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시 읽기> 자가 문득/김중식
스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요 몇 년 사이에 ‘스펙’이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원래 이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에서 나온 것으로,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신 학교와 학점, 토익 점수와 자격증 소지 여부, 해외 연수나 인턴 경험 유무 등을 종합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을 꼭 취업 준비 용어로만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대학에 수시 전형으로 입학하려면 스펙을 잘 쌓아야 해’, ‘이번에 소개받은 남자 스펙이 어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스펙은 이제 한 사람의 외적 조건, 상품 가치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요즘 대학생들은 이 스펙을 보다 그럴듯하게 만드느라 아주 바쁘다. 가끔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나 내 선배들이 대학을 다녔을 때보다 열심히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점 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새벽에 영어학원도 다니면서 각종 자격증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스펙을 쌓는 대학생 열 명 중 일곱 명이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화려한 스펙이 (통상적으로 대학생에게 기대하는) ‘지성’을 보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뭐 대학생뿐이겠는가.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다수는 이 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껏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찬란한 태양’과 ‘냉철한 뭇별’처럼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존재지만 절대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협소한 경험과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이 사회가 정상이라고 정해 놓은 질서 안에서 종종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이 된 상태에서 문득 보게 된다. ‘찬란한 태양’이나 ‘냉철한 뭇별’이 아닌 특별한 존재를 그것은 바로 별똥별,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시인은 그것을 ‘포기한 자’라고 말한다. 물론 이 포기는 패배주의적인 체념이 아닌 견고한 사회구조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용기’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것이 안주라면, 거기에서 이탈하는 것은 안주를 거부하고 기꺼이 자신만의 궤도를 찾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그 용기가 문득 가슴 저리게 부럽고 눈부시게 다가온다.
―김경민, 『시 읽기 좋은 날』, 쌤앤파커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