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5, 2024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고배를 마셔야 축배도
제자들 가운데 저만 그리된 것이 아니겠지만 주님, 제가 당신의 첫 제자가 된 것은 저의 선택이 아니라 당신 선택이고 당신에게 홀려 당신을 따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진짜 당신에게 홀렸습니다. 이것저것 재어 보고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도깨비에게 홀리듯 홀려서 당신을 따라갔습니다. 처자식이 있고 그래서 벌어먹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저에게 와서 느닷없이 “나를 따르라!”라고만 했는데 그냥 따라갔으니 홀린 것이지요. 그런데 저뿐 아니라 제 동생도 그리고 베드로와 안드레아도 그랬으니 저의 문제만이 아니고 당신에게 끄는 힘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따라다닐 때 당신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당신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으며 그것은 영적인 권위였기에 악령들도 그 말씀에 꼼짝하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호수도 잠잠해졌기에 당신을 따라나선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저와 아우 그리고 베드로의 형제를 특별히 사랑해주셨지요. 죽은 소녀를 살리는 대단한 기적과 타볼산의 변모를 저희에게만 보여주셨잖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거의 다다랐을 때 저희는 다른 제자들 특히 베드로가 화낼 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당신께 청했습니다. 당신이 왕이 되면 그 왼편과 오른편에 저와 아우가 않게 해달라고. 그때 당신은 저희에게 “내가 마실 잔을 너희도 마시겠느냐?”고 물으셨고, 저희는 호기롭게 그 잔을 마시겠다고 하였고 주님도 그렇게 될 거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당신이 겟세마니에 저희 넷만 또 따로 데리고 가셨을 때 그 뜻이 무엇인지 그때라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그때 피땀 흘리시며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셨는데 저희는 그 잔을 같이 마시지 않고 쿨쿨 잠만 자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때 저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이었습니다. 당신마저 마시고 싶지 않았던 그 쓰디쓴 고배를 당신의 대관식 때 마실 축배의 샴페인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축배의 샴페인은 고배를 마신 다음임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목마르다!” 하시며 돌아가셨고 축배를 마시려던 우리는 그래서 더 쓰디쓴 고배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야 같이 마시자던 잔이 수난의 잔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 잔을 같이 마실 수 있게 되었으며, 지상 왕국의 첫 자리를 주십사 한 저는 너무 죄송한 나머지 순교의 첫 자리를 주십사 청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고배를 마셔야지만 진정 축배도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야고보가 되어 짧게 써본 회상기인데 이런 회상기를 쓰게 된 것은 어제 경험 때문입니다. 너무 덥기에 일찍 행진을 출발한 저희는 한낮에 진부령을 넘고 있었습니다. 평지를 걸어도 지치고 입이 탈 지경인데 막바지에 고개를 넘으니 그야말로 입이 바짝바짝 타 말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을 때 마침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가지고 오신 겁니다. 그때 제 입에서 이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지옥이 있었기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고배를 마셔야지 축배도 있는 겁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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