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6일 묵상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13절 - 22절 - 복음에 연합되어 의를 위한 고난이 하늘의 생명과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임을 경험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현충일을 맞아 조금은 여유 있는 아침을 시작합니다.
가끔씩 주어지는 주중의 휴일이 육신으로는 기분 좋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를 망각하면 그 모든 것도 불평과 불만으로 바뀌게 됨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따라 오늘도 감사하며 사는 자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채우는 것보다 더 평안과 소망을 얻게 합니다.
참 된 가치를 따라 오늘도 주와 함께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본문 해설
베드로는 성도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성도들을 해하겠냐고 반문하는데 이는 선을 행하는 성도들에게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닌 그들의 도덕성이나 영적생명을 훼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음을 선포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고난의 상황을 근심하지 말고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권면한다.
또한 성도의 마음에 있는 하늘의 소망을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며 온유와 두려움으로(논쟁하지 말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선한 양심은 성령으로 새롭게 된 성도들이 가지는 도덕적 자각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성도들의 선한 양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자신들이 비방하는 일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제시한다.
또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의 모습임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단번에 죽으시고 의인으로써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것은 성도를 하나님 앞에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음을 말하면서 선을 위한 고난이 의미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며 영으로 음부에 가서 악한 영들에게 부활하심을 선포함으로써 사단과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음을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 노아가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복종하지 않던 자들로써 하나님을 거부한 모든 악한 영과 불신자들을 의미 한다.
그래서 방주에서 물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은 자가 노아의 가족 8명뿐이었음을 말한다.
이렇게 물은 심판의 도구가 되었지만 또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성도를 구원하는 표로 바뀌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례임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복음에 연합되어 겪는 고난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영광을 경험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는 물세례가 단순히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을 말하지 않고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서약임을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해 고난 받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복종하는 주권자가 되셨음을 선포한다.
이는 성도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아도 그들을 궁극적으로 해할 자가 없음을 의미하며 또한 고난을 통해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 성도의 특권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베드로는 당시 고난을 받고 낙심한 성도들을 향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도로써 고난 받는 상황에 대한 절망을 가지지 말고 오히려 소망과 기대를 가지도록 권면한다.
성도가 고난 가운데 가지는 소망과 기대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복음에 속한 내용으로 십자가와 장사와 부활과 현현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도가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모습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자가 될 수 있으며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과 다른 구별된 자가 된다.
이것을 보고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성도들의 모습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구별됨을 묻는 자들에게 논쟁하지 않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해주라고 권면한다.
성도가 복음에 연합되어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에 연합됨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는 것이며 스스로 심판 당할 자임을 인정하고 주의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서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눌 때 복음에 연합된 삶의 열매를 맺게 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에 연합되면 성도는 세상의 가치에 마음을 두지 않게 만들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않게 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 속에서 은혜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감사가 지속되며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 가능하게 만든다.
베드로 사도가 당시 성도들에게 강조한 것은 바로 복음에 연합된 삶의 모습을 가지라는 것이었으며 이 모든 모습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임을 제시했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삶의 모습은 구약의 백성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11:24~29)
하늘의 가치와 능력을 아는 자는 땅의 가치와 능력에 무관심한 자가 되며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자가 된다.
또한 세상의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두려워하는 자가 아닌 세상을 향한 담대함을 가진 자가 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 하는 자로 살게 된다.
그래서 사도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도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이때 당시 공회원들은 협박하며 채찍질 했지만 사도들은 주의 이름을 위해 받는 고난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39~42)
오늘날 한국의 성도들은 과거의 사도들처럼 핍박받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비존재세력들로 인해 유혹당하고 정죄당하며 비난 받는 모습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때 역시 복음에 연합되어 주의 품에 거할 때 주변의 소리와 정죄의 소리에서 자유하게 되며 주의 품에서 안식하고 하늘에 대한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자가 된다.
때때로 나의 삶에도 이러한 핍박과 박해, 정죄와 유혹과 비난의 소리로 인해 절망하고 낙심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복음을 통해 주의 품에 거할 때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됨을 고백한다.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며 권능이고 축복이며 감사와 찬양의 이유가 됨을 고백한다.
오늘도 그 은혜를 따라 믿음의 길을 가며 복음에 연합된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속에서 복음에 연합된 삶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발견합니다.
복음에 연합되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자가 되고 그 안에서 생명과 능력과 소망과 힘을 얻고 누리는 자가 됨을 고백합니다.
그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고 주 안에서 얻는 생명의 풍요함을 경험케 하옵소서.
세상은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게 만듭니다.
사단의 유혹과 이끌림에 넘어갈 때마다 일깨워 주시고 다시 주께 나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물이 과거에는 심판의 도구가 되었지만 또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는 도구가 된 것처럼 고난이 심판의 도구이지만 또한 주 안에서 영광의 도구가 됨을 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세상과 다른 삶의 가치를 가지고 승리하는 자로 서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