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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8: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8: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8: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8: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8: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8: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18: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18: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18: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 주해
1. 바울은 회당이 있는 곳에는 성경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해석하고 증명해 주었고 아덴같이 성경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들의 문화와 소통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1) 2차전도 여행의 마지막 선교지인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고, 실라와 디모데의 합류, 마게도냐 교회의 후원으로 말씀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한다.
2) 고린도에서도 성경으로 토론하며 전승된 복음을 전했으나, 대적자들이 생겨났다.
2.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회당장과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 세례를 받았다.
1) 대적자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고 아무도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여 주셔서, 계속된 박해에도 1년 6개월간 고린도에서 말씀을 가르친다.
2)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이렇게 긴 시간동안 한 장소에서 말씀을 가르친 건 처음이다.
3.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자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그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고발하였다.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8: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 유대인들이 바울을 박해한 이유는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는 것이다.
2) 갈 5;1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할례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행 13: 39절에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였다.
3) 바울의 이런 가르침이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바울은 율법을 어기고 율법을 지키려는 자들을 미혹한다고 여겼기에 박해한 것이다.
4) 열심히 교회를 박해했었던 바울은 유대인들이 왜 자신을 박해하는지 잘 알고 있다.
4. 바울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갈리오는 유대인들끼리의 언어와 명칭과 율법에 관련된 것이면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자신은 이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1) 갈리오의 반응은 예수님을 고발한 공회와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빌라도와 비슷하다.
- 다만 빌라도는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바울을 고소하던 유대인들은 별 대응을 하지 못하고 법정에서 쫓겨난다.
2) 갈리오가 보인 반응은 사도행전에서 로마 관리가 공식적으로 보인 첫 반응이다.
- 이방인이자 로마 관리가 보기에 바울은 범죄나 악행을 하지 않았으므로 개입하지 않는다.
5. 갈리오 총독은 바울을 고발한 유대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냈다(16절).
1) 그러자 유대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들어다가 재판정 앞에서 때렸다.
- 소스데네는 고린도전서 1장 1절에서 바울의 동역자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2) 회당장이니 그는 유대인인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 유대인들은 화풀이로 그리스도인이 된 회당장을 매질했을 것이다.
6. 예수님이 고린도에서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바울은 해를 당하지 않고 풀려난다.
1) 그렇지만 소스데네가 매질을 당하고 보호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바울은 며칠이 지난 후 형제들과 이별하고 시리아로 떠난다.
2)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겐그레아에서 서원을 하였기 때문에 머리를 자른다.
3) 서약하고 머리를 깎은 것은 구약의 율법에 근거한다. 이는 바울이 전하는 은혜의 복음과 충돌한다. 그렇지만 3차 전도 여행 이후 예루살렘에서 서약한 사람들이 머리를 깎는 일에 비용을 대어준다.
4) 즉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여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배려하고 그들도 복음을 듣기를 원한다(행 21:24; 고전 9:20).
7.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파송교회인 안디옥 교회으로 돌아간다.
1) 이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바울과 동행한다. 두 부부와 바울이 고린도에서 깊은 동역의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8. 바울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떼어놓고 자기 혼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토론하였다(19절).
1)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으나 바울은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하며 그들과 헤어진다.
2) 하나님의 뜻대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시에 주로 에베소에서 사역하였다(19장).
9. 바울은 자신은 에베소를 떠나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다.
1) 바울에게 머물러 달라고 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2) 바울이 떠난 후에 아볼로가 에베소에 오게 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복음을 나누고, 아볼로는 탁월한 복음전도자와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3) 18개월 동안 바울이 “사도들에게 전해 받은 그 복음”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전해 받고” 그 복음을 아볼로에게 “전하여 이어간다.”
10.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전승된 복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울이 ‘받은 것을 전한 복음’(고전15:3)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전승은 “전해 받아 계승하는 것, 전하여 이어감”이라는 뜻이다.
1) 바울은 사도들에게 자신이 전해 받은 것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전하여 계승하였고, 두 부부는 아볼로에게 전하여 계승한다. 아볼로도 그 복음을 전하여 계승하였다.
2) 이렇게 “전승된 복음”은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부터 땅 끝까지 전하여 지고, 모든 시대에 모든 족속에게 전해져야 할 원복음이 되었다.
11.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 상륙한 바울은 (아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묻고 안디옥으로 내려간다(22절).
1)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 올라갔다가 안디옥 교회로 갔다면, 바울은 그의 선교를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도 공유한 것이다.
2) 이미 행 15장에서 1차 전도여행은 예루살렘 교회에 자세히 보고되었고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이 지켜야 할 것이 정해졌다.
12. 바울은 그 내용을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전해 주었고, 새롭게 개척된 유럽에서도 가르쳤을 것이다.
1) 바울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과 그것이 아시아와 유럽 교회에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과 소통했을 것이다.
2) 사도들은 공의회의 결정이 이방인 선교와 교회에 유익을 끼친 것을 알고, 바울의 선교 사역을 더 지지했을 것이다.
3) 바울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인도로 복음을 전하였지만,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과의 소통과 동역, 파송한 안디옥 교회와의 소통과 교제도 적극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13.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 얼마 있다가 다시 복음을 전했던 교회들을 찾아가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한다.
14. 바울과 예루살렘 공의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화목하며 하나 되는 결정을 하였다.
1) 그리하여 이방인 지역에서 믿는 유대인들과 믿는 이방인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2) 바울과 교회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함께 생각하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을 박해한다.
3) 바울은 어디를 가나 이방인을 배려하고, 유대인을 배려한다.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가 되어 겐그레아에서 머리도 깍는다.
- 율법 없는 이방인에게는 그들과 같이 되어 복음을 전한다.
15. 바울은 강한 이미지가 있다. 그가 율법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하였기 때문에 바울이 그런 자들을 향해 항상 적대적이거나 판단하고 싸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이다.
1) 바울은 전승된 복음의 순수성을 위해서라면 충돌하고 박해를 받아도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을 반대한다.
2) 하지만 비본질적인 영역에서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대로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깊이 배려하고 섬긴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기도 하고, 자신이 율법대로 머리를 깍기도 한다.
16. 바울의 섬김과 배려로 믿는 자가 더하여 지기도 하지만, 아무리 배려하고 섬겨도 비방하고 핍박하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1) 보통 율법을 어긴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장기간, 지독하게 박해를 받으면, 유대인들에게 대한 반감이 생기면서 유대인들을 비방하고 그들을 수용하고 섬기려 하지 않는다.
2) 그런데 바울은 박해를 받아 고린도를 떠나면서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위하여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같이 되어 머리를 깍는다.
3) 박해하는 그들 중에서라도 구원받는 자가 있기를 원하고, 믿는 유대인들을 끝까지 배려한다.
4)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명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 나의 묵상
바울이 머리를 깍는 내용이 쌩뚱맞게 나온다.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주해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대인같이 머리를 깍는 그 모습이 너무 놀랍다. 나를 비롯하여 크게 당한 사람들이 치우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전통적인 교회에 크게 당한 사람들, 성령사역에 크게 당한 사람들, 치유사역에 크게 당한 사람들, 권위자에게 크게 당한 사람들, 보수와 진보 신학에 크게 당한 사람들....그 종류도 많다.
그렇지만 바울처럼 유대인들에게 장기간, 지독한 박해를 당한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렇게 당하고도 치우치지 않는다. 전승된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혐오와 선입견이나 편견이 전혀 없다. 만물 위,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 같으면 일부러라도 머리를 깍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배려를 했는데 그렇게 나오다니...하는 쓴 마음과 무의식적인 적대감으로 행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악랄했던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을 찾아가서 복수하지도 않았고 경고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훈계조차 하지 않았다. 도리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 박은 모든 주범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다. “아버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심장을 본다. 억울함, 보복감, 상처로 인한 반감과 같은 당연한 마음을 넘어서는 예수 생명이 있다.
사회 경험, 목회 경험은 유익한 경험도 많지만 더 많은 당함이 있고, 그 당함으로 인한 선입견과 편견된 마음이 있다. 그 마음으로 인하여 나는 예수님의 생명과 마음으로 행하지 못한다. 저런 사람들은....저렇게 하면...이라는 선입견이 나도 모르는 무의식에서 올라온다. 육신으로 행한 열매다.
내 안에 사시는 이가 그리스도이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선을 행하여야 하는데, 내가 행함으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 자기를 주장하고, 배려가 당함이 될 때 저런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이 강하게 생긴다. 그래서 내가 행하는 것은 악도 악이고 선도 악이다. 존재적인 죄를 가지고 십자가로 나간다. 나는 나의 선이 악임을 알지 못한다. 나의 배려가 교만이 됨을 알지 못한다. 오직 복음으로만 생명이 아닌 사망을 분별한다. 생명으로 행하지 않은 것, 생명이 되지 못한 그 모든 것은 사망이며, 자아로 행한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안의 어둠과 가시를 가지고 십자가로 나아간다. 십자가에서 나의 옛사람과 자기주장의지를 못 박으신 주님과 함께 한다. 주님이 내 안의 옛사람과 육신과 함께 그의 영향도 새롭게 한다. 주님이 내 안에 사시며, 그분은 부활의 주로 통치자와 주권자가 되신다. 부활의 주님께 나의 의식과 무의식까지, 모든 영역의 통치를 구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마음과 무의식까지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의 통치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다. 가장 비참한 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심판하시며, 한없는 사랑과 용납으로 품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주인요, 교회의 머리요, 온 세상의 왕이시다. 바울의 생명이신 주님이 내 안에도 생명이 되신다. 그 주님의 나의 의식과 무의식, 몸과 마음, 내 영을 맡긴다.
◈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만물 안의 신앙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의식속에 배신에 대한 상처, 배려가 이용당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쌓입니다. 주님으로 행하지 않으면 악은 악의 열매를 낳고, 선도 판단과 반감과 교만이 됩니다. 바울이 다른 복음과 강하게 싸우지만 여전히 율법아래에 있는 자들을 사랑하고 배려하여 하나되고자 함을 봅니다. 주님, 저와 다른 사람들과 진리 안에서 하나되는 마음과 사랑과 지혜를 주십시오. 당함으로 인하여 편파적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생명으로 예수님의 마음과 지혜로 행하도록 저의 생각만이 아니라, 저의 무의식도 만져 주시옵소서. 만물 위,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이 부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제 안에 있는 어쩔 수 없는 어둠과 가시들을 십자가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생명을 얻게 하는 전승된 복음이 성령으로 선명하게 하시어, 생명이 밝히 드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사도행전에서 전승되고 있는 그 복음이 저와 복음충신교회와 한국 교회안에 전승되게 하옵소서. 주일예배, 찬양, 말씀, 섬김과 교제, 교육부를 주님이 주관하여 주십시오. 부활의 주님이 주되시는 주일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