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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비우는 삶 (빌립보서 2:5~11)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항상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무명 선사가 맹사성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항상 좋은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때, 그 말을 들은 맹사성은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입니까? 라고 거만하게 따지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점잖게 하는 말이 ‘이왕에 이 먼 길까지 오셨으면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때, 맹사성은 못이기는 척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무명 선사가 녹차 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계속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맹사성은 ‘스님! 찻잔에 차가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무명선사는 태연하게 계속해서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맹사성 양반! 당신은 찻잔의 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 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라고 질책을 하자,
무명 선사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씩씩대며 황급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맹사성은 그만 낮은 방 문설주에 이마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무명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항상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5절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의 마음’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고 어떤 것이 예수 그리스도 마음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다음 6절로 8절을 보시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똑같으신 분이지만, 당신 자신을 비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셔서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믿으십니까?
원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지만, 당신 자신의 마음을 비우시고 종처럼 낮아지신 그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진정으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기 원한다면, 끊임없이 나를 비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존경과 대접을 포기하고 날마다 나 자신을 온전하게 비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을 비우는 온전한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귀한 예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권위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때문에 나 자신을 비우는 생활의 첫째가, 내가 비록 그 어떠한 권위와 권세를 가졌을지라도 온전히 마음을 비우고 권위의식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높은 권력과 권세를 가졌어도 자기보다 권위와 권세를 갖지 않은 낮은 자와 같은 의식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되신 가장 높으신 권위와 권세를 가지신 분이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고 낮고 낮은 종의 모습으로 이 육신의 세상에 오셔서 섬기는 생활의 본을 보이신 분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4장 7절로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잔칫집에 가셔서 손님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먼저 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그 말씀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아멘!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의 뜻은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더라도 그러한 권위의식을 버리고 낮은 자리에 앉도록 하라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와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셨지만 그 모든 권의의식을 버리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낮고 낮은 종의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탄생을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 14절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손으로 피조물인 인간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고 나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을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18절을 통하여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하고 나서 마땅히 쓸 수 있는 대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받을 상급이 더 크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도 권세의식, 권위의식을 버린 사람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미국의 1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기차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차표를 사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까지는 그 거대한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지만, 그 권위의식을 싹 잊어버리고 줄을 서서 기다리며 기차표를 사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멋이 있는 분이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로 시집 온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식사가 거의 끝나 가는데도 얼른 가서 숭늉을 떠다 드리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숟가락을 집어 던지며 며느리를 구박했습니다.
이처럼 옛날 어른들은 지나친 권위의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며느리가 밥을 먹다가 눈치를 채고 일어나더라도 ‘며늘아! 그냥 밥 먹어라! 내가 떠가지고 오마!’라고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겠습니까?
이와 같이 모든 일에 있어서 권위의식을 버리고, 낮게 처신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또한 진정한 인격의 아름다움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교회 안에서도 전도사만 되어도 ‘종, 종’하면서 성도들이 조금만 소홀히 하여도 ‘주의 종을 이렇게 대접하느냐?’고 푸념을 한다면 진정 그 사람은 대접받는 교역자가 되기는 이미 틀린 것입니다.
때문에 전도사가 되었든, 목사가 되었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든, 자신의 권위의식을 버리고 겸손히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진정으로 존경받는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4절로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인정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지금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더라도 예수님처럼 권위의식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높아지는 비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라도 섬기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으면 훌륭한 왕이 될 수 없고, 장군이라도 섬기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그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주님의 삶과 같이 모든 권위의식을 버리고 항상 겸손하게 낮아지는 생활에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소유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세상의 물질을 넘치도록 소유했을지라도 많이 가졌다는 소유의식을 버리고, 항상 있어도 없는 자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사람과 물질의 관계는 배와 물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배는 물이 없이는 뜰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것이지만, 물이 배안으로 전부 들어차게 되면 그 배는 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물이 배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즉시 퍼내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그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소유하는 것은 좋지만, 돈에 대한 자부심과 소유의식으로 마음이 꽉차버리면 그의 신앙과 인격은 침몰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물질은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소유의식을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저의 경험에 의하면, 물질은 사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돈이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믿고 의지하며, 그것에 집착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30절로 31절에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形跡)은 지나감이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소유했다는 의식을 비워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도 보면, 형제가 재산분배 문제로 다투다가 해결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찾아와 재산을 공평히 나누어 갖게 해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핀잔을 주듯이 “이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 하니라!”고 하시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육신의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나, 불행, 그리고 잘 살고 못하는 것이 물질을 많이 소유한 데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예화)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무엇을 소유하느냐(to have)는 것보다 무엇이 되느냐?(to be)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날마다 때마다 우리의 삶을 소유의 형태에서 존재의 형태로 바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부자 청년에게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자 청년은 그런 위대한 결단과 물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나 높아 이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무의미한 생을 덧없이 살다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비우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록 재물을 많이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셨기 때문에 그 소유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 것이라는 믿음으로 개인의 소유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지금보다 더욱더 큰 재물의 복을 넘치도록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 17절로 18절에서도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저와 여러분들은 무엇을 소유했다는 의식을 버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명예의식(선행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듣는 것이 좋아서 구제할 때에는 나팔을 불며 자랑을 했으며, 금식을 할 때에는 얼굴을 흉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띄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시면서 “구제할 때에는 나팔도 불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것은 왼손이 모르게 하며, 금식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안하는 것처럼 하라! 그래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아무리 많은 선행을 행하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명예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명예를 얻을 만한 좋은 일을 많이 행하여 왔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명예의식을 버려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참으로 훌륭한 성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서도 “만일 누가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선한 일과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도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행한 것이므로 우리들이 자랑 할 것도, 명예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이 선행의식이나 명예의식은 아예 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청년이 하룻밤 철야 기도를 하고 나서 무디(Moody)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제 얼굴에 광채가 나지 않습니까? 제가 지난 밤 철야기도를 했는데요!’라고 하자
무디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을 대면하여 금식기도를 하고 났을 때, 그 얼굴에 빛이 나서 백성들이 얼굴을 가리 우고 감히 쳐다보질 못했으나
모세 자신은 자기 얼굴에 광채가 나는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겨우 하룻밤 철야기도를 하고서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꾸짖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도 가끔은 겸손이 결핍되어 자아도취에 빠져서 허황된 꿈속을 헤매다가 부끄러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항상 선행의식, 명예의식을 버리고 겸손을 유지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병 고침을 받고 15년의 생명을 덤으로 연장을 받았습니다.
이때에 바벨론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많은 예물과 더불어 사절단들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우쭐한 마음에 그 사절단들에게 궁중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구경시키며 자랑을 했습니다.
자신의 궁 안에 있는 금고며, 무기고, 그리고 보물창고 등,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다 들추어내어 보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다 내어놓고 의기양양 했습니다.
그때, 이러한 광경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향하여 불같이 노하시며,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보물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바벨론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얼마 후에 그 말씀대로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돌리고 자중하며 조심해야 하는데도 결국 히스기야는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어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식물의 줄기가 무성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그 식물의 뿌리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줄기와 잎사귀는 햇빛을 잘 받아야 마땅하지만 만약에 뿌리까지 뽑아서 햇빛을 보이면 그 길로 그 나무는 끝장이 나고 맙니다.
이와 같이 모든 식물의 뿌리는 반드시 땅 속에 묻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에도 하나님만이 알고, 남이 모르는 숨은 부분이 있어야 안전하고 튼튼한 법입니다. 그래야 견실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나 자신을 비우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권위의식을 버리고, 무엇을 가졌다는 소유의식도 버리고, 명예의식이나 칭찬의식도 버리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저와 여러분들이 주의할 점은, 중심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겸손한 체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는 첫째로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둘째로는, 소유의식을 버리고, 셋째로는, 명예의식이나 선행의식을 모두 다 버리는 온전한 믿음으로 이를 실천하며 행동할 때,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더욱더 넘치는 큰 축복으로 보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항상 우리들 마음 판에 새겨서 나 보다는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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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