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
디모데전서 1:12~17
요절:“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디모데전서 1:14)
찬송가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복음성가 은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사역하던 도중에 당시 에베소교회에서 사역하던 사도 바울에게 편지하여 그의 사역 지침을 위하여 조언해주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를 보면 에베소 교회에서 당시 사역하던 목회자 디모데가 교회 내의 잘못된 지도자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목회하는 상황이 충분히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거짓 교사들은 헛된 말들을 쏟아내면서 율법의 선생으로 자처하였고 그들은 양심이 없었고 교리도 그릇되어 죽은 자의 부활 진리를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들 자신은 악을 행하면서도 율법의 선생이 되어 남을 가르쳐려 드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함을 1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의 삶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과 이타적인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면과 행실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율법을 거슬러 행하며 입술로만 남에게 율법을 가르치려 드는 자들은 도리어 율법의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사도는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일꾼된 사람의 심리적 특징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살며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자원하여 충성하는 자라고 말하고자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삼아 말해줍니다.
사도는 자신이 이전에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철저하게 반대하며 주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다고 밝힙니다. 온갖 폭행을 가하였던 것을 고백합니다. 실제로 그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에 유대인들의 분노 중에 스데반 집사에게 신성모독자로 돌을 던져 죽이는 일에 앞장선 자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을 향하여 돌을 던져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옷을 맡는 일을 했습니다. 이는 그 사형 집행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옳다고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 스데반 사형 집행 직후부터 무섭도록 예루살렘 교회와 기타 지역의 교회들을 들어가서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였고 집에까지 들어가서 성도들을 끌어내어 감옥에 넣고 때리기도 하는 등 온갖 박해를 자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그가 포악하게 이런 일을 행하려고 저 먼 지역인 다메섹 성에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가던 도중에 대낮 광명한 시각에 그에게 놀라운 영광의 빛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자신을 계시하심으로써 그를 극적으로 회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영광의 주님을 뵈었을 때 즉각적으로 육신의 눈이 멀었으나 삼일 동안 회개하며 기도하던 중에 아나니아라는 성도를 보내어 안수하자 눈이 즉시로 다시 떠졌으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즉시 세례를 받고 그 직후부터 예수님의 부활과 그의 그리스도 구주 되심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라바 사막에서 삼년 동안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때 복음의 진리를 깊이 계시해주셨으며, 그에게 이방인의 사도로서 일하도록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순종했을 때 주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그를 통하여 나타내주시고 동역자들을 붙여주시어서 투옥 전 3차례 전도 여행과 투옥 후에 다시 석방되어 전도한 4차 전도 여행까지 이만 킬로미터의 전도 여행을 20년 넘게 계속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가 겪은 고생들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그 고생한 일들에 대하여는 고린도후서 11장에 일부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숱한 죽을 고비들 속에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불평과 원망이 없이 주춤거리지 않고 결연한 각오와 열심을 가지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바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약 65세 정도에 순교하는 그 날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으니, 그 비결은 바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늘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자비하게 주님과 교회를 핍박하였던 자기를, 죄인 중에 가장 악당인 자기를 당장 심판하여 요절을 내지 아니하시고고, 도리어 지극히 거룩한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서 사용해주신 영광의 주님과 홀로 하나이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때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과 감사함이 넘쳤던 것입니다. 자기가 그토록 오랫동안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며 성도들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를 때에도 그렇게 오래 참고 기다려주셨던 그 은혜를 생각할수록, 자기가 전도하던 중에 박해를 가하는 악한 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자기에게 주님께서 긍휼을 많이 베풀어주셨는가를 새삼 깨닫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구주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도리어 주님의 일에 자원하여 열심을 다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처럼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깊이 느끼면서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함과 감격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 성도, 참 일꾼의 증거인 줄 믿습니다. 수고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을 정죄하고 남과 비교하며 고생을 피하며 안일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지고 실감나고 그리하여 감사함과 감격을 가지고 주님의 일에 충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역동적이고 극적인 일은 없더라도 우리들은 주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이 세월이 갈수록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은혜인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극적인 성공과 형통만이 은혜가 아니요 도리어 평온하고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 큰 은혜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루 하루 큰 일이 없이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우리들은 종종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가장님이 병원 갔다가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발견될 때에 그 때부터 가족들 마음이 비상이 걸립니다. 아이가 학교 갔다 와서 밖에 나가 놀다가 팔이 부러지면 그 때부터 비상입니다. 아이들이 학교 성적 안 나오는 것이 불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 가고 학원 잘 다녀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그렇게 큰 일 터지면 깨닫습니다. 일상의 평온함이 지속되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크게 부자가 되거나 큰 행운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빠듯하더라도 필요한 물질을 얻는 것도 은혜입니다. 높은 액수의 복권이 당첨되거나 큰 사업적 성공을 거두거나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고 평온하게 하루 하루 수고한 대로 거두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만약 복권 당첨, 사업 성공, 높은 세상 지위에 오르게 되면 도리어 삶의 큰 위기가 닥쳐오는 경우를 많이 보지 않습니까? 젊은 시절의 화려한 성공이 도리어 금새 그 사람 인생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지 않습니까? 탤런트 유아인, 박유천, 승리 등 인기 가수, 배우 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평온하게 성장하는 모습으로 만족합시다. 감사합시다. 하루 하루 평온하게 지내는 것을 감사합니다. 재주가 탁월하지 않은 것을 도리어 감사합니다.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주님 안에서 평온하게 지내는 것을 감사합시다.
왕이었던 다윗도 진정한 행복과 축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시편 131편에서 이렇게 기도한 바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1:1~3)
잠언의 지혜자 아굴도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언 30:7~9)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받은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의 감격이 우리 안에서 식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자기가 현재 주님의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더 깊이 더 온전히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삶이 늘 촉촉한 단비를 맞은 채소와 나무처럼 싱싱합니다. 감격과 자원함으로 주를 위하여 살아갑니다. 고난조차 감사하며 주님을 위하여 고생할 수 있는 것도 축복으로 알고 힘을 다하여 주를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히 임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감격과 감사함이 넘치는 진실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