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배우 김보성은 ‘으리(의리)’를 주제로 내세운 팔도식품의 ‘비락식혜’ 광고 모델로 출연해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탄산도 카페인도 색소도 없다. 우리 몸에 대한 으리(의리)’ ‘전통의 맛이 담긴 항아으리(항아리). 그래 신토부으리(신토불이)’ ‘엄마 아빠 동생도 으리(의리). 으리(우리)집 으리(우리) 음료’.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배우 김보성을 모델로 내세운 팔도식품의 ‘비락식혜’ 광고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5월 7일 유튜브에 선보인 이 광고는 3일 만에 150만 조회수를 돌파한데 이어 일주일 만에 조회수 200만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광고가 공개된 5월 7일을 기점으로 전후 5일 동안 편의점 CU의 전국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편의점에서 많이 팔리는 비락식혜 캔제품의 경우 매출신장률이 69.2%, 컵제품은 63%를 기록했다.
이밖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된 비락식혜 매출은 48.3% 증가했고 롯데수퍼도 21%나 증가 추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리’ 내세운 광고 폭발적 인기
‘우리 몸에 대한 의리’를 주제로 한 이 광고는 ‘신토부으리’ ‘아메으리카노’ ‘마무으리’ 등 ‘의리’를 ‘으리’로 변형한 언어유희 형태의 광고문구와 ‘으리’ 시리즈를 유행시킨 주인공 김보성의 진지함을 가장한 과장된 남성성 연기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사실 의리(義理)는 한국인과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있어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이다. 일반적으로 의리라고 하면 한 번 맺은 사람과의 관계를 변함없이 잘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의리에 산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 같은 액션영화가 1970년대에 제작됐고 홍콩 영화 ‘외팔이’의 제목을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로 바꾸어 극장간판에 건 게 한국 사람들이다.
조폭이 아니라도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를 평생의 좌우명이나 블로그 제목으로 삼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리가 지켜지는 범위가 향응을 제공받거나 혜택을 입은 친척, 지인, 고향 선후배, 학교 선후배 등의 이해관계자로 국한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친구가 차를 몰고 가다 과속을 해서 사람을 치었는데 당신은 그 차에 동승하고 있었다. 유일한 증인인 당신이 과속 사실을 숨기면 친구는 가벼운 처벌만 받게 되나 사실대로 얘기한다면 큰 벌을 받게 된다. 당신은 친구를 위해 법정에서 당시 그가 과속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용의가 있는가?’ 네덜란드의 비교문화경영학자 폰스 트롬페나스 박사는 위와 같은 딜레마 상황을 설정하고 글로벌 기업의 지사에서 근무하는 40여 개국 매니저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무리 친구라 하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비율이 캐나다 사람들은 96%에 이르렀다. 미국·영국·서독도 90%를 넘었다. 이와 달리 프랑스·일본·싱가포르 등은 60%대, 중국·인도네시아·러시아가 40%대를 기록했다. 한국은 26%에 불과했다. 38개 조사대상 국가 중 꼴찌였다. 이 자료는 1993년 처음 발표된 뒤 몇 번 갱신되었지만 한국의 순위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은 전국의 식당을 돌아다니며 직접 시식하고 종업원들의 서비스, 인테리어, 위생상태 등을 종합 관찰하여 식당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식도락 전문 칼럼니스트다. 어느 날 절친한 고향 친구가 전 재산을 투자해 식당을 개업했으니 식당에 와서 음식 맛을 보고 우호적인 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런데 친구의 식당을 방문해 막상 경험해 보니 거의 모든 평가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친구는 홍보성 기사를 써달라고 채근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트롬페나스 박사의 두 번째 질문에 ‘친구의 사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문제가 많은 그 식당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핀란드(75%)였고 다음이 스위스(71%), 캐나다·호주(69%) 순이었다. 이와 달리 러시아·한국·폴란드는 40%를 기록했고 세르비아는 24%였다. 응답율이 낮을수록 ‘비록 사실이 아니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돕기 위해서 우호적인 기사를 작성할 용의가 있음’을 의미한다.
트롬페나스 박사의 연구 결과는 국가별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화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차이를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캐나다·핀란드·미국·영국·서독 같은 나라에서는 ‘보편주의 문화’가, 한국·중국·인도네시아·러시아·세르비아 같은 국가에서는 ‘특수주의 문화’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문화에선 규칙과 규범이 사회를 지배하며 사회구성원들은 규칙과 규범의 준수에 익숙하고 그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런 사회에서는 규칙과 규범이 인간관계와 개별적 상황에 우선한다.
이에 비해 특수주의 문화란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상황이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문화적 특성을 말한다. 이 문화가 우세한 국가에서는 가령 범죄자는 처벌을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사람이 친척이거나 친한 친구인 경우에는 원칙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과의 친밀도에 따라 판단기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위증을 해서는 안되지만 어떻게 친한 친구 일인데 사실 대로 말한단 말인가?”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다.
한국은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의리가 중요한 ‘정(情)의 사회’다. 규칙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규칙과 약속을 과감하게 왜곡하고, 적절히 변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규칙대로 하거나 원칙을 너무 강조하면 살아가기 힘들다. ‘벽창호’이거나 ‘고지식한 사람’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통하기 쉽다. 이런 온정주의가 어쩌면 초고속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서로 의기가 투합하기만 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야근도 불사하고, 주말도 반납하며, 공기를 단축시키고, 해외 오지시장을 개척한다. 의리를 중시하는 이러한 정(情)의 문화가 유럽이 150년에 걸쳐서 이룬 근대화를 20~30년 만에 이뤄내는 결정적인 추진력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자 한국을 본받고자 하는 국가들을 거느린 선도국가가 되었다. 의리와 정(情)은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이었지만 달성한 경제적 성과를 유지하고 국가와 사회를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기 어렵다.
고속 성장을 위해 그동안 희생해 왔던 규칙 준수, 안전 우선, 책임 완수 등의 가치를 되찾아야 할 때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을 바라보는 단계에 진입했음에도 규칙보다는 인간관계를 앞세우고, 규범보다 정(情)을 우위에 두는 온정주의를 고집하다가는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참사를 피하기 어렵다.
규칙·규범 vs 인간관계·개별 상황
이번 참사는 법령과 규정이 없어서, 전담 기구와 인력이 없어서, 감독기관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와 관련된 모든 기관에 규정대로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인재(人災)였다. 아마도 사고와 관련된 기관의 관계자들은 세월호와 청해진해운 임직원,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일가와의 의리를 지켰을 것이다.
감독하고 감시해야 할 관계기관의 담당자들도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규정에 어긋나는 사실을 눈감아 줬을지 모른다. 의리보다는 원칙에 충실한 공직자, 앞뒤가 꽉 막힌 벽창호 같은 공직자, 편법이 통하지 않는 공직자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첫댓글 결국 콘트롤타워가 없다보니 중구난방,오합지졸이 만든작품이 한국을 이끌어가고있다.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점을 꺼내지만 말고 하나씩 이라도 고쳐가는 문화를 만들어야겠다 ~ 기흥아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