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의 여정 그리고 만남
행15.36-16~15
시 작 기 도
아침에 그리고 밤에 그리고 하루 내애 주님의 사랑과 성실하심을 내게 보이소서. 주님의 사랑과 성실을 바라보고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본 문 내 용
(예루살렘 교회의 편지를 전달하고 격려한 이후)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자신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파한 도시들로 가서 어떻게 지내는 지 살피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 요한도 데리고 가자고 했고 바울은 자기들을 도중에 버리고 함께 사역하지 않은 사람을 데려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그 둘은 심하게 다투었고,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구브로)섬으로 배를 타고 갔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신도들로부터 주님의 은혜의 역사에 추천을 받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돌아다니면 모든 교회들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고 거기서 디모데를 만나 자기와 함께 사역하기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믿음 있는 유대인 모친과 그리스 사람의 혼혈이었기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부친이 그리스 사람인 것을 다 알고 있는 그 지역의 유대인들을 생각해서 한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 교회 사도와 장로들의 그 편지에서 정한 규정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교회들은 믿음이 튼튼해지고 수가 늘어갔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여러 지방을 거쳐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자, 그들은 드로아(소아시아 서쪽 항구)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밤에 바울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케도니아(마게도냐) 사람이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며 간청하였습니다. 그 환상을 통해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네압볼리를 통해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 로마식민지이자 으뜸도시였습니다.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가서 기도하는 처소로 가서 모인 여성들에게 말을 하였고, 그 중에는 두아디라 출신의 자색옷감 장수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인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서 바울의 말에 집주하게 하셨고, 그녀의 온 집안이 침례를 받고 바울을 간청하여 자기의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해 설
1차 전도여행에 갔던 교회들을 다시 둘러 살피는 것으로 2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3-4년 정도(AD48또는49~51) 수많은 지역을 다니게 되는 사역의 여정입니다. 바울 일행이 모두 감당할 수 없으므로 바나바와 마가 요한은 키프로스(구브로)으로 향하도록 섭리하시고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벧전1.1)을 사역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사역에 맞는 새 사람(실라와 누가)도 동참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 있어서 주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섭리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다윗의 장막’의 회복으로 분별한 이방인들에 대한 신앙과 예배에 관한 결정문을 모든 교회에 전파한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이 주께 나아와 주님을 찾고 만나고 예배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보냈다는 주님의 목적을 볼 수 있습니다. 루디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주님을 찾는 이방인으로서 정한 날 안식일에 기도하는 곳에서 주님을 찾고 있었고 주님이 바울을 통해서 만나주시고 생며의 길,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이 과정 중 특별한 것은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사람을 만나게하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신 것과, 기도처소로 나온 여인과 바울의 만남을 통해서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그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은 본문에서 만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 마케도니아 사람과 ‘만남’으로 인도하시고, 루디아와 바울이 기도처소에서 ‘만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하나님의 쌍방으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부르심’과 ‘만남’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길이 열려 가고 있습니다. 그 만남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셨습니다(유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디모데 할례행함). 양쪽 모두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15장40절)의 길을 떠났고 기도하러 성문 밖 강가로 갔습니다(16장13절) 어느 한 쪽이라도 길을 가지 않았으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실 때 길을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길고 험하고 오래 걸려도 그 길에 주님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초청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끝의 모든 사람들아 나에게로 돌이켜 나아와 구원을 받으라. 이것을 옛적부터 알려왔었다(15장18절, 이사야45장21~22절 인용).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길을 떠나고, 하나님을 찾아 길을 나섭시다. 주님의 마음에 있는 놀라운 것을 기록해 놓은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간에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만나주실 것입니다. 아멘.
나 의 묵 상
주님을 추구하고 찾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전달자로서의 은혜의 여정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알지도 못했고 더욱이 주님의 마음이 담긴 메시지를 전할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찾지도 않고 그 결과 부르심에도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무슨 신자입니까? 성경과 기도와 예배모임이 왜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보내신 성령이 오셔서 내 마음에 주님을 향한 갈망을 부어주시고 경외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여정에도 이미 부르셨습니다. 이제 길을 떠나면 됩니다. 언제나 주님의 마음을 향한 길부터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실 때 주님의 편지를 들고 전하는 여행을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한치의 오차도 없음에 감사하며 안식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기다림에 기대를 품고 섭니다.
기 도
기도하며 주님을 찾게 하소서. 기도 가운데 주님의 마음과 뜻을 구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찾게 하소서. 찾는 그들에게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주님이 인도하셔서 만나게 하시고 그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게 하소서.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