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의 통행문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떨어진 후였다. 통행문
에 있는 건물은 횟불에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입구에는 4명의 보초병이
서 있었다. 밤이 되어서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안쪽도 조용
한 분위기였다.
"잠시정지!"
보초병이 창을 엇갈리게 들어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는 그중 한명이 로
이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잠시 짐을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그 보초병은 말을 끝마치지자마자 로이의 등에 있던 가방을 풀어 안을
살펴보았다. 다른 한명은 로이의 몸을 샅샅히 뒤졌다. '원래 큰 마을에서
는 이렇게 몸수색을 철저히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했으
나 기분이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작은 마을에만 있다가 큰
마을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것이 몸수색을 당한다는 것 역시 어색하기만
했다.
"이곳 사람이 아닌가 보지?"
몸수색을 하던 보초병이 물었다. 확실히 그럴 만도 하다. 로이의 옷차림
은 짧은 소매에 소가죽으로 된 조끼를 입고 커다란 부츠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사람들은 모두가 크고 넓은 천을 몸에 둘둘말고 다니고 대
부분 머리에 터번을 둘렀다.
"앗! 이것은..."
가방을 뒤지던 다른 보초병이 칼을 집어들고는 깜짝 놀랬다.
나머지 3명의 보초병들도 그 칼을 보고 놀라기는 마찬가지 였다. 몸수색
을 하던 보초병과 가방을 수색하던 보초병이 즉시 몇발자국 밖으로 물러
서고 나머지 입구를 지키던 보초병들도 거만하게 서 있던 자세가 금
세 '차렷'자세로 바뀌었다.
"실례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큰 소리로 외친 보초병들은 문 앞에서 나와 로이의 좌우에 섰다. 로이
는 영문을 몰랐으나 가방을 다시 들쳐메고 카슈미르의 통행문을 지났다.
통행문과 이어진 외길을 한동안 따라 가니 마을다운 집들이 모여있었
다. 고향에서 늘상 보던 통나무집과는 달리 하얀 벽돌집이 줄을 이어있었
고 겉에 바른 흰색의 화장석으로 인해 몇 개 있지 않은 횟불로도 주위가
밝게 빛났다.
로이는 먼저 여관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마을을 한바퀴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밤이 점점 깊어가고 사막을 횡단한 피로로 인해 일단 푹 쉬고 싶
었다. 어느 건물이 여관인지는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으나 로이는 바로 들
어가지 않았다. 이왕이면 좀더 싼곳에서 머물기 위해서이다. 오랜 여행길
에 돈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몇 개의 여관을 발겼했으나 비
슷비슷하게 지어진 벽돌집은 정말 위치만 달랐지 같은 집처럼 느껴졌다.
로이는 망설이다 그 중 한곳에 문을 두드렸다.
"어서오세요. 손님"
터번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눈만 내놓은 여자가 로이를 반겼다. 안을 둘
러본 로이는 의자에 앉았다. 아담한 여관에 둥그렇게 생긴 작은 탁자가
있고 의자 3개가 놓여있었다. 그 밖에는 여러개의 방이 나란히 있었다.
그 여인이 다가와 탁자위에 물을 떠왔다. 하루종일 걸었던 로이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룻밤에 50겔더입니다, 식사는 10겔더씩 추가이고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로이는 허리춤에 있던 가죽주머니를 꺼
내 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여인에게 물었다.
"이곳은 원래 이렇게 통행단속이 심합니까?"
"그건, 지금 카슈미르는 내전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쟁지역
은 이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출입자만 검문하는 것이지요."
그 여인은 여관을 해서 그런지 질문하자마자 대답을 했다. 아마 로이 이
외의 여러 여행자들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로이는 방에 들어
가 옷을 벗고 간단히 씻은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아침이면 밝게 빛
나는 카슈미르를 구경할수 있다는 기대감과 다행히 잘 곳을 찾은 안도감
과 사막을 건너온 피로감으로 인해 금새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태양이 여관 창을 통해 로이를 깨운다. 로이는 크게 기지개
를 하고선 몸을 움직여본다.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 듯 몸이 가뿐했
다. 먼저 창밖을 바라봤다. 벌써 사람들이 오가면서 왁자지껄한 길거리이
다. 로이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밑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로이는 그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했
고 그들 역시 웃으며 인사했다.
"이곳사람이 아니군, 멀리서 온 듯한데."
로이는 옆사람의 질문에 자신의 고향에 대해 말했다.
"꽤 멀리서 왔군. 난 남쪽에서 온 사람일세. 장사를 하러 왔지."
이곳이 처음인 로이는 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유난히 여행객이나 상인들이 많은 것 같군요."
"물론이지. 주위가 대부분 사막인데다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선 아무
래도 중간지인 이곳 에서 쉬었다 가는 것이 대부분이지. 덕분에 이
곳 카슈미르는 점차 커져 이젠 대도시라 불려도 좋을 정도가 되었
지."
다른 쪽에 있던 사람이 말을 이었다.
"한가지 흠이라면, 요즘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다 보니 사막의 도적들이
많이 생겨났지. 그들 은 자연히 상인들이나 여행객을 노리게 되고 다
른 마을과 멀리 떨어진 이곳 캬슈미르는 그들에게는 아주 적격이지.
때문에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 거래면 상인들과 함께 호위군을 붙이는
게 일상화되었지. 게다가 내전을 겪는 이곳은 점차 보호의 필요성이 커지
고 있고..."
로이는 언젠가 고향마을에 찾아온 이방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 그럼 이곳에서도 기사단을 모집하고 있나요?"
그러자 상인이 껄걸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카슈미르의 변방 중 한 곳이지. 이곳 반대쪽의 카슈미르가 바
로 내전중인데 아마 중앙 카슈미르가 조만간 기사단을 파견할지도 모
르지."
"아 그렇군요."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해서 찾아온 카슈미르가 내전중 이라는게
불안하긴 해도 그 반대편에 오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상인인 우리야 여기에 당분간 머무를 테지만 자넨 어쩔 생각인
가?"
갑작스레 질문을 받은 로이는 먼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오
랜 여행길에 돈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에 일단 돈을 벌어야만 했
다. 돈을 벌어야 모험도 계속할수 있기 때문이다.
"음. 일단 여기서 돈을 벌어야만 해요, 어디 돈도 벌고 잠자리도 있는곳
이 없을까요?"
로이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친절한 이분들이라면 일
자리를 주선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고 물자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기 때문에
일자리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걸세."
"아... 예.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많은걸 알려줘서 고맙습니
다."
"그럼 잘 가게나.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겠네."
로이는 여관을 빠져나와 마을을 둘러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을도
구경할겸 일자리도 찾을 차례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가게가 많이 있고 여기저기에서 상인들이 수
레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백색의 벽돌로 만
든 집은 카슈미르 어딜 가나 같은 모습이었다. 상인과 손님들이 서로 가
격을 흥정하느라 여러 가지 말소리가 한데 섞여 들렸다. 로이는 그 중 창
고에서 물건을 실어나르는 곳을 보았다. 그 주위에는 수많은 수레와 마차
가 서있고 여러 남자들이 쉴새없이 물건을 날랐다. 로이가 다가가자 마
침 휴식시간인 듯 사람들이 한데 모여 땀을 닦고 있었다.
"저... 이곳의 책임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상자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던 청년이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로
이는 책임자에게 다가가 일자리를 요청했고 그는 마침 사람이 부족했다
며 바로 승낙했다.
"이름이 뭐지?"
"로이입니다."
"로이... 지금부터 일하겠나?"
로이는 바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잠자리와 숙식도 제공하고 보수도
아주 만족할 정도였다. '큰 마을이라서 그런지 보수가 좋은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이곳이 앞으로 자네가 묵을 곳이라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써서 좀 불
편하겠지만 괜찮겠 나?"
"네 괜찮습니다."
"좋아. 짐을 푸는 즉시 일하러 나오도록."
이층침대가 두 개 있는 이곳은 한방에 4명씩 묵는 곳이었다. 여러개의
방이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 대형창고의 전용숙소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로이는 기쁜 마음으로 창고를 향해 걸어갔다.
힘겨운 일이 끝난 후 이곳의 책임자이자 주장인 클래터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 모두들 여길 보라고. 우리의 새 식구가 생겼어. 북쪽 먼 곳에서
온 친구인데,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되었다네."
"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이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여어. 같이 일하게 돼서 반갑다."
사람들 사이에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안 그래도 요즘 일손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던 주장이 제일 좋아하겠는
데?"
"클래터 주장! 혹시 어디에서 협박해온건 아니겠죠?"
누군가의 외침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클래터가 로이의 어깨를 붙잡으
며 외쳤다.
"오늘은 새 식구에 대한 축하파티다. 모두 마음껏 마시자!"
"와아아아!"
일꾼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고 로이를 반겨주었다. 그들중 로이가 가
장 나이가 어렸으나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친절
하게 대해줬고 로이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모두들 숙소로 돌아갔다. 로이도 숙소로 돌아갔는데 클
래터가 찾아왔다.
"어떤가. 맘에 드나? 모두들 괜찮은 녀석들이라구."
"네.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클래터는 그런 로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침대를 훓어봤다. 그러다가 어
느 한곳에 그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저것은?"
클래터는 놀라면서 말했다.
"저건 틀림없는 윤회의 기사단!"
"예?"
로이는 영문을 몰랐지만 클래터는 틀림없이 그 칼을 보고 하는 말이었
다.
"자네 정체가 뭐지?"
"아. 이건 제가 아는 할아버지께 받은 선물입니다. 본래 제것이 아니에
요."
"그런가. 그 할아버지께서 윤회의 기사단이었나 보군. 그래도 기사단의
증표라 할수 있는 검을 주다니... 그 사람과 굉장히 친했었나?"
"뭐. 그런셈이죠. 그런데 윤회의 기사단이 도대체 뭡니까? 그것이 뭐길
래 이곳에 들어올 때 보초병들도 놀랄 정도죠?"
로이는 카슈미르 통행문에서 보초병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생각하며 물
었다.
"윤회의 기사단은 한때 기사단중 최강이라 일컬러졌던 그런 기사단이
지. 어느 한곳에 머물러서 왕이나 귀족을 보호해주는 일반 기사와는 달
리 여러곳을 돌아다니는 좀 특별한 기사단이었지. 게다가 옷차림도 보통
때는 일반인들과 비슷해서 알아보기조차 힘들었지. 옛날 다이너 전쟁에
서 아주 큰 활약을 했고 이곳 카슈미르도 윤회의 기사단에 의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야."
"그건 그렇고, 그 기사단의 증표인 이 칼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데."
클래터는 믿을수 없다는 듯이 그 칼과 로이를 번갈아 가면 쳐다봤다. 로
이는 자신에게 기사단의 증표를 준 고향의 노인을 생각했다. 그저 그런
기사로써 정말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는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었지 이토
록 대단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그 노인은 자신이 왕년에 기사라고만
했지 윤회의 기사단의 이야기는 한번도 꺼내질 않았다. 기사단의 이야기
는 다이너 전쟁때 참여했다고 한 것이 전부였다. 또 이 칼도 그냥 '선
물'이라고만 했다.
"지금도 윤회의 기사단이 어디엔가에 있을까요?"
"흠. 그건 잘 모르겠네. 다이너 전쟁이후에 소식이 끊긴채 오랜시간이
흘렀지. 도무지 행방을 알 수 없어."
로이는 노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윤회의 기사단의 운명을 상상해봤
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렴 큰 활약을 했던 윤회의 기사단
이 바로 사라진다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분명히 어디엔가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로이는 굳게 믿고 있었다.
카페 게시글
소설
판타지
--로이 크리스틴-- <<시작되는 모험 2회>>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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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0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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