 숨기고 저녁 개인적 약속으로 인한 술자리는 새벽 4시30분까지 계속되고 겨우 5시에 집에 들러 샤워를 마치고 짐을 챙겨 7시쯤 집을 나섰다. 새벽까지 술에 시달린 속을 달래줄 해장국집이라도 찾을라치니 24시 식당은 찾을 길이 없고 20분쯤 후에 아침 일찍 문을 연 분식집에서 따뜻한 국물 메뉴를 주문하고 있는 동안 차근히 마음속 준비를 다짐하였다.
8시 정각 조금 못 미쳐 도착한 세류초등하고 정문 앞에는 이미 관광버스가 도착하여 짐을 싣고 낯익은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1년 만에 해후하는 진대성 기사님과 악수를 나누는 사이사이로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보였다.
출발 인원을 챙기는 동안 김도욱선생님과 조규용선생님, 고등반 최명숙, 박정옥어머님이 같이 못 가신다고 전송을 나오셔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 속속 참가하겠다고 전날까지 파악된 분들이 도착하고 있는 중 산본에서 오시는 초등반 어머님이 숙지중학교라고 전화 연락이 왔는데 10분이 지나도 택시를 잡을 수 없단다. 왜 숙지중학교로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정미숙 선생님께서 조규용선생님 차를 타고 모시로 가는 사이 34명이 출발준비를 완료하고 있는데 8시 50분에 도착하여 드디어 차가 출발을 시작하였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하늘은 맑기만 하고 ‘놀토인’ 23일 토요일 아침의 거리는 한산하여 차는 동문 4거리를 지나 동수원 IC로 진입하였으나 이미 영동고속도로는 차들로 막혀 있어 우리는 경부고속도로로 서울로 향하였다.
판교를 지나 도시순환고속도로를 거쳐 하남시를 관통하여 한강변을 따라 양평 홍천을 향하는 동안 작년과 같이 늙은 여행안내 도우미가 일정을 소개하고 참가자들 스스로 자기소개를 하며 36명(초등부; 성정숙, 유길수, 윤정숙, 손순옥 4명, 중등부; 원기한, 이형숙, 양용자, 김귀남, 정혜자, 장정례 6명, 고등부; 윤정옥, 유의선, 신선심, 이명순, 박금옥, 이은숙, 최금자, 유명숙, 안복순, 박수자, 신영희 11명, 졸업생; 한상금A, 김명순A, 김정숙, 김귀덕, 하재숙 아드님 최종원 6명, 교사; 한선희 우왕기 내외분, 홍승의, 윤광득, 장윤태, 정미숙, 성선덕, 박영도 8명에 스페어기사 진대성 1명)은 조정희기사분이 운전하는 푸른색 한창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준비해간 떡 계란 과일 음료수로 아침을 대신하는 사이 차는 북한강변을 따라 양평을 지나고 있었다.
드디어 윤광득선생님의 사회로 1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예년과 다르게 퀴즈로 시작된 수업은 직접 선물까지 준비한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신통쟎게 나타나자 메뉴는 노래로 바뀌자 드디어 반응이 일기 시작하였다. 휴게소에서 잠시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사이 분위기 반전을 위하여 조금의 알코올을 공급하기로 한 주최측의 간사한 계획을 비웃기로라도 한듯 처음에는 맥주 몇 캔만이 돌더니만 노래가 몇 곡 흐르는 사이 소주에 폭탄주가 돌기 시작하고 래퍼토리도 발라드에서 뽕짝으로 다시 고고 디스코 삼바 탱고로 발라드로 급기야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까지 장르 불문 신청곡은 늘어만 가던 중 역시 기대가 되던 초고음불가의 명가수가 올해도 마이크를 잡고 신곡을 발표 했는데 노래가 끝났을 때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고 분위기는 극에 달해 가는 중 차는 11시 30분 홍천을 지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양양을 향하는 고속도로가 건설 중인데 많이 좋아진 도로는 연휴이지만 동해로 향하는 길이 별로 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를 한번 들리는 것을 빼고는 계속된 1교시는 인제 원통을 지나 12시 30분 점심식사를 위해 만해공원에 다다를 동안도 계속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은 숲에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었는데 저마다 소녀인양 한줌씩 손에 따들고 집 떠난 설레임(?)으로 좋아하면서 준비해간 김밥이랑 배추겉절이로 식사를 마치기 바쁘게 옆 계곡으로 향해 도심에서는 볼 수도 없는 맑은 물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면서 망중한을 즐기는 동안 차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재촉하였다.
곳곳에 도로 건설로 계곡이 파헤쳐져 자연의 흔적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서 차는 진부령고개를 넘어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데 우리는 식사로 인한 오후의 노곤함으로 잠시 쉬고 있는 사이 간성을 지나 드디어 동해의 바다가 멀리 눈에 언뜻언뜻 들어오고 해수욕장들에는 오후의 한가로운 파고가 일고 있는데 일행은 2시 조금 지나 통일전망대의 입구인 안보교육관에 도착하여 잠시 슬라이드 교육을 시청하고 다시 차에 승차하여 북으로 향하여 민간인 통제구역 입구를 지나 10Km쯤을 더 달려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였다.
가파른 163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북으로 해금강과 북한의 신비한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고 더 멀리에는 금강산이 일행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최근 남북의 화해무드를 타고 이어진 도로와 철길이 휴전선을 뚫고 북으로 이어져 있는데 언젠가 자유롭게 왕래할 그날을 염원하면서 북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들을 찍고 통일기원불상과 성모마리아상 전시된 전차 비행기 등을 돌아보는 동안 하늘은 맑고 여름 햇빛이 내리쬐고 있는 중으로 산바람이 불어주고 있어 걷기에도 그렇게 힘들지 않아 축복 받은 날씨의 부조에 감사하며 약속된 시간에 차에 오른 일행은 다음 목적지인 화진포해수욕장 근처의 김일성 별장과 이기붕 별장을 향하였다.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오른 해변가 산중턱 벼랑에 지어진 김일성 별장은 밖에서 보기에는 평범한 2층 집으로 보였으나 2층 거실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왜 그곳에 별장이 지어졌으며 역시 권력의 절대자가 선택한 것은 평범하지만은 않은 비경을 가지고 있었다. 해수욕장을 끼고 펼쳐진 모래사장은 족히 10리에 달하고 하늘과 맞닿은 동해의 푸른 파다는 끝이 없어 보이며 중간에 떠 있는 조그만 돌섬에는 소나무와 초록의 여름이 자라고 있는 것이 옛날 산수화에서 봄직한 그림속의 풍경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1912부터 1994년까지 82년을 살다간 지구상의 절대 독재자였던 한 권력가도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조금만 인간적으로 평화와 타협해줬더라면 최소한 1000만 이산가족들과 실랑민들의 반세기에 달하는 인간적 고통은 없앨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내려와 소나무 숲속에 고저넉하게 자리 잡은 이기붕씨의 별장은 돌아 봤을 때는 오늘날 가진 자들의 별장에 비에서는 평범하기만 하였다.
차에 오른 일행은 볼거리에 비해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들을 나누면서 속초 대포항을 향하고 있었다. 대포항에서는 30분 동안 잠깐 돌아보고 특산물 쇼핑이나 한다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남자들이 아바이순대와 대포항에서만 유일하다는 소라로 소주 한잔씩만 하자는 약속이 3병을 마시고 안주 사러 들락거리는 동안 1시간이 다 가도록 오지 않는 어머님들은 한선희선생님의 인솔로 장보기에 나서 미역 다시마 오징어 등으로 손에 손에 큰 비닐봉지들을 끌고 나타났다. 사연인즉 40% 가격으로 흥정하고는 한 가게를 바닥낸 묻지마 관광으로 손에는 공짜로 집어온 시식품으로 가득하여 아줌마의 위대한 위력을 보였다.
차는 하조대 숙소를 향해 출발하고 동해안의 하루 일상을 마감해가고 있는 7시쯤 하조대에 도착하자 일출을 보자는 제안을 뒤로 하고 숙소를 지나쳐 하조대에 차가 멈추고 정자에 오른 일행은 그 비경에 감탄하면서 사진 찍기에 야단이고 옆 등대에 올라서는 탄성이 극에 달하였다. 어떤 분은 일생에 처음 보는 비경을 보지 못하고 죽을 뻔 했다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였다.
하조대에서 5분 이내 거리에 자리 잡은 콘도텔 숙소에 도착하여 큰방 2개에 여장을 풀고 회와 매운탕과 준비해간 반찬들로 식사를 하는 동안 이미 구석구석에서는 큰소리들이 오가며 술잔들이 비워지면서 10시에 옆 건물 노래주점 홀로 자리가 옮겨지고 분위기는 극에 달하여 뒷바라지하시는 한선희선생님은 술을 사다 나르기에 분주 하였다. 윤광득선생님의 사회에 댄서 장모 홍모 교사에 우왕기선생님의 추임새는 밤이 취하기에 충분하였고 연이어진 학생들의 노래는 모두가 가수인데다 상당한 프로의 경지에 오른 몇몇 주부가요열창 수준의가수에다 절대고음불가의 신인이 또 선을 보이는 등 30평 이상의 홀이 복잡도록 뛰느라 밤은 이미 취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광란의 밤은 거의 새벽 1시가 되어 끝이 나고 그래도 분이 덜 풀린 모모교사 2분과 스페어 기사분, 학생 술꾼 6명은 바닷가 해수욕장으로가 인근 횟집에서 주문한 안주와 술로 3시가 될 때까지 부어라 마시라하고 수학여행의 첫 밤은 그렇게 취해만 가고 있었다.
6시에 일어나 거닐은 해수욕장은 가량비가 내리고 파도는 제법 거친 소리를 동반하여 일고 있었으나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잠시들 잠시 눈을 붙인 일행은 남은 반찬들과 오징어 김칫국으로 밤새 시달린 속 풀이를 하고는 차는 쇼핑으로 늦어 다음날로 미루어진 낙산사를 향하고 있었다
신라 문무왕 11년 671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낙산사는 범에도타락가(補陀落伽)의 준말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라는 낙산의 이름을 딴 고찰로 2년 전 화재로 인해 불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운데 해수관음입상은 그 인자한 의연함으로 서 있고 일행은 기념 촬영들을 하고 홍예문과 홍련암을 돌아보기 위하여 자리들을 옮겼다. 내려오는 길에 약수로 갈등된 입을 축이고 돌아서는데 동종루 앞 자판기에서는 공짜로 커피가 적선되고 있어 우리는 줄을 서서 커피를 한잔씩 들고 훼손된 문화재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차에 올라 우왕기선생님의 강원도 사투리 강의를 들으며 소금강을 향해 길을 떠났다.
오대산 동쪽 매봉과 노인봉 사이 황병산 주봉 밑으로 펼쳐진 계곡이 그 모습이 금강산에 버금간다고 율곡 이이가<청학산기>에서 칭 한데에서 이름 붙여졌다는 소금강은 무령계, 십자소, 식당암, 연화암, 만물상, 구룡폭포 등의 비경을 다 보아야 하나 주어진 시간 내까지 올라갔다 올 것을 주문하고 동창회회장님과 한선희선생님과 점심 식당을 물색하고 산을 오르는 중에 매표소 입구에서는 일행에서 이탈한 한 무리들이 막걸리를 두고 이미 산취에 취해 있었다.
그기에 합류한 우리는 고등반 신선심씨를 부추켜 막걸리를 사게 하고 울릉도에서 왔다는 귀한 산나물과 감자전을 안주하여 잔을 나누고 분위기는 고조되어 급기야 우왕기선생님은 젓가락 장단에 ‘흙에 살리라’ 노랫가락을 자청하시고 평소 애송하시는 청마 유치환의 '생명의 서'(?)를 해설과 함께 구성지게 낭송하시는 가운데 서정주님의 ‘연꽃만나러 가는 바람같이’를 낭송할 때는 모두가 가객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빠져들었다.
약속된 1시 30분이 가까이 오자 선두에 선 사람들이 하산이 시작되고 1시 45분이 되자 마지막 무리가 도착되어 산채 비빔밥이 마련된 식당에서 산행으로 허기진 점심은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어우러져 진미를 맛보는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나서자 가량비가 햇빛을 뚫고 내려주어 시원함을 더해주는 가운데 차는 강릉 오죽헌을 향하고 있었다.
차안에서 강릉 출신의 우왕기선생님으로 부터 오죽헌과 신사임당에 대해 설명을 들은 일행은 3시쯤 오죽헌에 도착하여 경내를 두루 둘러보면서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내고 여성으로 후대 인물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는 신사임당을 생각하면서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서 있는 어각제, 내부의 유물과 이이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 등을 돌아보며 3시 30분에 월정사를 향하기로 한 계획이 늦어지면서 급기야는 4시가 되어서야 마지막 일행이 차에 올라 부득불 관광을 종료하고 귀향을 서두르기로 하였다.
오죽헌의 관광을 마치고 차에 오르자 이별을 슬퍼함인지 하늘은 참았던 장마 비를 뿌리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횡계에 다다를 동안 오락가락하였다. 그간 하늘은 우리를 위해 들리는 장소마다에 비를 뿌리다가도 멈추어 오랜만의 출타를 축복하여 그저 많은 사람들의 축원이 있었기에 하늘마저도 감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일단은 날씨로 졸였던 긴장이 일순간 녹아 내렸다.
차는 영동고속도로에 올라 빗길을 달리는 동안 수학여행을 각자 평가하고 그 의미들을 되새겨보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이 있은 뒤 못 다한 음악이 흐르고 술이 자꾸만 뒤로 가더니 100점의 팡파래가 울리면 만원을 벌금하는 풍습이 시작되더니만 급기야는 노래 한곡 신청에 만원을 받는 악덕 고리업자(장정X, 이명X)의 등장으로 막히는 도로사정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원주, 문막, 여주, 이천을 거쳐 용인에 들어서고 마지막으로 차에 조명이 들어오며 관광춤판이 동수원 IC에 다다를 때까지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차가 권선동 은미정식당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쯤 시계는 8시 30분을 가리키고 그 긴 여정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무사히 다녀오기까지 준비로 수고하신 최금자, 이은숙, 박정옥, 윤정옥어머님들과 특히 점심식사를 사주신 한상금동창회장님과 금일봉을 전해주신 참가 졸업선배님들과 아침 출발장소에 직접 전송 나와 맥주와 안주를 마련해 주신 조규용, 김도욱선생님과 고등반 최명숙, 박정옥어머님과 전날 봉투를 전해주신 신입생 어머님들과 음료수를 3박스나 희사해 주시고 하루를 함께 해주신 진대성사장님과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를 드리며 함께 떠나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원을 보내주신 재학생, 졸업생, 선생님들과 함께 했음을 감사드리며 무사하게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내년에도 더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기원을 해봅니다.
인사 드립니다 고등반에 제학중인 학생입니다 이제 처음 인사 드립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 저리지만 , 모두들 즐거운 시간들 보내셨다니 정말 다행 입니다 행여 비가 오지나 않을까, 비가와서 여행을 망치면 어쩌나 뒤에서 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비가 안 와서 좋은 여행이었다니 다행입니다 수고 하신 여러분께 같이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아~~~~~~~
정말 해를 거듭할수록 못간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게 하는 멋진 수학여행이군요~~~내년엔 어떤일이 있어도 꼬`~옥 동참하리라....긴글 멋지고 실감나게 써주신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함께 하신 선생님들께 죄송합니다. 참석하여 도우미역할 했어야 하는디....
염려 덕분으로 잘 다녀 왔습니다. 미녀군단들이 빠져서 조금 아쉬웠지만....
인사 드립니다 고등반에 제학중인 학생입니다 이제 처음 인사 드립니다. 예쁘게 봐 주세요...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 저리지만 , 모두들 즐거운 시간들 보내셨다니 정말 다행 입니다 행여 비가 오지나 않을까, 비가와서 여행을 망치면 어쩌나 뒤에서 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비가 안 와서 좋은 여행이었다니 다행입니다 수고 하신 여러분께 같이 감사드립니다...
읽어 내려가면서 아
감탄 다시 한번 그 자리 에 서 서 답사 를 하고 있는 느낌 이 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