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나는 주님의 모사인가 벗인가?』
역대상 27:33. 460장
33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다윗에게는 아히도벨과 후새라는 자문관 혹은 전략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역대상 27장 33절을 보면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라고 소개하고 후새는 왕의 벗이라고 설명합니다. 모사와 벗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첫 번째 모사와 벗은 지략과 관계 혹은 머리와 마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사의 히브리적 어원은 ‘야아츠’로 ‘계획하다’ 혹은 ‘조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모사라고 소개된 아히도벨은 사무엘하 16장 23절을 보면 “하나님께 물어본 말씀”과 같다고 평가될 정도입니다.
반대로 후새를 소개하는 ‘벗’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아’는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혹은 ‘마음을 주고받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아히도벨은 이성적이고 비상하여 기가 막힌 계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후새는 다윗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었던 것입니다.
2,000년 전 가리옷 유다는 예수의 돈주머니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 삼십에 예수를 팔았습니다. 반대로 베드로는 매일 실수하고 도망치지만, 주님이 주신 이름처럼 교회 반석이 됩니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가룟 유다는 계산하면서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를 부인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습니다. 이처럼 머리로 계산하며 예수를 믿는 것과 눈물로 마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인격적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만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위기 상황에서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압살롬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 계산적이며 능력이 좋은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다윗을 배신합니다. 반대로 후새는 다윗을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갑니다. 단순히 모사 역할을 하던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신했지만, 가슴으로 다윗과 교제하던 후새는 그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신앙이란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우리에게 참된 벗은 누구십니까?
요한복음 15장 13절을 보면 예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은 아히도벨의 모습이 아니라 후새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 모습이 머리로 계산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모사 아히도벨이 아니라 가슴으로 다윗과 교제하고 그를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던 후새의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참된 친구가 되는 신앙인이 되길 축복합니다.
삶의 적용 : 머리로 믿는 신앙과 가슴으로 따르는 신앙은 어떻게 다를까요?
마무리기도
머리로 계산하며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주님을 만났기에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