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열 열사 6주기 추모사
애국지사 최현열 선생님!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마르고 큰 키, 선한 눈매의 최현열 선생님!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젊은 사람들이 애쓴다. 좋은 일 한다. 광주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물어서 찾아왔다”던 최현열 선생님!
나는 “나이 들어 젊은 사람들처럼 할 수 없지만,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달라.”던 최현열 선생님!
온갖 설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선친의 뜻과 기개를 간직하며 평생을 나라 사랑 한마음으로 살아오신 최현열 선생님!
노령연금과 노인 일자리로 번 돈을 아끼고 아껴서 기꺼이 내어놓으셨던 최현열 선생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재판이 있는 날엔 법정을 찾아 “일본의 사죄를 하루빨리 받아야 할 텐데” 하시며 누구보다 할머니들을 걱정하고 응원해주셨던 최현열 선생님!
억울하고 분해도 찍소리 한번 못 내고 살았던 가슴 맺힌 한과 고독을 달래려고, 칠십이 넘어서 시를 쓰셨다며 수줍게 말하던 최현열 선생님!
직접 쓰신 시를 들고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음을 담아 낭송해주셨던 최현열 선생님!
‘일본이 자기들의 잘못을 빨리 뉘우쳐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다정한 이웃으로 살면 얼마나 좋겠냐’던 최현열 선생님!
‘우리도 이제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 말할 수 있는 입, 생각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두렵냐’던 최현열 선생님!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말로만 애국, 애국, 천 번 만 번 떠벌이면 무슨 소용이 있냐’던 최현열 선생님!
‘바른 역사 찾기 위해서는 싸울 줄도 알아야 하고, 죽을 줄도 알아야 한다’던 최현열 선생님!
죽음은 삶을 의미한다며 당신 목숨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던 최현열 선생님!
끝내 유서를 쓰고 당신의 몸에 뿌릴 시너를 사고, 행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까 봐 가슴에 댈 솜까지 준비하셨던 최현열 선생님!
‘광복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해결된 것이 없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정에 보고만 있으려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광주에서 서울 수요시위 현장까지 찾았다’는 최현열 선생님!
긴 세월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팔순의 연세에 당신의 몸을 불살라 ‘친일 청산’, ‘과거사 문제 해결’을 외치셨던 최현열 선생님!
지금도 최현열 선생님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멥니다.
어리석게도 선생님이 떠나신 후에야 그 깊은 뜻과 고뇌를 알다니요!
그래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생님을 떠나보내고 말았지만, 선생님께서 분신 항거로써 무거운 경종을 울린 뜻을 지금까지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면 무엇인들 못 해내겠냐’는 말씀, ‘바람개비를 만들었으면 바람이 불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힘차게 달리라’고 하신 말씀 또한 새기고 새겨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애국지사 최현열 선생님!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6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선생님께서 남기신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호소문과 ‘나라 사랑’ 시를 보며 선생님을 그립니다. 선생님께서 바라고 바랐던 진정한 해방 세상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비록 아직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다 이루지 못했지만, 반드시 친일 과거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고 말겠다고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3년이 다 되도록 판결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큰소리치는 전범기업과, 적반하장 수출규제로 대응하며 털끝만큼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를 반드시 무릎 꿇고 사죄하게 만들겠다고요.
그러니 최현열 선생님! 그때까지 그 선한 눈매, 다정한 미소로 저희들을 지켜봐주십시오. 그리고 편히 쉬십시오.
2021년 8월 21일
안영숙 공동대표(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진제공해 주신 <광주in> 예제하 기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