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계
최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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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는데도 내려가질 않습니다. 왜 그럴까 이상해 생각하다 살펴보니 글쎄 내려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눌러놓지 않은 것입니다. 급히 1층을 눌렀더니 그제서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사무실 앞에 놓여있는 무인 포스트를 자주 이용합니다. 오늘도 우편물을 부치기 위해 우편의 종류를 선택하고 우편물을 투입구에 넣었습니다. 요금도 지불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않습니다. 나와 있는 우표를 빼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표를 빼내고 봉투에 붙여 투입구에 넣으니 비로소 발송 작업이 완료됩니다.
요즘은 대부분 자동화기기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순서대로 정보를 주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사실 단계란 순서요 질서로 사람도 거기서 예외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사람들은 단계를 건너뛰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원칙을 무시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합니다. 원칙은 능력 없는 사람들이나 지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호등이 고장 난 사거리에서 차들이 엉켜있는 광경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쉽게 잘 풀릴 수 있을 텐데 ‘내가 먼저’만 고집하고 차머리를 들이밀다 보니 다같이 못가고 엉켜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일에는 크건 작건 모두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순서란 다음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며, 해야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차근차근히 한다는 말입니다.
‘다음’이란 말속엔 ‘희망’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달라는 기원과 간구의 뜻도 들어 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씩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며 해내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엉켜있다 해도 원인이 되는 하나만 빼내면 잘 풀릴 수 있습니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것도 아주 작은 나사못 하나가 제 자리를 지키고 제 몫을 해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며, 무인포스트를 이용하며, 삶의 단계, 삶의 순리, 삶의 질서를 생각합니다. 건너뛰지 말고, 새치기 하지 말고, 순서대로 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기본 되는 질서일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잘 하는 일일 것 같습니다.
* 최원현의 칼럼 <향기의 샘>은 전국 어디에서나 생활정보신문 <벼룩시장> 매 주 화요일 1면 칼럼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