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9]아름다운 사람(30)-‘따르릉 길’과 지정환 신부
몇 년 전인가, 나의 졸문에 근 1년 꼬박꼬박 맛깔스런 댓글을 다는 친구가 있었다. 고교 동창이나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필명이 재밌게도 ‘따르릉 길’이었다. 어느 날은 우리 고향집 툇마루에 ‘신안 천일염’ 한 부대를 가져와 잠깐 얘기를 하게 됐다. ‘소금장수’(그의 전문직업을 비하하는 게 아닌 나의 애칭이다)를 30여년 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포항제철과 코카콜라에도 조금 다녔다던가. 아무튼, 전주에서 ‘다복영업사’를 차려 신안-부안 곰소 등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을 전국에 도소매하는 일에 평생직업으로 종사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쏠쏠히 재미도 봤다(2남1녀 키움)며 ‘소금’에 대해선 대한민국에서 생산자 못지 않게 일가견이 있다했다. 언제 완주 비봉에서 어울린 적이 있는데 ‘봉술’을 가져와 술을 자꾸 권했다. 본인은 술 한잔도 못하는 체질이면서. 벌통 앞에서 왼종일 앉아 벌을 잡아 술병에 그대로 넣는 얘기를 구수하게 했다. 털털한 외모에 장비를 닮은 듯했다.
본론은 이렇다. 그가 소금장수를 하면서도 30여년 동안 이런저런 사회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염殮(주검을 널에 넣어 안치하는 일)하는 일을 오래 했다는 게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없을 때 이야기이다. 누구나 꺼려할 ‘염’을 무료 자원봉사로 30년 동안? 주검을 만지는 일이 겁나고 무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냥 웃었다. 몇 분이나 염을 해드렸냐니까 구체적인 숫자는 말하지 않고 그냥 30년여년 했다고만 했다. 쉽게 믿기 어렵다. 어느 때는 고교 친구의 부모를 보름 간격으로 염해드렸다고 한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법이 바뀌어 자격증이 없어 못한다고 한다. 큰 적선積善이고 큰 적덕積德이다. 진짜로 복받을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 번째 ‘임실치즈' 아니 '한국치즈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면 모를 분이 태반일 듯. 벨기에 출신 디디에 엣세르스테번스라는 신부가 1961년 전북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왔다. 부안성당에 있을 때 간척지를 개간하여 농민들에게 분양한 공적이 있는데, 농민들의 이해갈등에 절망했다. 1963년 임실성당에서도 산양을 길러 치즈 제조에 도전했다. 많은 실패 끝에 1969년 제조에 성공, 오늘날 ‘임실치즈’는 임실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의병 이석영 장군과 의견 오수개는 몰라도, 임실치즈를 모르면 ‘간첩’이 아닐까. 훗날 지정환池正煥(1931-2019)으로 개명했다. ‘임실지씨’ 시조이나, 신부이므로 소생이 없어 딱 1명을 기록했다.
그 지池 신부도 임실에서도 여러 이해에 휩쓸려 고민을 하다 지병을 얻어 고국으로 돌아갔다. 허나, 이미 뼈속깊이 ‘한국인’인 그는 다시 돌아와,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봉사단체 <무지개가족>을 설립했다. 위에서 말한 ‘따르릉 길’ 친구는 창립 초기부터 참여하여 지 신부를 도우며 30여년간 활동했다(목욕을 시켜드리거나 머리와 손발톱을 깎아주는 일을 주로 했다). 하반신 마비 등 장애인들을 돕는 민간봉사단체 <무지개 가족>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4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2019년 지신부는 ‘영원한 한국인’으로 이 땅에서 88세로 선종善終했다. 정부는 그때서야 ‘한국 치즈산업의 발전과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追敍했다. ‘민주화운동 기여’는 지신부가 박정희정권때 고난당한 ‘인혁당’공작을 반대하여 추방위기에 몰렸거니와 광주민주화운동때에는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까닭이다. ‘따르릉 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본래 ‘(주님)을 따르는 길(성수)’라는 뜻으로 ‘따르는 길’이라 지었으나, 종교적으로 편향된 것같아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가가 나갑니다 ’ 동요 구절을 본따 경고警告하는 의미로 삼자며 ‘따르릉 길’로 바꾸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지신부는 한국어를 ‘인요한’이라는 외국인처럼 잘했던 듯, 농담도 잘했다한다. 한번은 어느 촌로가 ‘장개(장가)는 갔는가?’고 물으니, 신부가 전북 장수의 장계(흔히 ‘장개’라 부름)를 가본 적 있느냐는 물음인 척 “네 번 갔다”고 해, 촌로를 화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당신의 ‘지정환’이름을 "정의正義가 환하게 빛날(빛날 환煥) 때까지 지池랄한다"고 했다던가. ‘임실 지씨’ 최초이자 최후 인간의 이름 풀이가 정말 환하게 빛이 나지 않은가. 오래도록 빛날 이름이다. 지정환.
또한 ‘소금장수’ 30년을 하면서도 지 신부의 <무지개 가족> 봉사단체에 동참, 중증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그리고 기독교 신자 가족 등 돌아가신 분들의 마지막 가는 과정(염→입관入棺)을 경건히 수발을 든 ‘따르릉 길’ 친구에게도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그대, 복될 지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