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비가 끊질기게 오지 않는게 어디야. 아니, 폭우로 피해가 없는게 다행아닌가. 어디선가는 물 폭탄이 쏟아지고, 산사태가 나고, 물이 넘처서 법석인대가 한두곳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지구 어느곳에서는 폭설이 내리기도 하고 50도가 넘는 폭염을 이르키고도 있으니 , 여기, 이곳은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34__5도라고 한다. 이정도면 나도 덥다. 제습기와 함께 소형 선풍기가 돌아가는 중이다. 반 지하의 습도와 냄새는 때로 우울하게도 하지만 요즈음엔 이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이집마저 없었다면 어쩔뻔 했어? 아닌가. 그래도 어떻게던 살긴 살까? 그렇겠지? 이집은 친정의 선물이나 다름 없다. 충분히 사용하고 나면 돌려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진 했는데, 내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것 같다. 50줄인 아들이 아직 집없이 지내고 있는데, 내가 좋아질 택이 없다. 자식들중에 때돈 버는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아니,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는 있다. 사실 솔로몬의 부귀영화 마저도 행복을 가저오지는 않는다고 누누히 말하고 있고, 어느만끔은 공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번쯤은 부유하게 살아보았으면 하는 꿈을 아주 놓아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 미련일수도 있다. 옷에도 먹는것에도 신경 안쓴다고? 옷이 옷이고, 먹거리는 먹거리라고? 순 뻥이고 거짓이다. 좋은옷, 눈에 번쩍 뜨이는 그런옷, 나도 입고 싶다. 손주의 작아진 티샤스에 눈독을 왜 들이겠는가. 맛있는게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왜 먹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옷이 그옷이고, 그맛이 그 맛이라고 애써서 나를 위로할 뿐이다. 사는게 그렇지 않던가. 딱히 그것이 대단히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갖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호기심마저 원천 봉쇄를 하고 사는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서 아무련 기새가 없다. 뭐 대단한 인품이나 도덕적인 성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깊은 포기와 체념이 있을뿐이다. 공평을 과연 무엇일까.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한 것일까. 나 스스로도 내가 주어다. 나 나 나. 너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면서 공평을 말할수 있을까. 아니, 영향력 제로인 내 공평이 정의가 무슨 대수라고? 내 이해가 필요한 세상이 아니라는 말에 공감한다. 나 따위가 공감하거나 이해하거나 아니거나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너나 잘해" 그렇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나나 잘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불을 빨고있다. 이런 날에? 비는 올것 같지않고, 예보에도 비는 없어서다. 우리집 실내온도는 아직 아니지만 실외 온도가 30도를 넘은지 한참되었고, 폭염예보가 여기저기 뜨고 있는데, 앏은 이불로 바꾸는게 맞지 싶어서 덥던 이불을 바꾸려고 빠는 중이다. 어제밤에도 전기 요를 켰던 것 맞아? 엉터리다. 나이만 많지 순 엉터리다. 이런 사람도 이 나이까지 살았으니 참 좋은 세상인가, 좋은 세월인가. 그런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란다.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한것 같다. 다수의 국민들은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분명 그렇다. 그런데, 소수의 악인들도 활개를 치고 있지않는가. 그 악인들 중에서 정치인들이 단연 뛰어난 것 같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들에 대해 편견을 갖을 필요는 없는게 맞다. 잘나고 목소리 큰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세상을 이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참 주인이 되신분은 분명 따로 계신다. 그게 믿어지는게 믿음이란다. 그럼 나도 믿음이 있는 것인가. 습도가 높은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자. 내가 갈날이 하루 가까워 진것을 기뻐하자! 어제는 작은 손주 생일이었다. 내가 할수있는 만끔만 했다. 미역국도 끓여주었고, 소불고기에 전도 붙쳤다. 식혜도 샀다. 그리고,,, 용돈을 줘놓고 꼬여서 건축헌금으로 들이게 했다.ㅎㅎㅎ " 이담에 네가 집살때 하나님이 분명 나 몰라라 하시진 않을거야, 믿지?" ㅎㅎㅎ. 어쩌면 내가 더 믿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그래도 웃을수 있으니 좋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