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이가을에는 한번
읊퍼야 할것같은 詩
목마와숙녀
박인환
(1)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내가 잠시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 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2) 세월은 가고 오는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 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ㅡ 등대에 ㅡ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 하여야 하다
모든것이 죽든 떠나든
그저 가슴속에 남은 희미한 기억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이야기 하여야 한다
두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3)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궛전에 짤랑 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