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담아 들어라. 상대방이 필요 없을 때, 그대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런 사랑은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필요, 요구, 욕망을 초월한 사랑이야말로 매우 포근한 나눔, 깊은 이해가 된다. 그대가 자신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그날로부터 그대는 인류 전체를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그대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 그대는 그들이 비실재의 자기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자신들의 불행을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퍼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대는 자신의 사랑으로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비실재의 자기를 없애버리도록 도와줄 수 있게 된다.
나는 오직 하나의 선물에 대해서만 안다. 진정한 사랑은 그대에게 오직 한 가지만 선사해줄 수 있다. 즉,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자기’가 상상 속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이러한 자각은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준다. 무아無我의 존재 둘은 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에고의 존재 둘은 둘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둘은 둘이 될 수 없다. 그런 둘은 함께 녹아서 합쳐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하나가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곳에 앉아서... 모두가 에고의 존재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그 수를 셀 수 있다. 하지만 이따금 나는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대 역시 여러 번 보게 될 수 있다. 갑자기 완전한 침묵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그대는 이곳에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셀 수 없게 된다. 오직 하나의 깨어있는 의식, 하나의 침묵, 하나의 무無, 하나의 무아無我가 있을 뿐이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만 두 사람은 끝없는 환희 안에서 살아갈 수 있고, 집단은 놀라운 조화로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인류 전체가 크나큰 은총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 오쇼의 <네멋대로 살아라> 중에서
첫댓글 내가 여기 있으면서도 여기있는 것을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습관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다. 앞의 단풍나무를 보고서도 아름답다라고 하면 될 것을 아름다운 것 같아요식으로 자신의 느낀 것을 마치 타인이 느낀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존감과 자주성이 결여된 언어습관이다. 위의 오쇼의 이야기도 같은 형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고마워요..
가장 소중하게 간직 하고픈 받은 선물
하지만 소장하는게 쉽지않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