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
삶은
적절한 그릇을 찾는 게임입니다.
철학적으로
관련 단어를 찾는다면
상대적 가치
현장성 유연성 등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들 가치가
꾸준히 언급되었으나
대중화된 것은 20C라 볼 수 있지요.
사회는 특성상
일정한 질서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질서는
권위의 옷을 입고 작용할 때가 많지요.
통제의 힘에 대한 매력은
인류로 하여금
전 문명에서 절대성에 대한 과몰입을
유발했습니다.
종교는 절대 신神을
철학은 '제1원인'을 찾았고
과학은 원리에 천착했습니다.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지속한다는
항구성이
절대와 원리의 한 특성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관여한다는 보편성은
원리에만 적용되는
특성이지요.
근대에 들며 인류가
절대성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항구성과 보편성의 차이에
눈을 뜸으로써
시작한 듯 합니다.
근대적 사고 방식에서
보편성은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고
유용한 것이지만
항구성은 확인이 불가하며
삶에도 전혀 쓰임이 없습니다.
절대성은
사고의 유희가 만든
허구일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원리를 비롯한 관찰되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삶에 의미를 지니는 것은
항구함이 아닌
원리가 발현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세계관에
절대와 상대의 구도가 깨어지고
원리와 발현의 구도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유사한 개념으로 동양에선
체體와 용用이 있지요.
원리는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니기에 원리가 됩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조건이 바뀌면 원리도 무효해짐을
알지요.
그래서
원리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항상 발현과 연계된 현장
곧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실존주의의 모티브가
이것입니다.
원리와 발현은
한 쌍으로 관계할 때 의미를 지니지요.
최소한
인간의 삶에는 그렇습니다.
철학적으로 상대적이라는 의미는
'적절함' 을 가리킵니다.
원리가 현장에 들어맞는 상황
혹은
현장에 원리가 충분히 발현하는
상황입니다.
일상의 표현은
'궁합이 맞음' 이지요.
궁합이 맞음에 절대성은 없으나
그 속에
원리는 있으므로
현장에 만족이 발생합니다.
인연도
적절함에 따라 움직이기에
조건을 필요로 하지요.
과거엔
절대 착함을 강요받았으나
현대의 우리는
그것이 허구임을 압니다.
삶은
외부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얼마나 맞추느냐의 문제이지요.
대인관계에도
누가 좋은 사람이냐 혹은
무엇이 좋은 얘기냐 보다는
적절함이 발생하고 있느냐가
더 의미있습니다.
결혼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인성이나 능력 좋은 사람만이
기준이 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음을
우리는 압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 무엇을 공유할 수 있느냐 이지요.
공유할 것이 적으면
서로가 아무리 훌륭해도
결혼의 의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의미는
절대성이 없으며
각자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주관성입니다.
의미는
진리나 진실이 아닌
적절함에서 옵니다.
자신의 조건
자신의 방향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그릇 곧 현장이지요.
그릇이 명확해야
무엇을 담을 지 알 수 있으며
적절함은
그곳에 있습니다.
푸른 꽃잎 담백히 담기니
생기 돋우는 말없던 화병
노란 탁자 밝은 벽 깨어나
공간엔 묻어나는 적절함.
..241021小野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덕분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