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8]아름다운 사람(29)-나는 미국인-한국인 "반반"
잘 안알려졌지만, 전주 전라고에서 1976년 서울대 체육대학을 입학한 친구가 유일하게 한 명 있었다. 아마도 우리 동기 중 S대를 현역입학한 친구는 유일한 듯하다. 담임샘은 그런 제자가 자랑스러워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교장에게서 점심까지 얻어먹었으니. 그런 그가 2학년을 마친 후 군 제대 무렵 가족 전체가 미국 이민을 갔다. 그도 중퇴를 하고 LA로 날랐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2008년쯤 사업가가 되어 고국에 나타났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교회커뮤니티에서 경기도 송탄 출신 한국여인을 평생짝꿍으로 만나 가족을 이뤘다. 젊은 그들은 의류사업에 힘을 합쳤고, 체인점이 마구 늘어나 30여개 이를 정도로 성공을 했다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수 년 전, 그가 임실 옥정호 근처 아파트에 둥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근처 유일무이한 아파트 ‘애드가歌’, 지금은 구입하고 싶어도 어렵다던가. 선견지명이 있었다.
휴스톤으로 거처를 옮기며 주택분양사업을 하여 재미가 쏠쏠한데도 육십을 넘어서자 심드렁해져 딸부부에게 인계를 했다. 양주(부부)가 자동차로 미국 대륙을 종주하고, 크루즈로 알래스카 지역을 여행했다. 지난해 겨울엔 남미지역을 45일 정도 돈 후 얼마 전 임실 옥정호 둥지로 다시 돌아왔다. 향후에는 휴스톤에서 반 년, 한국(임실)에서 반 년을 살 작정이라며, 틈틈이 고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김제 용지면이 고향인데, 고교 동창 중 ‘고향 한동네’ 꾀복쟁이 친구가 경찰로 정년퇴직하여 자주 만날 수 있으니 어찌 살맛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 유명한 ‘3학년 2반’ 친구들이 임실과 남원에 열 손가락 가까이 사니 해피한 일이다.
그를 ‘아름다운 사람’ 29번째 주인공으로 모시는 까닭은 이렇다. 10년도 더 전에 그 유명한 ‘3학년 2반’ 담임샘(이상진)을 만난 자리에서 지갑을 탈탈 털어 선생님께 드렸다한다(샘으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500달러). 두어 달 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을 전후로 ‘샘’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것. 불감청고소원. 가깝게 사는 친구들을 부르니 7명. 그중 변호사 친구가 공교롭게 미국여행을 떠나 대타로 샘을 잘 아는 ‘3학년 1반’친구를 초대한 후, 형수들도 끼면 좋겠다해 10명으로 늘렸다. 형수들의 불참으로 짬짬했는데, 멀리 서울 하고도 일산에서 ktx로 오겠다는 친구가 있어, 얼김에 대전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하니 ‘얼씨구’ 10명이 모여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점심값을 ‘독식’하겠다한다. 별 수 없이 우리들은 별도로 선생님께 작은 성의를 표했다. 다음날, 선생님이 이 친구가 별도의 봉투를 내미는데 300달러가 들어있었다며 어쩔 줄 몰라하며 전화번호를 물어오셨다. 아무튼, 이 친구도 나 못지않게 담임샘을 평소 존경하고 잊지 못한 것같다. 그러기에 10여년 전에도 ‘금일봉’을 드리더니, 엊그제에도 샘이 부담될 정도로 촌성寸誠을 표시했으리라. 그러나 솔직히 이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흔치 않은 ‘미담美談’일 터. 제자가 샘께 촌지寸志를 드렸다해 ‘아름답다’는 게 아니다. 이 친구는 말수도 상당히 적고 늘 온화한 표정으로, 누가 봐도 ‘법 없이도 살 친구’였는데(형수도 부창부수이다), 50년 가까이도 고교때 성품이 ‘1도’ 변하지 않은 것같다. 먼 이역만리에서 순전히 영어english로만 살았을텐데, 참 용하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이제껏 허허로움을 고국에서 친구들과 맘껏 풀어제쳤으면 좋겠다.
2008년 6월 잠깐 귀국때 이 부부가 동기동창 야유회에 참석, 설악산-하조대 등을 같이 둘러보는 귀한 시간이 있었다. 이 친구의 부인(형수)를 본명으로 호명하니 형수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좋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미국에서는 ‘미세스 황’이라고 부르므로, 자기의 본명(박미라)을 까먹을 정도였다는데, 몇 년만에 들어보는 자기 이름이냐는 것이었다. 이제 타국의 사업에서 벗어나(월말 딸부부로부터 실적 보고만 받는다나), 운명공동체인 ‘양주兩主’가 고국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조금 따분하면 동남아여행을 해도 되고, 조금 지겨우면 가까운 고교친구들과 자리를 하면 된다. 이보다 더 좋은 ‘인생2막’이 어디 쉬운가? 고교시절 좋은 영향을 주신 담임샘을 모신 식사자리는 또 얼마나 귀한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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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고6회 동창회 | [작호기作號記]황의찬(3학년 2반) 친구의 호는 휴암休岩 - Daum 카페
아버지든 어머니든 모시고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 친구의 노부에게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얼마쯤 용돈을 드리는 여유도 있다. 그러면 됐지, 더 무엇이 부러울 것인가?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미국인’이 되어 휴스톤으로 돌아가 귀여운 손자손녀와 좋은 추억도 쌓으리라. 한 친구가 생각지 않은 호를 지어줬다. 휴스톤을 한자漢字로 어떻게 쓰는 지 모르지만, 친구는 ‘쉴 휴休’자와 임실 운암雲巖의 ‘암岩’를 조합해 ‘휴암休岩’으로 지었다며 작호기를 보내와 더욱 기뻤다. 그렇다. 나의 고국에서 죽을 때까지, 우리 부부는 힐링을 하면서 제2의 삶을 조용히, 착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본다. 나의 이름은 의리(義)로 빛나는(燦). 황의찬이다. 나를 언제나 스스럼없이 반겨 주는 친구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