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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12월16일 수요일 맑음
16년만에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선거 날이다.
부친 금화 숙모 삼촌 모두 선거하로 가고 나는 가지 않았다.
혼자 점심을 챙겨먹고 티브이보다 책도 보고 저녁부터 개표가 시작데어 기도를 하면서 새벽 4시18분까지 개표 보는데 노태우 후보가 처음부터 계속 압도적인 표차이로 선두로 표를 전국적으로 골고루 얻어서 당선은 확실한데 얼마나 많은 표차이로 승리하느냐 당선이 대느냐가 관심이였다.
4백5십만 표가 넘어갈 때 잠자리에 들었다.
노후보 어머님이 구인사에 오시고 권익현 정각회 회장님께서 11월18일 구인사 대조사님 개금불사에 동참하시고 불교를 중흥 하시고자 많은 불사를 도와주시고자 공약 하셨다고 종보에 기사 났으며 전국에 많은 불자 도반이 노후보를 지지하고 있으무로 필승하리라 믿어 으심치 않았다. 공든 탑이 무너지나 한술 밥에 배부를까?
인생 모든 것이 짓는데로 받으니 지성으로 마음을 닦을 지어다.
87년 12월17일 목요일 맑음
이모 외숙모 안동에서 만나자 하여 금화가 안동 갔다.
오늘은 식전에 전화가 왔다. 대구 이종 준연이 한태서 금화를 안동에 나오라고 했다.
외숙모와 이모가 금화결혼 얘기를 들어보려고 안동으로 불러내서 가기로 하고
배추를 부친이 다듬고 금화는 소금물을 하여 절였다.
아침을 먹고 준비하여 택시 불러 타고 갔다.
대통령 당선 결과 개표 뉴스를 보며 청첩장 인쇄물을 이웃과 친척에 부치고 돌리고 부친은 배나들 할배 생신 술 잡수로 가시는대 이웃에 돌릴 것 논아 드리라고 드렸다.
혼자 점심을 먹고 저녁 때 피마자를 숙모 와서 푸고 미산댁 배추 다듬고 나간 것을 다시 골라 먹는다고 가지고 가고 상명네 두포기 시목네 두포기 미산댁도 두포기 옥신네 다섯 포기 우리 쓸 것 다섯 포기 두고 오국네 세포기 이렇게 논아주었다.
저녁에 떡국을 끓여서 부친과 먹고 있다니 금화가 안동 갔다 오는데 외숙모와 이모 두 분을 만나서 혼수품을 푸짐히 사주는 것을 가지고 왔다.
정산에 들려서 제수씨와 있어던 모든 갈등을 속 시원히 털어놓고 말 다하고 왔다며 얘기 했다.
잘했다 하고 있다니 동생 제수씨 선예 기성이 대리고 들오는 소리 선예가 고모야 했다.
어서 오라하고 이런저런 얘기가 시작 데었다.
그동안에 서로에 의견 충돌로 섭섭함이 있어다는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 하니 아무것도 아니였으나 서로가 원망하고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이것으로 털어버리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 가련다.
모든 것은 연극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연극을 하지 않고는 안 대기에 일막은 내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 되므로 막을 내리는 그날까지 부처님 뜻에 따라 살아가련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87년 12월18일 금요일 맑음 김장담는 날이다.
정산동생이 버스로 넘어갔다.
아침을 먹고 누어다니 큰집 종형수 오셨다 얘기하다 가고 제수씨 배추 씻었다.
점심떡국 삶아먹고 미나무 할배 형수도 함께 먹었다.
나는 피마자를 발로 비벼 깠다.
할배 영레이디 책을 보시고 큰 글씨로 다시 써놓으라 하셨다.
뒷집 앞집 길수모 종숙모 미나무 할매 등등 많은 사람이 오셨다 가시고 금화는 청소하고 나는 소죽을 끓이고 서로에 잘못을 이해하고 풀고 함께 살아야한다.
우리는 같은 운명체이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우린 어쩔 수가 없다.
티브이보다 기도하고 취침 한다.
금화 제수씨는 큰집에 놀러 갔다 와서 잤다.
87년 12월19일 토요일 맑음
제수씨 버스로 애들 대리고 넘어가시고 금화는 빨래를 하였다.
내일 혼수품 사둔 것 시댁으로 보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안동 형수씨가 와서 정리해서 넣어 주고 가셨다.
정산 동생은 청첩장을 모두 대밭골 안마 품무골 종매가 갖다 주고 넘어갔다.
면사무소 농협담당직원 지도소 등등 모두 논아 주고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나가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가고 기도 한후 잤다.
12월 20일 맑음 일요일 금화 혼수품을 보내다.
어제 밤 꿈속에 합회(合會) 라는 글자를 보았다.
모을합 모일회라 오늘 혼수품을 모아서 시댁으로 보내는 날이라고 꿈에 이런 글자를 보아 쓸까?
부친과 금화 사모아 둔 것을 가지고 정산 가서 아침을 먹고 티브이를 사가지고 제수씨와 안동으로 갔다.
나는 아침을 찾아먹고 티브이 보며 안동에서 연락 전화 종형수도 나오라고 하여다.
기준이 전화로 불러서 소죽을 주고 저녁 소죽 안처 달라했다.
점심 먹고 하양 김정희 한테 편지를 쓰고 티브이 보다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소죽 부엌에 불을 넣고 마당을 쓸어다.
큰아버지 나오셔서 혼수 짐을 보내기 위하여 부친 금화 제수씨 안동 나갔다는 얘기와 청첩장 돌린 이야기를 드려쓰며 잠시 후 나가시고 제수씨 3시반차로 들와다며 아부지 저녁 먹고 보낸다고 하여다.
그렇게 하시라 하고 금화 부친 7시 넘어서 영구 경운기타고 와다며 문열어라 한다.
볼일이 잘 데어 모두실어 보내고 이것저것 준비 해 와다.
저녁먹고 안동 숙모한태 종형한테 전화 드려다.
수고 하셔다고 더러 빠진데 청첩장을 보낼여고 마지막을 점검해 놓고 일기쓰고 기도하고 잤다.
21일 맑음 월요일
큰어머니 옥신 엄마가 나와서 배추 다섯 포기를 가지고 갔다.
대강 집안을 청소하고 낮에 종형수 영구모 오셔다.
이야기 하시고 놀다 저녁때 가시고 나는 소죽 끓이고 오늘은 이길자 최재근 김옥순이 등등 연명으로 잔디회 자봉팀이 신년 카드를 보내 와쓰며 최화열이는 개인으로 카드가 와다.
기쁘게 받았다. 정말 하루종일 기분이 좋 하다. 나는 어떻게 보답할까?
저녁에는 티브이 보다 기도하고 오늘이 이렇게 지나가고 취침 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12월 22일 화요일 흐림
동지 팥죽 쑤는 날.
오늘은 금화 정산가는데 쌀 3승 공양미 안동 해동사 시주하라고 제수씨 가는데 보내고 우표도 사오고 청소년회도 참석하고 나는 집에 누어 책을 보다니 숙모 왔다.
술 단지 안씻어 준다고 여러 말 시비를 한다.
나와 입씨름 하다니까 집배원이 왔다.
밀알들에서 보내준 책자 정형란 기자께서 5권이 여다. 감사하게 받아서 읽어보았다.
숙모는 시목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소죽도 퍼주고 술도 걸으고 청소를 해주고 갔다.
상명이내 엄마는 찹쌀떡을 해다며 한 그릇 가다주고 가고 뒤집 할매 막걸리 일승도 드려다.
권기팔씨도 와서 술을 한잔하고 갔다.
농협에서는 영농자금 쓴 것 이자라도 좀 끈어 달라고 왔다가고 소죽 끓이다니 제수씨 금화 넘어왔다.
세탁기 가지고 왔다
절에 갔다와다는 이야기 김서방 24일 날 온다는 이야기 등을 해다.
저녁에는 종숙모도 놀러오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새벽 한시가 넘어서 모두 간 후 취침 했다.
정산에서 떡을 해 와서 진영 앞에 공양 올려다.
23일 수요일 맑음
망년회 겸 금화와 송별식 한다고 여러 동생 친구 들이 와다.
지도소 금차영씨는 법주를 한 병 사가지고 왔다. 이웃 아지매내 할매내 놀러 오셔다.
안동 형수도 함께 저녁 먹고 놀다 큰집에 나갔다.
젊은 사람들 맥주 한 상자 사오고 동생 돼지 3근 사오고하여 먹고 흥겹게 놀앗으며 오늘은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집안 대청도 하고 고추장도 담고 된장 단지도 씻었다.
오늘은 이렇게 기분 좋게 하루가 지나가는데 막내 동생이 시집을 간다고 이렇게 모여서 흥겹게 놀아주니 한편 기쁘고 한편은 서운하며 희비가 교차하여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제 2틀 밤을 자고나면 집에서는 결혼 전 그만 인것 갔다.
앞날에 부디 행복을 기원 한다.
12월24일 맑음 목요일
매부가 태상을 가지고 왔다.
오늘은 매부가 결혼을 이틀 앞두고 태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온다는 날인대 오전에 금화가 솥을 씻어 물을 끓여서 나에 목욕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해주었다.
선예와 기성이도 나와함께 목욕을 하고 선예와 기성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에 등을 얼굴을 씨겨 준다. 기특하고 귀엽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 이렇게 착한 족하 애들과 동생들을 두어서 잠시나마 행복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옷을 갈아입고 점심을 먹은 후 김서방이 온다던 시간에 오지 안아서 금화가 시댁으로 전화를 너으니까 곳 도착 한다고 했다.
4시가 넘어서 김서방이 푸짐한 태상을 가지고 와다.
이종사촌 택시로 와다며 시간이 없다며 음료수 한잔하고 곳 돌아가고 저녁 큰집 형님 형수 큰아버지 큰어머니 두 분 시목으내 모두 왔다. 논아 먹고 큰일 치룰 이야기 하시다 가셔다.
기도 좀하고 티브이보고 정산 동생과 선예 이모도 함께 와서 먹고 놀다 잤다.
12월 25일 금요일 맑음
금화가 내일 결혼식을 올리기 위하여 오후에 선예 이모랑 정산으로 넘어갔다.
오전에는 큰집 형수가 와서 오합과 3일 반찬을 만들어 너어다.
저녁에는 종숙어른이 나와서 술을 접대하고 금화는 해동사에 가서 잔다는 것 확인하고 사돈지 부탁한 것 강월스님께 부탁하고 오합 담아주는 순서 제일 위에는 엿을 다음 밤 세 번째는 대추 4번째 소고기 5번째 적이나 과자 등 순서로 어느 집을 막론하고 그렇게 담아 보낸다고 했다. 많은 것을 배워다.
저녁 늦께 동생과 선예 이모 넘어와서 저녁 먹고 회제 줄 것 얘기하고 토론 한 뒤 봉투에 모두 너어서 부친께 보여들이고 이렇게 가지고 갈 것 모두 챙겨놓고 묶어놓고 오합을 제수씨 틀 위에 올려 노은 것을 넘어뜨려서 동생이 다시 사와서 담아놓고 자정이 넘어가서 취침 하여다.
12월 26일 토요일 맑음 막내 금화가 시집가는 날
오늘겨울 날씨로는 30년 만에 최고 기온으로 3.4일째 영상 10도 이상 오늘은 15도까지 올라갔다.
새벽이 데자 부친 먼저 일어나서 소죽을 끓여주고 준비를 하시고 제수씨도 아침을 일찍이 하여 6시반경 아침을 먹어다.
모두 옷 갈아입고 웅은 잘 보내고 올게요 하고 제수씨도 갔다 올게요 하여 잘 다녀 오라하고 나는 맨날 하는 집안 청소하고 닦고 처막도 쓸고 마당도 쓸었다.
식전에 길수부친께서 질여 같이 생각하던 자내 동생이 결혼하는데 못 가봐서 부조라도 한다며 돈5천원을 주고 가신다.
오늘이 길수 조모 소상제사가 들었다.
세수하고 들어와 있다니 안동 종형수 전화가 와다.
오지도 못하고 섭섭하지만 넓이 마음먹으라고 나를 위로 한다. 모두 나간는지 물었다.
안동 큰 숙모도 너는 애쓰고 참석도 못하고 어쩌노 하며 위로하고 동정을 물어 10시경 식당으로 도착 할 것이라고 전하고 조금 있다니 금화가 해동사에서 아침을 많이 먹었다며 잠도 잘 잤다고 전화 와다.
첫차로 신현숙이 온다며 끈어다.
누워다니 반장아제 오셔서 농협 돈 부채 이야기하고 있다가 술 한잔 대접하고 소죽을 좀 주고가신 후 세수하고 12시10분경부터 한 시간 반 동안 금화결혼 축하기도를 하고 노숙어른과 무승씨 오셔서 큰일에 참석 못하여 미안하다며 인사 말씀을 하시고 갔다.
점심을 혼자 먹고 있다니 앞집 친구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 서섭 하제 했다.
딸자식은 남에 집으로 가야하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야지 섭섭함이야 말로다 할수이나 하고 최현숙씨 소리가 났다.
잔디회 봉사 4명 이길자 최경희 김덕희 당연회원 총무 광배하고 이렇게 나를 보고 가려고 들왔다.
잠시 앉았다 가고 떡을 가지고 온 것을 먹고 사과 나쁜 것 가지고 와서 깍아 먹고 영레이디 보고 녹음 태푸 듣고 있다보니 올 시간이 대어서 나가니까 부친삼촌 먼저 오셔다.
상명아빠를 불러서 총무를 업고 기열내집 앞까지 가서 택시타고 가라고 부탁했다. 고마웠다.
길수자형을 두 분 만나고 흥숙씨 상철부 신식 사형 이렇게 만나 인사하고 병일조부 도목 할배 미나무 할배 모두 큰일에 갔다 오신 어른들이다.
모티제 넘어 갔다 모두들 봉고차로 왔다갔다.
집에 들어와 조금 있다니 제수씨 숙모 형수 모두 애들 대리고 들왔다.
대강 무사히 잘 치루고 모두다 잘 왔다간 이야기 듣고 부조 들어온 방명록을 보고 봉투를 보니까 진고종숙 형제분과 신승규씨 인천 족조 여주어른 방송국에서 신문사에서 기자 등등 알려 달라 하더니 오지 안아다.
그래도 식당에 들어간 우리 손님이 백 5십명이나 된다고 해다.
오건이도 와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저녁을 먹고 있다니 정산 동생과 선예 이모가 왔다.
함께 저녁을 먹고 큰집 형수와 형님이 오셔다. 종숙모도 와다.
부조 들어온 계산을 하는데 5천원이 빈다.
누가 오천원 짜리을 접어서 두장처럼 보이게 넣어 떠라는 예기와 경숙으내는 시두에 오르지도 안아쓰며 봉투도 없으며 예식장에서는 회제가 들지 않았다 하여 새로 넣어 둔 것 드려다는 예기 등을 하고 계산을 모두하고 한잔 나누고 모두 간 뒤 우리 식구 꺼짐 있어다.
탤레비 한대 사주는 것 옳은 것 못 사주어 그러타니까 오건이도 그럴 줄 알았으면 지 혼자라도 그 정도는 할텐데 했다.
통계 든 돈 3백 7십만원 정도 들어지만 지 상금 받은 돈까지 그러니까 예산 더 이상 쓰지는 안아다.
이런저런 그동안 있어던 이야기 모두 털어놓고 하는데 티브이 살 때 절단기 살 때 의논 없이 사다고 구분을 두고 한다고 여러 가지 불평 제수씨 설자리 주지 안는다고 그동안 금화가 있으무로 그랬으며 아버지와 금화가 핸는 것이니까 내 마음 대로 해지 제수씨와 함께 농사 한 것이라면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내가 무엇 때문에 제수씨 동생한테 일일이 보고하고 하느냐.
그때그때 할 형편이면 할만하면 하지 이런 저런 말만 나오면 지나간 일들을 말하고 저희들이 이 어려운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와는지 내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동생이 결혼 하는 대도 가지 못하고 방안에 들안저 있는 사람을 저의들 주장대로 안 된다고 나를 몰아 부친다.
너희들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잘 하기에 나를 못 쓸 사람으로 죽을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따지고 비판하며 온 집안 사람들이 나을 몹쓸 것으로 말하도록 한 장본인이 누구며 무엇이 올으냐 글으냐 따질 것이 뭐가 있느냐는 것을 서로 얘기하다.
오건이가 그래도 내 마음을 헤아려주니 참으로 대견스럽고 장한 생각이 든다.
나보다 많이 보고 듣고 사람을 다뤄보고 했으니 사회생활 십수년 눈치도 빠르다.
내가 동생들 이렇게 있으무로 이제까지 이정도로 이렇게 살아 갈수 있음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 한다.
일방 적인 나에 외골 성격 탓도 있으며 타협을 잘 하지 않고 내 뜻대로만 살아으무로 하루아침에 곤처지지 않는다.
오건이 말대로 나는 누구 한테도 사랑도 인정도 받아보지 못하고 오늘까지 살아 와으무로 진정 마음속으로 우러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살아와다.
그러니까 정말 누구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배풀수 있는 마음에 문이 열여있지 안타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다.
말없이 보복심리가 도사리고 있으니 이제까지 기도한 믿음의 생활이 모두가 거짓이다.
꾸미고 돌여부치는 말 동생들 귀가에 많이 거슬린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내가 그렇게 하도록 모든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되고 되고는 자신이 잘 안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수 있을까?
몸은 좋지 안은줄 알면서 정신력으로 이렇게 버터오니 하늘과 땅과 부처님은 알고 계시리라.
그레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동생들끼리 제수씨와 함께 앞으로 나에게 바래는 이야기 등등 나누고 있다니 금화 매부 백암 온천에서 밤12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다.
재미있게 보내고 오라하고 옥신이도 부산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금화가 이제 결혼 했으니 행복하게 살도록 바랄 뿐이다 하고 잘 놀다 오라하고 끈어다.
12시가 넘어서 모두 잠자리 들었다.
12월27일 일요일 맑음
오건이와 선예 이모 각자 집으로 돌아간 날
오늘은 길수 조모 제사날 아침에 부친과 삼촌이 함께 가시고 동생들 대구 정산으로 각자 돌아가고 선예 이모도 함께 갔다.
보일러가 터저 물이새서 설치한 사람 박경진 형을 불러 손을 봤다.
수고비와 자재 3500원 들었다.
옥신 큰집에서 문중 계갈이가 있어 제수씨 나가보고 오셔다며 빨래도 하고 집 청소도 하여다.
나는 배속이 편치안아 엎드려다 일어나서 편지가 서울 강민창 치안본부장 아제 권해숙이 부평에서 순금당 등등 5통 신년 카드가 와다.
다보고 금년에 온 편지와 모은 서류 정리를 하고 오후 늑게 농협에서 와으무로 돈 이자를 우선 십일만 3천8백 6십원 주어다.
술 한 잔 접대하고 가신 후 누어다가 제수씨 대워 준 물에 머리를 깜아다.
점심은 큰집에서 온 것을 먹었다.
저녁은 집에서 라면을 삶아 먹어다.
소죽은 제수씨 끓이고 부친은 소여물을 썰고 안동형수께서 산소 가우로 철망을 친다고 스님께 여쭈니 해롭다고 큰집에 전화 너으니 바지 안는다고 나한테 해다며 큰형수를 물었다.
여러분이 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 있나 두고 볼일이지 저녁 길수내 집에 부친가시고 아침에는 길수누나 선희 옛날 친구가 길수 찾아 와다며 와다 가고 잠깐 만나고 가고 십다고 했다.
저녁에는 일기를 쓰고 장부 정리 하고 티브이를 보다 기도를 하고 잤다.
자정이 넘어 기도하고 있다니 서울 잔디회 부회장 정철영씨가 1월 16일 날 결혼식을 올린다고 그렇게 알고 있으라 하며 신혼여행겸 떠날 때 대구로 나오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부회장님이 결혼을 하여 여러 환우들에게 보여줌으로서 모든 환우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삶을 개척 할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마음으로부터 축하를 드립니다.
12월 28일 월요일 맑음
요즘 영상 15도 이상 봄 같은 기온이 계속 대는 이때 그동안 카드와 편지 온 것을 정리하고 최화열이 한테 편지를 밀알들 책을 읽고 기성이와 선예를 대리고 놀았다.
안동 종형수한테 전화해서 누나한테 잇는 콩가루와 팥을 찾아가시라 하고 축협에 벼집 절단기 이자를 갚으라고 부탁 해다.
저녁 품무골 강실네 집에 돈 2십만원 부탁 했으며 오전에는 터수세를 돈으로 같다 드려다.
동장한테 금화 퇴거와 혼인 신고용 초본도 띠 오라했다.
금화 신혼여행 갔다가 매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전화했다.
구경 잘하고 무사히 와다고 여행지는 백암온천에서 하루 밤 자고 경주로 내려와서 하루 구경 더하고 자고 이박 3일 만에 와다.
저녁 책을 읽다가 티브이도 보고 기도하고 제수씨는 부친 이불을 빨아서 다시 꽤메고 빨래도 하고 소죽도 끓이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내가 복이 많아 착한 제수씨 손에 공양을 받아먹고 의복을 제공 받으며 족하 질여와 행복하게 살아간다.
12월 29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첫차로 제수씨 애들 대리고 정산 갔다.
어머니 제사장도 보고 내일 넘어 오기로 하고 장에 갔다.
품무골 강실이 돈2십 만원 가다 주는 것 벼집 절단기이자 두 대 값 5만원 안동 형수 주라고 했다.
11만원은 농협 돈이자 갚아다.
터수세 24000원 주고 제사장보기 2만원 쓰고 오늘 동장 금화 퇴거와 혼인신고 초본도 띠서 가다 주었다.
최화열이 한테 정형란 기자한테 신년인사 편지를 보내다.
저녁 티브이보다 기도 좀 하고 별일 없이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하루일과를 정리했다.
자정이 되서 취침 해다.
12월 30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영하 9도 까지 내려가는데 애들 대리고 제수씨 넘어 오신다.
나는 아직 일어나도 안하고 누었다니 선예 기성이가 아버지 하며 삽짝에서 부른다.
기엽은 것들 나에게도 족하와 질여가 있어 나를 잘 따르니 더욱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이 애들을 잘 해 줄 수 있을까?
부처님이시여 아무탈 없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커서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대게 하여 주소서 아침을 먹고 옷을 갈아입으라 하는것 내일 갈아입기로 하고 제사 술을 썩어 넣고 식해도 하고 나물도 삶아 빨아놓고 집안청소도 하고 오늘은 이렇게 애들과 놀고 어제 써둔 편지 군수님과 위민실장님께 오늘 두통 우송하고 부친은 동회 가셔다가 저녁 늑게 오셔다.
나는 애들하고 놀며 책도 보고 저녁을 제수씨와 애들하고 먹었다.
부친은 안 오셔다. 밤 열한시 넘도록 도시 얼굴 마지막회까지 다 보았다.
나와 아버지를 위하여 동생은 정산에서 혼자 밥을 해먹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갔다.
이렇게 오늘을 보내고 취침 한다.
12월31일목요일 맑음 영하10도
87년이 다가는 마지막 나리다.
아침을 먹고 내가 벗은 옷과 애들 옷을 빨아 널고 제수씨는 귀찬치도 않은지 아침 먹는대 빨래부터 한다. 재빠르게 한다.
내일 정산 넘어가야하기 때문에 어머니 기일 떡쌀과 콩 깨 팥 등을 다듬어 모두 준비해서 묶어놓고 반찬 사온 것 3천원어치 준비해서 아침 일찍 밥과 국을 끓여놓고 간다고 해다.
저녁때는 동생이 넘어왔다.
대구 계갈이 하로 종제 오탁으네 집으로 간다고 오영이 신혼여행 갔다 와다고 넘어왔다.
부친도 종방간 계갈이 하로 안동 오산 할배내 집에 가신다고 준비하고 나는 오늘도 애들과 잘 놀고 책 밀알들을 감명깊이 읽었다.
87년이 오늘로 마지막 날인데 금년을 회고하면 내 인생에 있어 보람찬 한 해 여다고 생각이 든다.
대통령각하 전두환 귀하께 편지를 청와대로 쓴 것과 인연하여 박상한 군수님 군 위민 실장님 등등 두 세분이 집까지 오셔서 위로격려 하시고 가신일과 MBC문화방송국 주부휴게실 푸로와 푸른 신호등 푸로에 사연이 방송 대고 금화가 홈런 출발 푸로에 전국에 방송 나가서 그것이 계기대어 경향신문에 대서특필 기사가 나가고하여 부군수님이 또 다녀가시고 영레이디 잡지책에 기사 실리고 이런 저런 일로 11월 25일 날 도산서원 퇴계학 연구원으로부터 효행 부문 표창을 수상하고 10월 21일 약혼을 하고 12월 26일 음 11월 6일 결혼식을 여러분들 축복 속에 무사히 잘 치루고 그리고 많은 편지가 전국에서 답지 했다.
이렇게 금년은 그 무엇인가 세상에 널리 알려 어려운 가운대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온 것을 자랑한 샘이다.
앞으로도 후회 업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목적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 현명할까 명년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살아 온 반평생과 금화가 어려운 가운데 부친과 오빠를 도와 살아 온 이야기 어머니가 살아온 37년 생애를 묶어서 편지와 일기도 함께 한권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2시까지 기도하고 자다.
오늘 저녁부터 한달 공부 주간이 시작 된다.
12시가 넘어서부터 새벽 2시가 넘도록 혼자서 기도 염불 정진을 하고 잤다.
4시까지 한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수마가 덮쳐서 두시 반까지 밖에 못하고 취침 하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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