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나라의 통일전쟁
진나라의 도성 이동사와 이동로
1. 기원전 16-11세기
감숙성 동부의 천수 감곡 일대에서 일어났다.
2. 기원전 11세기(서주초기)
서견구(西犬口) 일대에서 성을 쌓고 주왕조에 속하게 되어 주나라 변방 수비의 역할을 담당했다.
3. 기원전 8세기 (서주말기)
지금의 감숙성 천수현 일대에 성을 쌓고 도읍으로 삼았다. 진나라의 선조 조보와 비자는 주왕을 위해 말을 기른 공을 인정받아 이곳 진정에 봉해졌다. 주선왕은 진장공을 서수의 대부로 봉했다.
4. 기원전 776-762
진양공은 견수 근방의 미아원으로 이주하여 14년 간 도읍으로 삼았다.
5. 기원전 762-714(위수와 견수지간)
진문공은 기원전 762년 견수와 위수가 합류되는 곳으로 옮겼다. 위수와 견수 사이의 땅은 48년 동안 진나라의 도읍이었다.
6. 기원전 714-677년(평양)
진헌공이 기원전 714년 평양으로 천도한 이래 677년까지 37년 동안 도읍으로 삼았다.
7. 기원전 677-383(옹)
진목공의 부군인 덕공이 도읍으로 삼은 옹은 294년 동안 진나라의 도읍이었다.
8. 기원전 383-350년(역양)
전헌공이 천도하여 33년 동안이다.
9. 기원전 350-206년(함양)
상앙의 건의를 받아들인 진효공이 수도로 삼은 함양은 기원전 206년 항우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144년 동안 진나라의 도읍이 되었다. 이곳은 관중지방의 중심지로 비옥한 토지에 풍부한 산물과 함께 삼면이 높은 산악으로 가로막혀 있고 북쪽으로는 400여 키로에 달하는 황토구원이 막아주고 있는 천혜의 난공불락의 지역이다. 사방 200리에 달하는 함양성의 수많은 궁궐은 모두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크고 웅장한 도성이었다.
진소왕의 영토 확장과 그의 업적
진소왕(秦昭王)
소양왕(昭襄王)이라고도 한다. 재위 기원전 324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306년에 진왕의 자리에 올라 기원전 251년에 죽었다. 진시황의 증조부다. 이름은 직(稷), 혹은 측(側) 또한 즉(則)이라 했으며 성은 영씨(嬴氏)다. 진무왕(秦武王)의 이복동생으로 무왕이 재위시 연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다. 이어서 그때까지 자식을 두지 못한 무왕이 주나라에 가서 정을 들어 힘내기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죽게 되자 연나라에서 귀국하여 진왕의 자리에 올랐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재위에 오르자 그 모친 선태후(宣太后)가 섭정을 행하고 그녀의 동생 위염(魏冉)을 장군으로 삼아 함양(咸陽)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무왕의 동생 서장(庶長) 영장(嬴壯)이 반란을 일으키자 위염은 장(壯)을 포함한 진나라의 수많은 대신과 귀족들을 살해했다. 이후로 진나라의 정권은 선태후가 장악하고 저리질(樗里疾)과 위염(魏冉)을 앞뒤로 번갈아 가며 진나라의 승상으로 삼아 진나라의 정권은 공실의 귀족과 위척이 전단하게 되었다. 진소왕 11년 기원전 266년 소왕은 위나라 출신의 범수(范睢)의 계책을 받아들여 선태후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위염(魏炎) 등의 귀척들을 쫓아냈다. 위염의 후임으로는 범수(范睢)를 승상으로 임명했다. 그는 재위 기간 중 백기(白起)와 사마착(司馬錯) 등을 장군으로 삼아 동진정책을 추진하여 군사상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 기원전 290년 위나라를 공격하여 그 하동(河東)의 땅을 점령했다.
2. 기원전 284년 도위(都尉) 사리(斯離)가 한(韓), 위(魏), 연(燕), 조(趙) 등의 4국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여 그 국세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3. 기원전 278년 다시 백기로 하여금 남쪽으로 진격하게 하여 초나라의 영도를 점령함으로써 초나라의 근거지인 동정호 일대에 남군(南郡)을 설치했다. 초나라는 이로써 그 나라를 지금의 하남성 진현으로 옮겨야만 했다.
4. 기원전 260년 다시 조나라의 45만 대군과 장평에서 싸워 이겨 항복한 그 군사들을 구덩에 파묻어 모두 살해하고 그 땅에 상당군을 설치하여 진나라 영토로 삼았다.
5. 기원전 255년 주(周)나라를 멸했다. 이로써 800년 이상 존속했던 주나라의 명맥을 끊었다.
진소양은 그의 재위시 진나라의 국력을 관동의 6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만듬으로써 후에 진시황의 중국을 통일하는데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진소왕이 재위시 확장한 진나라의 새로운 영토
1. 검중군(黔中郡)
1) 기원전 280년 초나라를 공격하여 취득하였으나 곧 바로 초나라의 반격을 받아 빼앗겼다. 다시 기원전 277년 진나라가 무군(巫郡), 검중군(黔中郡) 및 강남의 땅을 공격 점령하고 그 치소를 지금의 호남성 상덕시(常德市)인 임원(臨沅)에 두었다.
2) 호남성 동정호 이서, 호남성 원수(沅水), 풍수(灃水) 유역, 호북성 청강(淸江) 유역, 사천성 검강(黔江) 유역
2. 무군(巫郡)
1) 기원전 277년 검중군과 함께 초나라로부터 취득하여 검중군에 병합. 초회왕이 설치한 군현으로 경내이 있던 무산(巫山)의 이름을 취했다.
2) 호북성 청강(淸江)의 중류 및 상류 유역과 사천성 동부, 치소는 사천성 무산현에 두었다.
3. 남군(南郡)
1) 초나라의 도성이 있었던 영성(郢城)과 그 주변 일대를 점령하고 설치한 군현이름이다. 기원전 278년 진장 백기(白起)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설치한 군이다.
2) 호북성 무한 이서, 양번시(襄樊市) 이남, 감리(監利) 이북과 사천(四川) 무산(巫山) 이동 지구
4. 남양군(南陽郡)
1) 한, 초, 위 3국의 국경이 접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기원전 273년 진나라의 위협을 받은 위나라가 헌상한 땅에 한나라부터 빼앗은 남양의 땅과, 초나라 령이었던 상용(上庸)의 땅을 합하여 설치한 군으로 위염(魏冉)의 봉지로 삼았다.
2)관할 구역은 호북성 양양(襄陽), 수현(隨縣) 이북, 하남성 란천(欒川), 노산(魯山) 이남, 신양(信陽) 이서, 호북성 균현(袀玄), 하남성 서협(西峽) 이동 지구다.
5. 북지군(北地郡)
원래 융족이 세운 의거(義渠)의 영토로 지금의 감숙성 동북부의 마련하(馬蓮河) 유역이다. 기원전 271년 진나라가 의거를 멸하고 설치했다.
6. 상당군(上黨郡)
1) 기원전 259년에 벌어진 조나라와의 장평(長平) 대전 직후 이미 점령했던 한나라 령의 상당군과 합해 설치한 군이다.
2) 산서성 태항한 이서와 이북, 화순(和順), 유사(楡社) 이남, 심원(沁源), 심수(沁水) 이동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