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월성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시설` 증설 작업을 위해 지난 1년간 공론화 작업을 주도해 온 현직 교수가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지난해 5월 산자부가 `사용후 핵연료 관리 정책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등을 배제한 채 변호사, 대학교수 등을 추천해 "재검토위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한 마디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규정에만 따르는 재검토위로는 사회적 동의가 필요한 `맥스터`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맥스터 사업에 울산 북구 주민들의 의견 반영을 요구해 최근 한 시민단체가 증설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것도 이런 결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정화 재검토위 위원장이 대표성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듯이 맥스터 증설 문제는 당초부터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고 위험 물질을 땅 밑에 매장하려면 그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지역 주민들의 찬반의견을 확인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다 보면 찬반이 갈리고 이를 조율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온다. 또 만장일치는 아닐지라도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최종안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산자부 산하 재검토위는 지난해 11월 경주 시민들로만 구성된 지역실행 기구를 꾸려 지금까지 사업을 추진해 왔다.
울산시 북구는 사실상 월성원전 최대 피해 가능지역이다. 월성 원전이 소재한 경주시 양북면 인구는 4천500여명에 불과하지만 북구는 약 22만 명이다. 따라서 만일 월성원전 안전에 이상이 발생하면 울산 북구가 인근지역에서 최대 피해지역이 되는 셈이다.
지난달 원자력안전연구소 한병섭 박사가 한 학술회에서 "원전 사고로 경주에서 사망자 10명이 발생할 때 울산에서 100명의 중상자가 발생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원자력 안전법에 따라 양북면이 원전으로부터 반경 5㎞ 안에 있어 같은 행정지역인 경주시 전체가 원전 관련 의견수렴 대상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반면 울산 북구는 8㎞ 떨어져 있는데다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실제 피해 가능성은 내팽개쳐 두고 관련법 문구에만 매달려 판정을 내린 결과다.
최근 울산 북구 시민단체가 주관한 월성원전 매스터 증설 찬반 투표에서 참여자 약 95%가 건설에 반대했다. 그들이 이렇게 반대한 주요 이유는 증설 그 자체라기보다 원전피해 최대 가능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이 그대로 존재하는 한 북구 주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산자부, 재검토위, 한수원은 현 상태에서 꼼짝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관련법을 개정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수밖에 없다. 마침 재검토위 위원장까지 대표성 부족을 인정한 만큼 지역 국회의원들이 차제에 원자력 안전법을 고쳐 피해 예방지역에 울산 북구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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