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와 이틀간 여정을 마치고 나홀로 영광 불갑사와 주변 석탑을 만날 예정이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돌아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무리한 동선임에 틀림 없어 함평-나주에서 오늘 일정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용천사를 들렸다. 용천사는 꽃무릇 축제로 널리 회자되는 사찰이지만 답사매니아에게 크게 익숙한 절집은 아니다. 대웅전 오른편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샘에서 사찰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부도전이 먼저 반긴다. 7기 부도중 6개는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석종형으로 용천사 다른 유물과 편년이 동일하다. 입구 좌우 팔각석주는 루대의 누하석주로 보이지만 좌측 석주 정상에 '+'자형으로 홈대를 파 놓아 그 용도가 불분명하다.
용천사 창건과 사적을 전통사찰정보에서 가져왔다. "용천사는 함평 모악산에 자리한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전언에 의하면 백제시대 600년(무왕 1년)에 행은선사(幸恩禪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그런데 《조선사찰사료》에 수록된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보면 중국 당나라 현종 재위기간, 즉 712~756년 사이에 국행(國幸)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용천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고려시대 1275년(충렬왕 1년)에 각적(覺積)국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국사. 왕사 가운데 각적국사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진국사(覺眞國師)가 아닌 가 추정한다. 각진국사(1270~1355)는 현재 장성 백양사 출신의 승려로 1351년 왕사로 책봉되고 사후에 국사에 추증되었으며 송광사 16국사 중의 한 분으로 그의 영정은 국보 제 56호이다. 그러나 중건연대가 1275년이고, 각진국사의 출생연대가 1270년이어서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절이 폐허되었다가 1632년(인조 10년)에 법당을 새로 짓는 등 중창이 있었고, 1638년에 쌍연(雙衍) 개연(慨然)스님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그 뒤 건물이 퇴락되므로 1705년(숙종 31년)에 여러 스님과 시주들이 힘을 합해 절을 중건하고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청기를 지었다. 당시의 석등 등이 남아있다."
부도전을 지나 처음 만나는 전각이 사천왕문이다. 산지중정 용천사에서 가장 하위구역에 위치하며 오늘날 신종 인프렌쟈 1차 검역 공간이다.
가장 보편적인 사천왕 배치이다. 서방광목.북방 다문
북방 다문. 남방 증장
루대(전각명을 미쳐 확인 못했다). 누하진입을 하여 대웅전 중정으로 들어 간다.
근래에 불사한 대웅전. 대웅전 옆에 위치한 석등을 복원하여 대웅전 중정에 세웠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조선 후기 석등을 이건하였으면 고색짙은 느낌이 용천사 사격과 조화를 이루었을 것 같다. 만약에 나에게 감독 자격이 주어졌다면 대웅전 기단도 정연한 장방형 석재보다는 허튼돌 막쌓기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건 멋진 대웅전 소맷돌을 보면 금방 수긍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소맷돌 옆에는 장방형 장대석 바른쌓기로 기단을 조성했는지 여부는 내 주관에 아무른 영향을 미치치 못한다. 나는 느낌으로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보이는가? 돌계단 소맷돌의 연꽃이... 용천사 꽃무릇 축제에 가시거든 이계단도 한 번 올라보세요.
소맷돌 연꽃 줄기와 꽃봉오리
1685년 무렵의 석등 조성 연대와 같이 추정한다.
보궁형 닫집. 대웅전 목조아미타불 좌상. 17~18세기경 불상으로 추정한다. 나발. 육계. 전면의 계주가 보인다. 삼도를 표현하고, 법의는 통견이며 승각기도 보인다. 대웅전 현판과 달리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인 머리를 앞으로 숙인 주존은 아마타 수인의 아미타불이다.
대웅전 좌우에는 요사와 지장전이 마주 보고 있다. 지장전 괘불대. 본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대웅전 앞에 두지 않은 이유도 궁금하다. 마모가 심하여 잘 판독되지 않으나 조성연대는 석등 조성 3년후 1688년으로 시주자 이름도 음각되어 있다고 한다.
용천사 석등. 팔각기둥, 팔각 상대석에는 연꽃이 피어있다. 사각 화사석에는 둥글게 화창을 열었다. 지붕돌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두텁고 투박하다.
하대석에도 연꽃이 피어 있고, 간주석을 받치는 초석 모서리에는 거북이 돋을새김되어 있어 단지 미감으로 조성한 것인지 그 상징성이 궁금하다. 팍각 간주에 새겨진 명문으로 석등은 조선 숙종 11년(1685)에 불을 밝혔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새로 조성한 석등을 옮기고 이 석등을 대웅전 중정 앞에 세웠으면 한다.
삼층 석탑. 안태 고향은 불명이며 석등과 나란히 서 있다. 기단부의 매몰로 원형 추정이 곤란하다. 몸돌과 옥개석은 각각의 돌이며 세개 모두 갖추고 있다. 2층 부터 체감이 보이며 옥개석 층급 받침은 2단이다.
옥개석 층급 받침의 략화, 두껍고 급경사인 낙수면, 상륜부의 길쭉한 보주 등이 편년이 떨어진 모습으로 석등 조성 연대와 같은 조선조 후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꽃무릇 축제 소개글을 가져오니 님들 답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꽃무릇 큰잔치...출처/용천사 홈페이지 때 : 9월 중순
곳 :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용천사 주변 목적 : 그윽한 산사와 꽃무릇의 향기가 어우러진 한마당 축제!!! 매년 9월이면 산사와 꽃무릇을 조화시켜 자연의 신비를 배우는 꽃무릇 큰잔치가 광암리 꽃무릇 공원에서 열린다. 농촌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조롱박 터널과 조, 수수, 메밀 등으로 옛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내용면으로는 자연생태학습장과 문화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 하였고, 각종 이벤트 행사를 개최하여 관광객들에게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행사장은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도록 하여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꽃무릇공원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100여종의 야생화와 꽃무릇(석산화)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용천사주변 일대에 조성된 공원입니다. 이곳은 광주광역시에서 30km(50분 소요) 거리에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자연생태의 보고입니다. 꽃무릇공원 관람은 해보면 광암리 마을 입구를 지나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과 현세를 구분하여 놓은 듯한 저수지 입구에서 시작한다.
꽃무릇을 상징하는 꽃무릇터널을 지나 저수지 뚝방에서 양옆을 바라보면 확연히 극락과 현세를 구분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시원한 물이 넘실거리는 저수지와 뚝방에 봄에는 파란 쑥과 송편의 주재료인 모시 잎이 노랗게 시들어져있는 꽃무릇 잎의 넋을 위로하고 있으며, 8월말에서 9월이 되면 빨간 꽃무릇의 그 화려함으로 온 세상을 점령하고 만다. 불게 물든 저수지 뚝방을 건너 타원형의 신선교가 또 다른 자연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 첫 번째로 일명 백수문이라고도 하는 천자문이 기록된 움막집을 만난다. 한문을 접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는 선인들의 얼을 어른들에게는 엄숙함을 느낄 수 있으며 진한 나무향이 그윽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천사사에는 고개 숙이는 문을 지나 겸허의 문과 허심문이 있다. 가을날에 빨간 감과 쑥부쟁이가 어우러진 감나무 터널, 머루와 조롱박, 수세미가 주렁주렁한 산머루 터널, 오이, 꽃호박이 푸짐하게 열려있는 대나무 터널은 콘크리트 사이에서 자연을 배우는 어린이들에게는 자연생태체험장으로 가는 입구, 어느문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다양한 모양으로 이루어진 화단에서 사계절 푸른 춘란을 비롯하여 패랭이, 초롱꽃, 꽃창포, 벌개미취, 산매발톱, 금낭화, 구절초, 쑥부쟁이 등 다양한 한국의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야생화를 앉아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원두막을 볼 수 있다. 원두막마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여 단지 앉아서 쉬는 것 뿐 아니라 정서적 위로를 주는 원두막에서의 하루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꽃무릇과 야생화가 있는 곳,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있는 곳 바로 그곳이 꽃무릇공원이다. 바쁜 시간 중에 한번쯤은 생활과 떨어져 나와 잠시 세상을 잊고 자연 속에 나를 실어보면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 2009.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