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만과 신문고
정부나 권력자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기관은 어느 국가에서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행정조치와 관련한 불만을 심의하기 위해 두 명의 행정관을 임명하였고, 표트르 대제 시절 러시아에서는 검찰총장이 행정권한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의 신문고 제도는 조선시대 초기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형제의 피를 묻히고 등극한 임금에 의해 1401년(태종 1)부터 1883년(고종 20)까지 부침을 거듭하며 군주의 통치 방식과 시대 상황에 따라 그 활용이나 효용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신문고는 서울과 지방에 억울함이 있는 자가 호소할 수 있도록 하면서 태종~문종 대까지 활발히 운영되었으나, 그 이후로 격쟁(擊錚)의 이용과 함께 유명무실해졌다. 격쟁은 조선시대 일반 백성이 임금이 행차할 때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백성의 유일한 하소연 장이다.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신문고를 두드려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었던 신문고의 설치는 덕치와 민본이 결합한 백성을 위한 정치적 배려에서 나온 산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신문고는 형사법의 절차적 정의와 실체적 정의를 구현하고 국가와 사회, 개인으로부터 침해받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여 민생의 안정과 개인의 권리구제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옴부즈만보다 400여 년이나 앞선 제도이다.
이후 현대사에서는 신문고와 같은 맥락의 옴부즈만 제도는 1809년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개념을 스웨덴에서 공식적으로 제도화하여 정비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옴부즈만 제도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영국 및 캐나다로 퍼져나갔고, 1970년대 들어서는 여러 국가가 옴부즈만 제도를 법적 제도로 정착시켰다. 1990년대에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국가를 비롯하여 제삼 세계 국가들에서도 옴부즈만 제도가 받아들여졌다.
옴부즈만은 ‘수호자(defender of)’, ‘대변자(speaker of)’라는 뜻의 스웨덴어에서 유래되는데 일반적으로 ‘자신을 대신하여 행동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다른 사람이 권한을 부여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옴부즈만 제도는 행정소송 등 사법부를 통한 권리구제 방법의 경직성을 보완하고, 국민의 처지에서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고충 민원을 신속하고 간편하게 해결해 줄 구제방안이라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대통령 직속 기관인 행정쇄신 위원회 건의에 따라 관련 법이 제정되고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설치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 초기에는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현대화된 의미의 옴부즈만 제도가 시작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시행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시절인 2008년에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기존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의 기능을 통합하여 <국민권익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현재의 옴부즈만 제도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의 행정환경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증대되어 행정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행정의 양적증대와 질적 복잡화를 수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기관의 재량과 자의성을 증대시켜 필연적으로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행정기관의 행위로 인해 국민의 권익이 침해되거나 그 행위가 국민의 불만을 초래하는 경우, 가장 근원적이고 최종적인 권익 구제 수단은 행정소송을 통하게 된다. 그러나 행정소송 등 사법부를 거치게 되는 소송 과정은 일반적으로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기존의 권리구제제도는 처분에 대한 사후 구제가 원칙이고, 법률상의 권리나 이익이 있는 자만 청구권을 가지며, 권리구제의 주요 판단기준이 합법성 여부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반면 현대 행정국가에서 옴부즈만이 갖는 의미가 애초 옴부즈만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의 의미인 ‘의회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부처별, 지역별 옴부즈만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2009년부터 시행한 중소벤처기업부 옴부즈만 지원단의 ‘규제 애로 발굴 및 처리현황’을 보면 중기부 옴부즈만을 개소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발굴된 중소기업 관련 규제 애로사항은 총 22,607건이었고, 이 중 19,813건을 처리하였다.
유형별 처리현황을 보면 규제에 대한 민원인의 이해 부족으로 안내를 통해 시정된 경우가 47.7%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고, 규제 애로에 대한 관계부처의 제도개선(수용+일부 수용)이 이루어진 경우는 3,465건으로 전체의 17.5%에 불과했다. 한편 관계부처의 수용 불가 방침은 4,186건(21.1%)이었고 장기 검토가 필요하다는 경우도 2,283건(11.5%)에 달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자료에 의하면 3년간(2019~2021년)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권고를 받은 부처와 지자체 12곳 중 5곳이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개선 권고를 이행한 기관 7곳마저 개선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380일이나 걸렸으며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 최대 781일이 걸린 사례도 존재했다. 환경부의 경우에는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이 4년(1,460일)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의 옴부즈만 운영시스템은 여전히 홍보가 미흡하고 그 결과에 대한 공개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데 여전히 부처의 적당 편의, 관 중심의 소극 행정의 잔재물이다.
따라서 환경부는 기업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규제개선을 위해서라도 옴부즈만의 역할 강화와 그 결과에 대해 적극 행정을 통해 적절한 홍보와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옴부즈만을 거쳐 간 기업들의 중론이다.
신문고나 격쟁(擊錚)처럼 즉각적인 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의 하소연이 돌고 돌아 주무 부처 담당자에게서 예측된 답변으로 종결되는 것이 오늘날의 옴부즈만의 자화상이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