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종수 권사 초청집회 >
* 첫째날 메시지 「오늘날 너는 택하라!」
원종수 권사 / 1995
어머니의 기도가
저는 사십이 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제 귀에 들려오는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6.25 전쟁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가난한 가정으로 갈 곳이 없이 방황하던 그 시기에 어머니는 새벽제단을 지키시고 1시간쯤 되는 거리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교회에서 기도하시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들을 내가 어찌 키우겠습니까? 하나님, 이 아들이 커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기억하며,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1967년 11월 어느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고통당하던 어느날, 어느 전도사님이 오셔서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께서 구원을 받으려면 성령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길래 함께 기도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섭섭했습니다. 어머니 말씀도 잘 들었고 열심히 기도한 것을 보시고서라도 응답을 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그날 밤에 엉엉 울었습니다.
「너는 죄인이다」는 음성
그 다음날 학교에 가는 것도 포기하고 다음날 저녁에 전도사님 댁에 쫓아갔습니다. 저를 위해 5-6명이 기도해주시는데 한 5분이 지나가니까 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제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강하게 들려온 음성은 「종수야 너는 죄인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30분쯤 울고 나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조그만 죄까지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두시간쯤 기도하고 나니까 울음과 죄에 대한 죄송함이 사라지면서 제 마음 속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그러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13번의 성경통독
또 하나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의과대학 본과를 다닐때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새벽공부를 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보며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공부하는 것 하나하나가 사용되어질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여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한 과목을 공부할 때마다 구약성경 한 장과 신약성경 한 장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그렇게해서 대학생활 동안 성경을 열세번 통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에게 기도하지 않은 것까지 주셨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수많은 암환자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의사들이 있음에도 제 눈이 자신들에게 깊은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축복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4장 12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희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도울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구하는 축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밖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는 불쌍한 자, 가난한 자, 없는 자, 배고픈 자에게 손을 펴면 그들이 잠자리에서 우리를 축복할 것이고 그 축복이 우리의 의가 되어 하나님의 앞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옛날, 제가 아르바이트 첫 월급을 3만원을 타가지고 어머니께 고기를 사드리고 싶어 대전까지 어머니 몰래 밤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밤 11시 30분쯤 되어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웬 할아버지 한분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무릎이 보이는데 떨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마중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맨 마지막인 제가 내릴 때까지 그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했습니다. 다가가서 할아버지께 돈을 쥐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왜 왔느냐고 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밤새 돌아누워 울다가 아침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간증을 하면서 성령님께서 그런 일들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그 사람이 그 돈으로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며 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기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할 수 밖에 없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축복의 장을 넓히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열려 말씀대로 우리 주위의 과부들과 고아들과 병든 자와 갇힌 자들을 돌아본다면 여러분께서 상상하지 못한 것으로, 여러분께서 기도하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다가가실 것입니다.
공의를 행해야
신명기 전체의 내용은 우상숭배를 하지말고 공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나 때문에 억울한 사람은 없습니까? 삼풍 사고를 보고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그들이 죽으면서 무슨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죄없는 사람들의 피가 이 땅에 뿌려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공의를 행하라」
아모스 5장에서 하나님께서도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공의가 우리 크리스천을 통해 실행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속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손에 다른 사람의 억울함이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들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원망이 없도록 해야합니다. 아내에게 억울함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우리 예수 믿는 가정은 세상의 다른 가정과 구별된 가정으로 살기를 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24장 14~15절의 말씀처럼 「너희는 오늘날 택하라」남편들은 세상의 다른 가정의 남편들과 같이 권위를 내세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며 사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사랑을 보며 자랍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베푸실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자녀들에게 있으면 자녀들은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들이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 억울한 자, 눌린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손으로 사랑을 전한다면 여러분이 전도지 들고 일일이 돌리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도 했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들의 피가 여러분의 손에 있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택하는 것
믿음은 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내가 오늘날 어떤 걸음을 걸을 것인가? 그것만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네게 믿음이 있다면 내게 보여라. 네가 삶 속에서 무엇을 택했느냐? 네 삶 속에서 성결함과 거룩함을 택했느냐? 네 삶 속에서 나를 택했느냐」고 하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내가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기도의 내용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가서 어떤 사람의 기도의 응답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사랑의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떡이 되어야 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택하십시오. 내가 단순히 사는 영이 아니라 살리는 영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 둘째날 메시지 「기도의 창문을 열어라!」
원종수 권사 / 1995
창문을 열 때
저는 다니엘을 생각해 봅니다. 다리우스 왕의 조서를 듣고도 다니엘이 마음에 각오를 하고 창문을 여는 순간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다니엘이 창문을 여는 순간 하나님의 관심은 수많은 페르시아인과 이스라엘 인 중에서 다니엘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기도를 하면 죽게 되었는데도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이하의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 앞에 생명을 걸고 기도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사람이 되시고 싶지 않으십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작정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들어 쓰신 것처럼 여러분을 온 세계를 위하여 불러주실 것입니다. 창문을 열때 다니엘은 구별되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기도하리라는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구별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지식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죽음을 각오한 기도가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실 것입니다.
지난 여름에는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다 모래사장으로 나왔을 때 막내 아들이 제 무릎을 보더니 「아빠, 아빠 무릎이 왜 그래? 」하더군요. 기도로 생긴 「굳은살」때문에 아빠의 무릎이 그대로 보였던 거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순간 마음이 기뻐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께 보여드려야지」라고 생각하며 막내 아들에게 왜 굳은 살이 생겼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네가 밤에 자고 있을 때 아빠가 널 위해 늘 기도했단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당장 쓸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야.」여덟살 난 아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제 무릎의 굳은 살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기도해야 하는 마음 주신 것 참으로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충만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식이 되고 맙니다. 물질적인 헌금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라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니엘은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말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정해 좋고 하게 됩니다. 일터에 갈 때도, 식사 때나 잘 때에도 우리는 정해 놓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하나님 앞에 서서 담대하게 「하나님 저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를 두려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으십시오. 만약 그런 시간이 없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경륜과 계획 안에서 탈락된 상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명, 치유,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그분과 만나는 시간을 갖으십시오. 거룩하고 순결하게 구별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은 「내가 너를 도우리라 너로 인하여 내 하늘나라를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 드렸다면 표현하십시오. 기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시간을 정하십시오.
* 출처 - 온누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