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獨笑) "홀로 웃다">
조선 정조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1804년 유배지
강진에서 쓰셨다는 시조 '독소(獨笑)'입니다.
250여년 전의 사회풍자
내용이지만 지금의 세태를 보는 것 같군요.
살림이 넉넉하여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자식이 많은 집엔 가난하여
굶주림이 있다.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達官必憃愚 (달관필창우)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다.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집안에 완전한 복(福)을 갖춘 집 드물고,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지극한 도(道)는 항상 쇠퇴하기 마련이다.
至道常陵遲 (지도상능지)
부모가 절약하여
재산을 모으면 자식들은 방탕하고,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짓을 한다.
婦慧郎必癡 (부혜낭필치)
보름달 뜨는 날은 구름이 자주 끼고,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세상 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홀로 웃다.
(獨笑)”이다
12줄의 내용이 보편적인
우리의 삶을 그대로 표현 하고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선생은 세계사에 어떤
석학과 견주어도 상석(上席)에 모실 분이다.
한국사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 “홀로 웃다(獨笑)” 처럼
허탈 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사다.
18세기 초반부터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개혁의 인물로 정조(正祖)와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등장하지만
하늘은 조선이 행복해 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정조(正祖)를 하늘로 불러 올렸다.
따라서 이제 막 날개를 달아
일생의 포부를 조선의 개혁에
펼치려던 정약용 선생의 날개도 꺾여
전남 강진으로 18년 유배를 간다.
개인적인 역사관이지만
오늘날 허리가 잘린 반신 불수의
한반도의 불행은 개혁의 기치를
내건 인조의 세자 소현세자의 죽음,
정조의 일찍 죽음, 고종의 무능,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혁 개방 기회를
놓쳐 열강(列强)의 먹잇감이 된것이다.
그리고 남북 분단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론분열(國論分裂)”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은
명치왕(明治王)때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의 막번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 복고(王政復古)를 이룩한 국가변혁이다.
결국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양보를 하고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성공하여 오늘날
일본은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이 1868년부터
1880년대에 마무리 되었으니까
정조(1752~1800), 다산(1762 ~ 1836)의 생(生)이
끝날 때가 일본의 명치유신과 비슷한 시기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시작 하는 때에
조선은 안동 김씨 대원군 민비등의
권력다툼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산선생이 강진 유배 중에
쓴 책이 1000여권, 그중에서
“경세유표(經世遺表)”라는 책은
참고 자료에서 기존 제도들의 모순에
대한 뼈아픈 통찰과 지적을 남기며,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도록 정치,
사회, 경제 제도를 개혁하는 부국
강병을 이루는데 목표를 두자는
내용의 국정개혁의 중요한 책이다.
일본은 선진국의 깃발을 달고
대륙을 넘볼 때에 조선은 권력
다툼으로 다산을 강진으로 귀양 보내
“앉은뱅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은 큰 슬픔을 당하면 슬피 운다.
울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을 당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혼자 웃는다.
다산초당(茶山艸堂)은 단순히
강진만 바다가 넓게 펴진 아름다운
관광 유적지라 생각하면 안된다.
한 인생의 포부를 짓밟힌 한맺힌 곳이다.
그렇다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 (臥薪嘗膽)”을 할 수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여기에 다산의 생가
당호(堂號)를 “여유당(與猶堂)” 이라 했다.
다산 선생이 강진 귀양이 풀리고
바로 고향으로 가서 “여유당(與猶堂)”이라
당호를 붙이고 돌아 가실 때까지
“숨도 크게 안 쉬고” 살았다고 한다.
“여유당(與猶堂)”은 노자(老子)의
도덕경의 한 구절로 마치 코끼리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산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시대의 위인 (偉人)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