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 모인 가운데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기념식에는 2017년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었는데요, 이에 얽힌 기사들이 대부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라는 정치적 공방 속에서 비롯된 것들이지만 당시 야학과 시민노동운동을 펼치던 두 대학생의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이 영혼결혼식으로 이어지는 등 시민정신을 실천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젊은 대학생의 치열한 삶과 시민정신을 추모하는 의미도 있어 더욱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있습니다.
박기순은 전남여고를 졸업한 1976년 전남대 국사교육과에 입학해 사회과학서클 루사(RUSA)에서 활동했으며 광주 산수동 노인회관에서 '꼬두메 야학'을 운영,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시민운동을 실천하다가 시국사범으로 1978년 정학을 당합니다. 그해 7월23일 광천동 성당 교리실에서 들불야학을 창립했으며, 대학선배 윤상원을 설득하여 들불야학에 참여시켰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해 12월 26일 새벽 들불야학 운영에 대한 밤샘 토론 뒤 귀가해 자던 중 불의의 연탄가스 사고로 21살의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윤상원은 1971년 전남대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교련반대 시위를 하였으며 1978년 10월 노동운동의 길로 접어들어 들불야학 운영 경비를 조달하면서 박기순의 뒤를 이어 들불야학을 운영하였으며, 1980년 3월 노동자신문 대표이사인 이태복과 함께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하는 등 시민 노동운동을 추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때 시민군 대변인을 맡아 최후까지 계엄군과 대치하다가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사망하였습니다.
1982년 2월20일 광주 옛 망월동 5·18묘역에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추진했는데요, 그해 4월 그 추진 멤버들이 당시 광주에 거주하던 황석영 소설가의 집에 모여 ‘5·18민중항쟁’ 2주기 문화행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2월에 열린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모티브로 노래를 만들어 가족들에게도 선물하자”는 황 작가의 제안에 따라 김종률 작곡가 등이 노래극 ‘넋풀이’를 제작했고 그 음반에 수록된 7곡 중 1곡이 이처럼 유명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되었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곡이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사회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1981년 옥중에서 쓴 장시 ‘묏비나리’를 황석영 작가가 일부 수정 인용하여 작사한 것으로 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운명을 달리한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산자여 따르라는 뜨거운 다짐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담아 널리 불리어 지게 되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황석영(소설가) 작사 / 백기완 원작(묏비나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첫댓글 우리 모두가 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5.18 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립니다.5.18 만큼은 왜곡하지 않고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ㅠ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