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13,31-35: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했건만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31절). 주님께서는 헤로데를 두고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32절) 이것은 그분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시겠다는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언제 어떻게 육신의 죽음을 겪으실 것인지 다 알고 계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33절)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많은 예언자의 피를 흘리게 한 죄 많은 도시임을 밝히시면서, 예언자는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다고 하신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지위도 빼앗기고,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느님의 선물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굳어져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가벼이 여긴 것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34-35절)
그분은 모세를 시켜 그들을 가르치셨고, 바른 몸가짐과 칭송받을 만한 삶의 인도자로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그림자이지만 그 안에는 참된 경배의 예형이 들어있다. 그분은 거룩한 예언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타이르셨다. 그렇게 당신 날개 아래에서 당신의 권능으로 지켜 주려 했으나 그들은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축복을 잃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35절)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 당신께서 고난을 겪으실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시겠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잘못으로 주님을 우리에게서 밀어내지 않고 그분의 뜻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무인도에 책 세 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입니까?’
이 질문은 뉴욕의 유명 문학잡지 ‘파리 리뷰’가 작가들에게 물어본 질문입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세이본은 ‘모비딕’, ‘율리시스’ 그리고 이런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코코넛으로 진짜 비행기를 만드는 법’을 가져가겠다고 재치 있게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가져가겠습니까? 저의 경우, ‘성경’ 하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담겨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성경에는 모든 장르가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만으로도 많은 책(실제 73권이지만)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참으로 놀랍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미사 때만 듣는 성경이었지만, 신학교에 들어간 뒤 지금 사제로 25년 넘게 살면서까지 계속 가까이에 두고 일고 있습니다. 지루한 것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우리 삶 안에서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 그래서 일상 삶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체험을 늘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하느님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 삶이 새롭지 않고 지겹고 힘들다고만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는 늘 부족함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아무리 짧은 순간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그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생각해서 했던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방해할 의도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사명에 끝까지 충실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2.33)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예루살렘입니다.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의 예언자를 거부하고 박해했던 예루살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이 이제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박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위협에 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지금의 당신 길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고통과 시련에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느님 뜻을 찾으면서 그 뜻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모범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친구’라는 인디언 말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이다(인디언 명언).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3,1-3.11-17.20-23
1 욥이 입을 열어 제 생일을 저주하였다.
2 욥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3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 하고 말하던 밤!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12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13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14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5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6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17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20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21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22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23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