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에 연재되고 있는 글을 우리신학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가져왔습니다..
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 1 - 교회쇄신이란 ‘말’
장마가 걷힌 뒤에도 하늘에 잔뜩 구름이 끼었다. 아마도 며칠 동안의 뜨거운 땡볕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일 새벽쯤 한바탕 비가 와줄지도 모른다. 자연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때가 되면 자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머물러 있는 구름이 없듯이, 주저앉아 있는 계절도 없다. 흐른다. 막혀있는 것은 죽은 것들뿐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출구를 두고 입구를 막으며, 들어오는 게 있으면 나가는 것이 있다. 그걸 우린 신진대사(新陳代謝)라고 한다. 건강한 세포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래서 사람은 늘 새로운 육신을 가진다. 흐리면 개일 날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이, 흐린 구름장 사이로 언뜻 말간 달이 낯을 디밀고 있다. 묘한 아름다움이다.
산골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교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접었다. 30분 정도 자동차를 타고 가면 성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일미사에 그다지 얽매이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교회에 대한 애정도 줄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동안, 교회 안에서 일하는 동안, 교회 문제는 항상 숙제처럼 따라다녔다. 그 당시에 교회쇄신의 과제는 교회 제도권에서 인준 받지 않았던 단체들의 공통된 관심사였고, 특히 여러 분야의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가톨릭 청년들에게는 교회쇄신운동이 민주화운동의 연장으로 이해되었다.
교회는 마땅히 변화되어야 할 대상이었는데, 벌써 수십여년이나 지난 이야기이지만, 일부 청년들 사이에선 교회가 쇄신의 대상인가, 아니면 변혁의 대상인가를 두고 한참이나 논쟁했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의 한국교회를 두고, 가톨릭청년신학동지회에서는 ‘교회의 민족민주적 변혁’을 주장했다. 교회는 더 민중적이어야 하고, 더 민족적이어야 하며, 더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하며, 민족통일을 비롯하여 겨레가 당면한 과제에 함께 동참하려는 의지를 가진 토착화된 교회이어야 하며, 성직자-수도자-평신도 사이에 가로놓인 신분적 장벽을 뛰어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의사소통 구조를 가진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종교인들과 실천적으로 연대하는 교회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런 요구들은 교회 제도권 안에서 항상 소수의 의견에 그쳤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직자들 가운데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대체로 공감하였고, 평신도 단체들의 경우에는 제도권의 냉소적 태도를 보면서, 따로 우리끼리 교회를 세우자는 이야기도 심심파적으로 나오곤 하였다. 물론 현실화된 적은 없었지만.
2천년대를 사는 우리 교회는 형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교회의 민주화나 토착화는 어느 정도 이뤄진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부분은 1970년대부터 점점 퇴조하는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교회의 중산층화’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지만, 서울, 수원 등 거대교구를 중심으로 볼 때는 그 이상의 계층을 위한 종교적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주는 현실이다.
이는 단순히 복지시설이나 자선을 위한 기금의 절대 액수의 증가 또는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성원들이, 특히 지도자들이 얼마나 가난한 이들의 시각에서 교회와 그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민중적 시각이 빠져 있다면, 당연히 통일사목의 방향 역시 교회의 팽창이라는 호교론적 시각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으며, 교회 민주화라는 측면 역시 유력한 평신도의 권력장악과 다른 말이 아니다.
여기서 ‘유력한’ 평신도란 당연히 사회적 권력이나 재산에 비례하는 것이다. 교회가 일종의 종교적 이익집단이 되어 갈 때, 이른바 부자와 교회권력은 공생관계에 돌입하는 것이다.
예전에 교회 문제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였던 사람들은 우리 한국사회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민주화와 민족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물려서, 교회가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주목하였다.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먼저 교회 구조의 변혁을 요청하였고, 민족통일의 과제 해결에 나서기 위해서 교회에 만연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적 역할이 무의미해진 지금은, 대다수의 순진한 신자들, 그리고 일정한 지지 기반이 필요한 정치인들이나 물질적 안정에 정서적 안정감을 덤으로 얻기 위한 고객이 교회를 출입하고 있다.
실제로 냉담자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청년, 지식인, 노동자, 농민의 구분이 따로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아파트가 새로 건설되고 입주하는 현장에선 이른바 넥타이 부대와 그 식솔들을 고객으로 하는 성당, 예배당, 사찰들이 들어선다. 그 중에서 가톨릭교회는 당연히 선수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중심의 교회론이 나와야 할 판이다. 아파트 생활양식에 맞는 선교론이 제출되어야 성직자들에게 할 일이 생길 것 같다. 생활적으로 자본주의에 충분히 길들여진 전사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당연히 종교간 경쟁 또한 치열할 수밖에 없다.
교회 안에서 정치적 사안이 그다지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회 제도권이 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당연히 교회 내적인 문제에 한정될 수밖에 없고, 냉담자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교회가 이른바‘위기관리’라는 차원에서 사목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라고 하겠다. 그 결과는 신자들에 대한 재교육과 신자들에게 대한 조직적 관리로 나타났다. 이는 신자들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귀속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특정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계층이 한정되어 있으며, 구역반 모임 역시 본당활동의 보조적 기능이나 신자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신자들은 지극히 세속적인(자본주의적인)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종교적 이상(理想)은 교과서의 한 구절 정도로 이해하며, 주일미사와 전례적 요구에 따른 단순한 종교적 의무를 행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만족하고, 생활은 철저히 자본주의적 방식을 따르게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계층은 절두산이나 성지에서 주기적으로 (재물로) 봉헌하고 기도함으로써 개인과 가족의 복을 빌거나, 병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오순절마을이나 그 외에 영험이 있다는 안수기도회를 따라 다니며 자신이 가톨릭교회 안의 충실한 종임을 확신하고 있다. 결국 비(非)정치화된 교회의 모습이란, 공무원 같은 성직자를 낳고, 어기지 않고 제때에 세금을 낼 줄 아는 성실한 국민 같은 신자를 낳으며, 교회는 각종 서비스 기관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심리적 또는 실제적인 이익을 줄 수 있는 거래소가 된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 중에는 교회에 관하여 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른바 종교적 이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종교적 이상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극히 세속화된 사회에서 어딘가 염증을 느끼고 종교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영성을 찾는다.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영적으로 깨어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헌신하며 복음적 원천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권력에 대한 혐오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제한 없는 사랑에 충만한 사람들이다. 진리는 종교/종파를 초월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명시적인 신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통하여 누구나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담아낼 그릇을 마련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예’라고 답변할 수 있는 교회는 복되다. 지금은 해묵은 교회쇄신의 과제에 대해 다시 논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은 예전보다 영리하고 성숙하였으며, 그래서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것을 교회에 요청한다. 교회는 정말 거룩한가? 하고 말이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 때, 예전에 사람들이 무수히 던졌던 다른 모든 질문에도 답이 될 것이다.
197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으니까, 한국교회를 위해 번역된 지 벌써 30년이나 지난 책이 한 권 있다.‘희망을 갖기 위하여’란 부제가 붙은 <하느님을 찾아서>(분도출판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 상지대 신학교수였던 네메세키가 지은 것으로 지금 다시 읽어도 생생한 맛이 더욱 살아나는 것 같아서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는 독자들이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부탁드린다.
네메세키 교수는 프랑스 신학자 로랑땡의 저서를 빌어서 가톨릭교회 안에 보이는 다섯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 유형 가운데‘나’는 과연 어떤 유형에 속할까?
(1) 보수적 그리스도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방침이 지나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로서, 공의회 이전 상태로 교회를 복귀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요한 23세 교황의 개혁사상 때문에 교회가 개신교와 비슷해졌으며, 가톨릭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고 본다. 이들은 현대적 사상 조류를 불온시하며, 교회는 절대불변의 영원한 진리만을 선포해야 하며, 다른 새로운 경향에 관심을 갖는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취급한다. 가톨릭 신자 가운데 이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지만, 재계(財界)의 지지를 받으며, 바티칸에도 그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네메세키는 이들에게는‘장래성이 없다’고 표현하였다.
(2) 진보적 그리스도인(필자가 붙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공의회를 쇄신의 출발점으로 하여 계속 전진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쇄신을 합법적 수단을 통하여 실현시키고자 한다. 연구를 거듭하고 대화를 계속하며 사람들을 납득시켜 교회당국의 승인을 얻은 방법으로 쇄신을 이루고자한다. 이를 이루는데, 교황청과 각 대륙, 나라의 주교회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네메세키는 가톨릭교회의 변화는 이들의 생각, 노력, 용기, 성령의 인도하심에 달려 있다고 본다.
(3) 급진적 그리스도인: 교회의 모임과 조직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교회 쇄신은 점잖은 방법으로 실현시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교회 지도부를 향해 연좌데모나 항의집회를 연다. 그들이 바라는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이며, 복음대로 생명을 걸고 실천하면서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다. 스페인, 남미, 이태리, 프랑스, 네덜란드 등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이다.
(4) 개인적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현대 교회의 제도와 활동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이러한 사람들은 신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형식적이라고 여기는 전례적 삶을 포기한다. 가난한 이들의 벗인 그리스도와 멀어진 교회는 부자들과 자본주의에 타협하고 있다고 보며, 성사(聖事)마저 형식적 부담으로 느낀다. 그들은 자기가 교회조직과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교회의 쇄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교회 쇄신에 대한 의욕을 아예 접어둔 채, 자신의 삶 안에서 독립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5) 지하교회 그리스도인: 교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품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나 성사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 교회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대안 교회의 건설에 열정을 쏟는다. 그들은 지하(地下) 교회를 이루어, 교회의 공적 조직과 상관없이 별도의 성찬례를 행하고, 공동으로 기도하며, 대화나 토론방식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복음정신에 따라서 공동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모임만이 그리스도의 참된 아가페, 사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것이 현대세계에 적합한 생활방식이라고 믿는다.
네메세키 교수는 성령이 분열이 아닌 일치를 위한 영이기에, 교회의 분리를 낳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유형에 대하여 그 심정은 이해되지만, 위험한 태도라고 여긴다. 한편 교회는 세 번째 유형의 예언자적 행동에서 자극을 받아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전교회의 일치를 지키면서 전교회가 성령의 영원한 젊음에 부추김을 당해 젊음을 되찾게 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바라는 하느님의 원의(願意)”라는 것이다. 그럼 2004년 여름을 넘기고 있는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네메세키 교수가 소개했던 다섯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은 2004년 한국교회에도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 지 꼭 30년이 되어가지만,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넘어오면서도 예전의 구도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교회는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사건 이후로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거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특히 그 과정에서 등장한 정의구현사제단은 중남미의 해방신학과 기초공동체 건설에 비견할만한 변화를 겪었다. 민중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과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사제들의 헌신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중남미 교회의 경우에는 중남미 주교회의 자체가 1979년에 푸에블라문헌에서 보듯이, 그 시대적 징표를‘민중해방’에 두었으며, 해방신학을 중남미의 공식적 신학으로 공인하였다. 그러므로 네메세키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교회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였다는 점에서 교회의 희망적 전망을 열어주었다. 그들은‘합법적으로’교회를 쇄신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상황은 달랐다. 1970년대에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김재덕 주교, 두봉 주교, 1980년대의 윤공희 대주교로 대표되었던 진보적 교회 지도자는, 교회적-사회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진보적 견해를 관철하지 못했을 뿐더러, 1970년대부터 이제까지 내내 정치-종교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대표하였던 몇몇 주교들이 1987년 이후에는 교회 지도권을 장악해 왔다. 이는 점차 전국적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후의 정치-종교적 보수화 경향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른바‘한국교회는 로마교회의 복사판’이라는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계성체대회 당시에 ‘로마보다 더 로마 같은 한국교회’라는 말이 나왔다. 그 사대주의적 경향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낳은 토착화 논의를 압도하였다. 비슷한 예전의 교리-신학적 태도에 한복만 걸친다고 아조르나멘토가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교회 안에서 진보적 주류를 형성하였던 사람들은 세 번째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이를 위해 복음적 가난을 살고 영적으로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을 위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였으며, 그 현장에서 민중을 위해 헌신하면서 복음을 증거했다. 그리고 민중에 대한 그 열정과 교회에 대한 사랑이 컸던 만큼 안온한 교회에 대한 비판의 강도도 높았다.
1984년에 조직된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를 비롯해서 그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진보적 교회 단체들의 목적란에는 늘‘사회복음화’와 나란히 ‘교회쇄신’이란 문구가 뒤따라 다녔다. 교회가 곧 자신의 신원(身元)이며, 자기 운동의 원천이 투명하고 자랑스럽기를 원하였던 까닭이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젖을 먹고 힘을 길러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젖은 대체로 메말라 있었다. 어머니는 대체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자였던 큰아들의 환심을 사는데 골몰했으며, 가난한 둘째 셋째 아들에겐 상당히 무심하였다. 한국교회에서는 명백한 다섯째 유형의 그리스도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인 공교회의 무심함 때문에 스스로 젖을 얻을 방도를 모색해야 하였던 이들은 이른바‘공동체 전례’라고 부르는 살아있는 전례를 행하고자 하였다.
본당 미사를 참례하지 않더라도, 간헐적으로 주어지는‘의식있는’사제가 집전하는 소규모의 전례에 참석하며 서로 격려하고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공교회와의 형식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자신들의 사회-종교적 열망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통로를 열어두고 있었다. 교회 제도권의 입장과 무관하게 ‘교회’ 그 자체는 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친교와 투쟁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교리적 태도와 상관없이, 여전히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평신자/수도자/사제들이 그 교회 안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 제도권에 대한 저항세력이면서, 동시에 교회가 완전히 부패하지 않도록 막아주는‘소금’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의 한국교회에 가장 큰 도전은, 교회를 떠나 개인적 신앙을 살고자 하는 네번째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 공교회에서 쉽게‘냉담자’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 스펙트럼은 지극히 다양하다. 이들의 영적 갈증이 크고 선명할수록 교회에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2000년대야말로 한국사회가 처음 맞는 개인주의 시대가 아닌가?
일전에 어느 일간지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읽은 기억이 난다. 최근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돈’과‘건강’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몇 년 전에 동네에 있는 대안고등학교에서 한동안‘종교와 사회’라는 과목을 맡아서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종교-사회적 의식과 상관없이 제일 큰 소원이‘돈을 버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래도‘대안’학교 학생들인데, 돈 버는 게 지상목표라니, 참 마음이 답답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 상황은 가난한 집안에서나 부유층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서 강남의 부자들은 부동산에 투기에 발목이 잡히자 아예 돈을 묶어두고 있다고 하며, 가난한 이들은 필사적으로 생계를 돕기 위해서 동동걸음이다. 첨단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새로운 세대들은 어려서부터‘돈버는 법’을 부모에게서 배우고, 인터넷/매스컴을 통하여 상술(商術)을 전수받는다. 이들에겐‘자발적 가난’이나‘청빈’이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과 먼 이야기인지 가늠할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실천적으로‘비종교적’으로 바뀌었다. 염치보다는 실리를 챙기는데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은 ‘그 이상의 것’을 찾는데 인색하다. 종교는 이미‘거룩함’의 영역조차 실리를 챙기려는 상인(商人)정신에게 내어주고 있다. 부자들이 구태어 대형매장을 두고 백화점을 찾는 심리를 알아챈 교회는 최고의 고객에게 어울리는 시설을 갖추고, 그들을 중세의 귀족들처럼 배려하고 있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빌딩숲 사이로 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성당은 무늬만 거룩한 채 중세기의 웅장한 성채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교회를 알지 못하는 외부인들이 미사에 참례한다면, 아마도 가장행렬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어떤 성당의 경우엔 천장을 노아의 방주모양을 디자인하였다는데, 거창한 샹들리에와 조명 탓에 마치 방주는커녕 우주선 내부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SF 공상과학 영화에서 자주 보듯이, 성당 안에서 외계인들이 비밀집회를 여는 장면 같다.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말이다.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집중적 관심 역시 이러한 속물적 자본주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돈이 된다면 뭐든지 팔아치울 기세로 달려드는 세상이 낳은 것은 결정적으로 환경-생태계의 파괴였다. 대부분의 한국민들은‘도시’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고, 그 도시란 물과 공기와 흙이 오염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들은 대부분 농약에 찌들린 곡식과 온갖 식품첨가물이 범벅이 된 음식을 먹는다. 아이고 어른이고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있고, 정갈한 음료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시민들은 생존경쟁과 부자가 되지 못한 절망감에 싸여있다.“안녕(安寧)하세요!”라는 말 대신에“부자 되세요!”라고 바뀌어 버린 인사말은 이들이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고 절망적인지 잘 알려준다.
사람들의 몸과 영혼에 들어가는 것들이 죄 이 모양이니 당장에 드러나는 결과가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암(癌)이다. 이를 두고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가릴 수는 없다. 세상이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임을 포기하게 만든다. 사람 안에 깃든 하느님의 모상을 찾을 길이 없다. 그 이상의 것, 거룩함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탓이다. 단박에 스스로를‘성(聖)교회’라고 부르는 종교집단을 떠올리게 되지만, 교회가‘저들만의 천국’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되지 못한다. 교회는 자본 중심의 세계에 떠있는 대안적 섬이요 빛이요 소금이 아니라, 대체로 자본 중심 세계의 종교적 형태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교회는 질병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제일 먼저 긍정적으로 떠오르는 것은‘호스피스 사목’이다.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라도 거룩함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에서는 교구마다 병원을 많이 운영하지만, 가톨릭병원이 유달리 다른 일반 병원보다 복음적이라는 표징은 없다.
그리고 남아 있는 종교의 영역은 꽃동네, 오순절 마을, 성령세미나 등의 공신력(?)있는 안수기도회뿐 아니라, 이른바 성령의 감화를 듬뿍 받은 뛰어난 개인들에 의한 안수기도다. 이들은 교회-신앙의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치병(治病)을 하겠다고 자청하고 있다. 질병에 고통받는 이들의 간절한 요구를 담보로 잡고, 이 병자들을 지배하려는 음험한 욕심이 보이고, 성령을 말하며 뒤에서 복채를 챙기는 사제-수도자-평신도 치유자들의 기적행위를 보고 다시 한번 종목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자본의 힘을 느낄 뿐이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대안적 가치를 잃어버릴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앞서 언급했던 ‘개인적 그리스도인’의 출현이다. 더 이상 교회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낀 진지한 신앙인들은 ‘복음적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사랑은 ‘무한한’ 에너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한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치지 않고 퍼서 쓸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특출난 영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현실을 사는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소유한 에너지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겠다. 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세상을 위하여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질적으로 에너지가 작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절약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변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일에서 아예 손을 거두어들이고, 효과 있는 사랑을 위한 투신에 자기 에너지를 나누기를 원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교회쇄신’이란 주제는 교회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고 그 변화를 꾀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주는 과업인데, 자기 경험을 통해 교회쇄신의 어려움을 체득했던 사람들은 에너지를 방향을 바꾸어, 교회쇄신보다는 보다 확실히,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조율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자기쇄신을 위해 공력을 쏟는다.
타인을 변화시키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타인들이 움직이는 ‘교회’라는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몇몇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개인주의적 신앙인들은 ‘자기 변혁’을 통하여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한다. 공동체로서 교회가 복음을 살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그와 상관없이 복음을 살고자 원한다. 이러한 길을 걷는데, 교회란 울타리는 때때로 불필요한 간섭을 해대는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 교회는 스스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마저 ‘교도권’이라는 잣대로 헛갈리게 만든다고 믿는다. 간섭 없이 자유롭게 ‘복음에 기대어 사는 것’이 그에게 충만한 기쁨의 원천이 되는 까닭이다.
개신교의 경우에,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영향을 받아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무교회주의’ 정신은 이런 생각을 공감하던 사람들이 시작한 신앙운동이다. 김교신, 함석헌 등은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통하여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지만, 정례적인 짜여진 전례도 성직자도 없이 개인적 성화(聖化)에 목숨을 걸고 복음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왔던 사람들이다. 그러한 삶은 성서와 성령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며칠 전 대학 동창이 집에 찾아 왔는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 얼마 전까지 교리교사를 하느라고 정신없이 바빴다고 한다. 그런데 교리교사를 그만 두자, 불쑥 성당에 왜 나가야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교리교사를 하는 동안에는 자기 일 때문에 ‘교회와 신앙’에 대하여 사실 깊이있게 성찰할 기회가 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나자 정신적 여유도 생겨서, 강론말씀도 다시 듣게 되고, 교회 분위기도 다시 살피게 되고, 결국 자신이 봉사해왔던 교회가 그다지 복음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급기야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짜증을 느낄 바에야 차라리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게 죄를 덜 짓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많은 이들이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몇몇 영성가(?)를 빼고는, 자기 성화나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당에 열심히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당에서도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활동에 매진한다. 맡겨진 일과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느 누군들 교회 활동에 계속 몰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에게 교회는 ‘가치중립적’이다. 교회 자체가 복음적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서 마땅히 할 일이 있으면 족하고, 어떤 성취감과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충분치 않다는 게 복음적 요청이다.
교회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개인적 신앙을 가다듬는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과 세상,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서조차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진지한’ 신앙인인지도 모른다. 교회가 돌보지 않은 신앙을 스스로 돌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메세키 교수의 분류대로라면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선배가 있다. 그녀는 ‘급진적 그리스도인’이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노동사목에 종사하면서 ‘자발적 가난’을 통하여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의 처지에 가슴아파하면서, 복음적 요청 그대로 살려고 애를 써왔다. 그가 자신을 송두리째 세상과 인간을 위하여 ‘가톨릭신앙’을 고백하며 봉헌해 왔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교회 제도권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너무 과격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톨릭교회의 외피를 쓴 빨갱이라는 오해도 받았을 것이다.
노동자 출신이었던 그녀는 1970년대의 가혹한 노동의 시절을 거치고, 스스로 노동자의 벗이 되기로 작심하였다. 1980년대 90년대의 폭력적인 노동세계 안에서 그가 한 일은 참으로 인간다운 요구였지만, 전통적으로 ‘반공주의’를 표방했던 교회는 색안경을 쓰고 노동운동을 바라보았으며, 그녀가 활동했던 교구가 1970년대 이후에 줄곧 친정부적 보수색깔을 유지해왔던 곳이기 때문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도 그만큼 컸다. 밥 한술은커녕 쪽박을 깨지 않으면 다행인 형국이어서, 어머니인 교회가 그녀에겐 엄마노릇을 거절했다고 보면 맞겠다.
어느 날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에 활동을 하는 자녀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요즘 내가 무슨 지향으로 묵주기도 하는지 알아?”
“모르지.”
“엄마가 회개하고 성당에 다시 나가라고 기도해.”
“……”
레지오를 맡고 계신 수녀님인지 누가 아이에게 엄마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성당에만 나가면 ‘열딱지 나서’ 그냥 있는데, 아마도 수녀님 보시기에 그 아이의 엄마는 ‘냉담중’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자기 자식이 엄마의 회개를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선배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평생 자신을 한 번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선배였기 때문이다. 그 신앙 때문에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오고 헌신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선배는 다시 한번 교회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게 뻔하다. 복음 앞에서 부끄럽게 사는 교회가 보잘것 없는 형식적 잣대로 신자들을 냉담자로 낙인찍거나, 가슴이 식었는지 미리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주제넘은 짓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야 말로 ‘내 탓이요!’ 운동을 자신을 겨누어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산골에 내려와 산 지 5년 동안에, 참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초록은 동색(同色)이라고, 예전에 사회운동을 하다가 시골에 내려와 사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가톨릭 신자였던 사람치고 지금도 성당에 나가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소식이 닿아서 친구들을 만나면, 한 때는 첫 인사가 “너, 요즘 성당에는 나가냐?” 하고 묻곤 하였다. 그들은 ‘애석하게도’ 예전보다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 있었다.
운동만 알던 사람이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전투적인 해방신학만 아니라,
자연에 맛들이며 사는 법을 몸에 익혔다. 많이 평온해지고 좀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신앙, 성당…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웃고 만다. 할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결코 냉담하지 않다. 여전히 가슴이 따뜻하고 복음적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당에는 나가지 않지만 사제들과 교회에 대하여 좀더 너그러워진 것 같았다.
그들에게 교회는 일종의 ‘관료사회’였다. 그 울타리가 무력한 자신을 보호해줄 때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에는 갑갑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어머니가 없이 아버지만 있는 교회는 너무 유치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는 동시에 ‘종교적 독립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문득 예전에는 아이들 교리반을 초기교회 신자들이 쓰던 이름 그대로 ‘명도회(明道會)’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조건 믿을 교리를 그저 답습하는 ‘교리반’보다는 진리를 밝히는 ‘명도회’란 이름에서 더 활력있는 신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잿밥보다 염불에 마음 쓰는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교회가 아쉬운 시절이다.
교회의 처지로 볼 때, ‘개인적 그리스도인’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경우일지 모른다. 그들은 기존의 제도권 교회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교회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길 원하지만, 교회의 사목적 관행과 교회문화의 변화, 그리고 영적 개혁과 복음적 진정성의 회복이 이루어진다면 언제든지 교회 지도부의 용기있는 행동과 교회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시는 성령의 은혜에 감복하여 갈채를 보내며 다시 교회의 품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어머니 없는 자식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뼛속 깊이 새기고 사는 게 그들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엄마 역할을 포기했을 때, 떠밀려난 자식들은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엄정한 현실 앞에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들이 복음서에 나오는 탕자였다 하더라도, 아버지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마음 깊은 곳에 경험적으로 깔려 있지 않았다면, 그 탕자는 결코 종의 신세로라도 집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대받더라도 남의 밑에서 받는 설움이 부모에게 설움 받는 것보다 덜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원숙한 어머니와 관대한 아버지라고 믿기에, 남의 종살이보다야 나으리라는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그날이 올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못된 부모 밑에서라도 슬하에 깃들어 사는 형제들이 있다는 생각에, 그 자매형제들을 생각해서 함께 고난을 겪기로 다짐하는 장한 자녀도 있을 법하다. 그들에게 어쩌면 좀더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다른 데서라도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떠나도 혈육지정(血肉之情)은 사라지지 않듯이, 교회를 떠나도 교회에서 쌓았던 애증(愛憎)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관계가 없는 이들끼리는 증오도 없고 당연히 사랑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다양한 계기를 통하여, 다른 사상과 종교에 입양되는 경우도 있다. 나름대로 판단하기에 더 따뜻하고 양육적인 양친을 만나게 되면, 그녀가 생모(生母)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와 교회 아닌 어떤 것들을 모두 초월해서, 더 큰 어머니(태모 太母)가 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 어머니가 양육적이라면 거기서 그들은 ‘생명의 하느님’을 만날 것이고, 그 어머니가 공정하다면 거기서 그들은 ‘정의로운 하느님’을 만날 것이다. 그 어머니가 나를 위로해 주신다면 거기서 그들은 ‘치유자이신 하느님’을 만날 것이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든 그 이름이 이젠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를 부처라 한들, 그를 예수라 한들, 그를 알라라 한들, 그를 하늘이라 부른들, 그를 땅이라 부른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새로운 얼굴을 가진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관세음보살을 만나고, 어느 어둑한 골짜기에서 인디언 어머니를, 가이아 여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위험하고 불온하고 이단적이며 어처구니없으며 한심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교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가장 불행한 전(前)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나름대로 행복하지만, 교회는 그들이 얄밉고, 그래서 ‘반(反)그리스도’적이라거나 ‘악마주의’가 될 수 있다는 꼬리표까지 달아놓는다.
그러한 흐름을 가리켜 종교학자들은 ‘신(新)영성주의’라고 부르고, 인천교구의 차동엽 신부 같은 이들은 신영성운동의 부정적 측면을 고취시킨다는 의미로 ‘신흥영성운동’이라고 고쳐 부르기를 주문한다. 그래야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이 운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즉각적인 직감, 곧 경계심을 갖게 될 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사목 2004년 4월호 121쪽). 이러한 태도는 신영성운동에 대한 교회의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교황청에서도 이미 1993년에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미국주교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문화평의회와 종교간 대화평의회에서는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이라는 부제가 달린 문헌을 발표하여 뉴에이지운동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가장 긴급한 도전 중의 하나”이며, “위기에 빠진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응답”이라고 밝혔다.
한국 주교회의 역시 신앙교리위원회에서 뉴에이지운동을 포함한 신영성운동이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친다’는 소책자를 1997년,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사목>지나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여러 교회간행물에서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어쩜 위기에 빠진 것은 문화가 아니라 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 위기는 다름 아닌 교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시대의 징표가 될 수 있다. 구태의연한 교회를 위한 하느님의 극약처방 같다는 말이다. 이젠 교회 밖에서 ‘영성’이라는 주제가 더 많이 더 대중적으로 더 실감나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참으로 생각해 볼게 많은 현실입니다. 활동할 수 있는 사람(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외되고, 분리된 사람들보다 현실적으로 갖출것 갖춰진..) 들만의 교회가 되어가는게 아닌가...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