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인이 된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그의 노래 가사에서 “먼저 가본 저세상 ...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라고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없는 화두를 던졌다.
사후(死後) 세상을 사자(死者)에게 물어보아야 의미 없는 물음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데, 왜 그는 이런 물음의 노래 가사를 통해 화두를 던졌을까?
언제나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다 안다. 죽은 자의 시체에게 어떤 말을 걸더라도 죽은 자가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가 아닌가?
그런데 나훈아처럼 산 자는 죽은 자에게 “먼저 가본 저세상 ... 천국이 있던가요 테스형” 들을 수 없는 화두가 산 자가 살아가면서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답을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한 화두가 아닐지 싶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랑하는 고인(故人)이 하늘에 갔다고 하며, 그 하늘에서 땅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죽은 자가 산 자에 대해서 무엇을 하거나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죽은 자에게 차려진 음식은 언제나 산 자가 먹거나 버려지지, 죽은 자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말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산 자가 행하는 것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왜 죽은 자는 산 자가 행하는 것을 행할 수 없는가? 인간의 시초로 돌아가 보자. 인간 시초에 알려 주는 한 고대 문서는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 졌다고(창세기 2:7) 한다.
그리고 그 흙으로 만들어 진 사람에게 조물주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한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그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창세기 2:16,17)
그렇지만 첫 인간 남녀는 그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 그러나 조물주는 그가 경고한 대로 심판을 집행하는 선고를 하였는데, “결국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네가 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고(창세기 3:19) 했다.
이 문서에 의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본래 인간이 만들어진 재료인 땅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죽음이란 인간이 존재하기 전, 생명이 없었던 무생명체가 된다는 의미이다. 죽음은 인간이 본래 재료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하늘에 갈 수 없는 것은 이 문서는 “네가 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라고 한다. 그리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인간이 죽어서 갈 곳은 본래 인간의 재료인 흙에 합쳐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가본 저세상...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이라는 화두는 죽은 자가 답 할래야 답할 수 없는 것이며 죽은 자는 하늘에 있지도,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식, 무생명일 뿐이다.
그래서 고대 이 문서에 나오는 창조주를 경외하였던 솔로몬 왕은 죽은 자에 대해 “살아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자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모두 잊혀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도 미움도 질투도 이미 사라졌고, 해 아래서 행해지는 일에서 더 이상 그들의 몫이 없구나. 가서, 즐겁게 음식을 먹고 흥겨운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이미 참하느님께서 네가 하는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항상 흰옷을 입고, 언제나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그분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헛된 삶을 사는 모든 날 동안, 너의 헛된 모든 날 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인생을 즐겨라. 그것이 인생에서, 해 아래서 애쓰며 수고한 일에서 받는 몫이다. 손에 닿는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해 하여라. 네가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전도서 9:4-10
그러므로 유한한 인간의 삶의 시간에서 인간에게 필시 오고 마는 생명의 끝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의료술을 다 동원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다 동원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권력을 다 동원한다 하더라도, 그 생명을 계속 있게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진리를 직시해야 하는 것을 우리 산자가 유념해야 한다.
솔로몬 왕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삶을 추천하였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그것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전도서 7:1,2
솔로몬은 왜 이러한 삶을 추천하였는가? 태어나는 날은 그가 어떤 이름을 남길지 정해진 것이 없지만, 죽는 날에 그의 평생 행한 일 돌이킬 수 없는 삶의 기록으로 창조주 앞에 그의 이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이 좋은 이름으로 자취를 남겼다면, 생명의 근원이신 분에게 호의적 대우를 받지 않겠는가?
분명한 것은 죽는 날이 모든 사람의 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저세상의 삶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이 문서가 제시하는 “그 희망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다.(사도행전 2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